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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Jul 12. 2024

정신적인 재산

요 며칠 잠이 미친듯이 쏟아지고 어젯밤엔 잠들기 전 아주 잠깐 새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온 몸 안 전류가 흘러가는 느낌이 순간적으로 강렬했다. 오한이 온 것처럼 갑자기 추웠다 이내 괜찮아졌다. 이불을 꽁꽁 싸맸다. 평소 잘 먹고 잘 자서 몸에 별다른 이상은 아닌 것 같았지만 이럴 땐, 내 안에서 무언가 정리가 되고 있나보다, 장기와 세포들이 건강한 방식으로 제자리를 찾는구나. 에너지가 순환되는 과정이구나.한다.


이번 주 내내 숙면을 취했어도 일하기 전 잠깐이라도 꿈뻑 자고 일어나야만 했다. 그렇게 잠깐 새임에도 푹 잠들었다 깼는데 자고 일어나면 피부는 더욱 뽀송뽀송해진데다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듯 에너지가 충만해졌다. 그러고 집밖을 나오니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기분좋음, 경외감, 감사함. 살아있음에 대한 기적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조금 전 머리띠를 야물게 찼다. 평소 토너로 얼굴을 닦아내는 것 외엔 화장을 하지 않는데, 까무잡잡한 피부라 어두운 파운데이션을 살짝 바른듯한 효과가 있는 듯하다. 잘먹고 잘자는 것만으로도 피부관리 충분하다. 피부관리를 받는 피부결처럼 비단결은 아닐지라도 사는데 전혀 손색없다.


다 본 책은 그 다음날이라도 반납을 바로 하는편인데, 반납했을 때 그 특유의 쌈빡함이랄까. 그런 것이 있다. 반납과 동시에 새로운 책을 발견하고 데려오는 일. 내겐 낭만의 순간이자 과정이다.


오늘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가 날 불렀다. 집을 나서며 분명 한 손에 이 책을 쥘텐데. 어쩌자고 나는 이토록 책을 읽는지. 이토록 글을 쓰는지. 이토록 사색하는지. 사유하는지. 못말린다는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지금 이 순간의 내가 대견할 때가 있다. 서른 후반의 나.의 이 모습은 분명 필연이었겠다.


무엇이든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책도 억지로 읽는다고 읽히는게 아니며, 글도 억지로 쓴다고 해서 절대 써지지 않는다. 삶도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절로 펼쳐지는 것이었다. 내가 사는 세상이, 내 눈 앞에  펼쳐진 현상세계가 과연 실재하는 것일까? 눈으로 사물이 보이니 머리로는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끊임없는 사색과 사유, 질문하다보면 어느 순간 물리가 트인달까. 직관적인 앎으로서 가능한 것이란 것도 알게 됐다. 어느 것도 본래 내 것인 게 없었다. 집착하지 말 것. 삶의 태도다.


앞으로의 인간은, 앞으로의 세상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치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느끼고 있다. 건강한 음식, 운동, 요가, 명상이 대세가 된 것도 우연은 아니다. 웰니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이를 방증한다.


몸과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삶의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내게 깨달음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일상 그리고 순간순간이 성장의 장이고 실험의 장이고 도의 세계다. 펼쳐지는, 체험되어지는 세상사와 내게 일어나는 일들은 우연이 아니라 내게 어떤 깨달음을 주기 위한 것이란 걸 인식하면, 인식의 전환을 달리하면 수용하게 된다. 결국 집착이었음을 알게 되면 많은 부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깨달음이 없는 곳엔 자유도 없다. 누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몫이다.   


정신적인 재산에 관심이 많다. 지대한 관심이란 설명이 맞겠다. 집착과는 다른 것이, 절로 그리 주의가 기울어지기 때문이다. 책이 절로 날 부르고 글이 절로 써지고 순간순간 사색과 사유가 폭풍우처럼 밀려오고 혼자만의 시간이 이토록 재밌고 즐겁고 유익하고 혼자만의 고독을 자꾸만 찾게 되는 것이 그렇다.


혼자만의 시간에 집중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 나 또한 지난 시절 주말이면 친구들과 만나 맛집도 가고 카페도 가서 오랜 시간 수다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때가 있었고 퇴근 후엔 친구들, 동기들, 지인들과 만나 맥주 한 잔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집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던 때도 분명 있었다. 그땐 또 젊음이란 이름으로 그 시절을 만끽했을 것이다.


그치만 이 또한 다 한 때가 있음을. 한 때 였음을. 일장춘몽처럼. 구운몽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어떨 땐 그 시절이, 그때가 꿈같다.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시절을 기억할 때면, 한낯 꿈이지 않았을까.현실이 아니었던 거 아닐까.하는 생각이 불현듯 인다.  


지금도 오래된 지인들과 가끔 만나 맛있는 점심 혹은 저녁을 먹고 카페에 가서 수다를 하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온다. 그치만 그 횟수가 많지 않거니와 고백하건대 약속이라도 잡을까싶다가도 이내 혼자만의 시간을 선택한다. 가끔 이래도 되나 싶을만큼 고독이 좋아졌다. 다 부질없다.는 것보단 순전히 나를 만나는 일이 날 더 편안하게 하고 평온하게 하고 유익하다는 생각에서다.


어젠 오랜만에 동기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성수동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자주 보지 않아도  마음 속에 살아 숨쉬는 지인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이롭다. 내가 압구정 지점에서 근무하던 , 언니는 대치중앙지점에서 근무했었다. 우린  짧은 점심시간에 휘리릭 홍길동처럼 고터에서 만나 이십여분만에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도, 퇴근후엔 맥주  잔으로 신입행원으로서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곤 했다. "초아야, 그때가 좋았지..." 언니의 말에 여운이 깊다. 말하지 않아도   같은  무언가. "언니, 우리도 나이들어가나바."했다.


내면에 이토록 집중하게 된 데에는 방황과 우울의 시간도 겪어보았고 스스로가 만들어낸 생각과 착각들, 무지, 어리석음으로 스스로를 괴로움과 고통속으로 내몬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땐 좀처럼 길이 보이지 않아 무척이나 방황하고 내 이름도 허공에 수백번을 불러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의 나에게 무척이나 고맙다. 그 시절이 없었더라면 내게 성장은 없었을 것이다. 삶에 대한 관점과 인식이 달라졌고 크고 작은 깨달음을 통해 나와 만날 수 있었고 대화할 수 있었고 사색할 수 있었고 성장할 수 있었다.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이해하는 일이 이토록 중요한 것이었는데. 탐진치(욕망, 분노,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쩌면 자기 자신을 구하는 일임을.알게 되었다.


나는 왜 쓰는가? 싶을만큼 적어내려가지만, 그 몰입이 내겐 명상의 시간이기도 하다.

내 글쓰기. 누군가가 알아봐주지 않아도 된다. 알아봐주지 않아도 괜찮다.

글쓰기란, 나 자신과 만나는 길이고 나 자신을 치유하기 위한 과정이다. 또 우연히라도 내 글을 본 누군가가 함께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다면 이 또한 분명 자리이타. 자신을 위하는 길일 뿐아니라 남을 위한 길이기도 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재산을 쌓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정선적인 재산을 쌓는 일에 대한 갈망, 욕망만은 맘껏 펼치고 싶은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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