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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Jul 13. 2024

아쉬움이 있어야 귀한 줄 안다

머드팩을 가르마 사이에 촘촘히, 양 옆 모발에도 듬뿍 발랐다. 나이들어가니 피부결과 머리숱과 머릿결만큼은 부지런히 가꾸게 된다. 헤어팩을 하고선 소파에 등을 기대 러그 바닥에 앉았다. 


토요일 하루도 순삭이다. 저녁 먹고 설거지를 하고선 그릇을 닦다 발견했다. 내 취향의 중간 볼 가상에 이가 나갔다. 조금 전 설거지하다 그런 모양이다. 몇 주 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는데, 그러고보니 둘 다 같은 브랜드에 사이즈만 다른 같은 디자인의 것이었다. 


꺄악. 하필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릇 2개가 이리 되었다. 가뜩이나 그릇과 접시 다 합쳐 딱 5개만 남겼던 건데, 매일 쓰던 그릇들이었는데 인연이 여기까진가 보다. 같은 디자인의 그릇 두 개가 연달아 이가 나가니 내 기운이 동했나 싶기도 하고 과연 우연일까.싶어 액땜한 셈치고 미련없이 버렸다. 


이제 남아있는 그릇과 접시라곤 3개다. 부족하지도 넉넉하지도 아무런 사심이 없다. 어쩌다 내 취향의 그릇이나 접시 하나를 발견하면 하나 사면 될 일. 오히려 조금 아쉬운 듯한 상태에서 사는 것이 더 큰 만족과 즐거움을 준다. 아쉬움이 있어야 귀한 줄 알게 된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절로 펼쳐졌으니 절로 사건이 일어났으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자연스레, 절로 그릇 2개가 비워지게 됐다. 비우면 비울수록 채워짐을 느끼는 나로선 아쉬움보단 내 기운을 살피게 되고 사소하더라도 어떤 주의 메시지는 아닐지. 어쩌면 역설적으로 좋은 징조이지 않을까. 어떤 일이 일어나려고 그러나.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살림살이가 단출한 편인데, 그럼에도 비울 건 없는지. 불필요한 것은 없는지.한다. 예쁘다고 덥석 사는 일은 없고 이것이 내게 꼭 필요한 것인지. 혹은 정말 내가 좋아하는, 내 취향의 것인지. 가슴으로 느끼고서야 사는 편이다. 물건에도 에너지가 있다. 기운이 있다. 잘 쓰다가도 고장이 나거나 깨지면 어느 순간 기운이 맞지 않아서구나.라는 생각이 불쑥 인다. 미련없이 아쉬없이 보내주는 일. 이런 것에서 조차 깨닫게 된다. 


저녁 설거지를 하다, 그릇을 마른 천으로 닦다 발견한 그릇 이 자국에도 사색이 인다. 키보드에 절로 손이 가는 것이 끊임없이 이는 이 사색을 풀어낼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사색도 결국 생각이다. 생각은 순간순간 이는 것이고 사라진다. 글쓰기는 그 순간순간 사색을 포착하는 도구다. 소재 하나만 전등 켜지듯 반짝이면, 불꽃놀이 폭죽처럼 파르르 터지면, 휘리릭 쏜살같이 글 하나가 써진다. 희한할 노릇이다. 


이럴 때면 도대체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가.싶다. 재밌는 상상을 해본다. 


외적인 치장에 에너지를 쏟는 것보단 내적인 치장에 에너지를 쏟는 일이 즐겁다. 외적인 세련됨보단 내적인 인 세련됨이, 외적인 고급스러움보단 내적인 고급스러움이 날 빛나게 한다. 사실 외면과 내면은 하나다. 옷, 신발, 가방의 것들을 사는 일보단 책 한 권을 읽는 일, 글쓰기, 사색하는 일에 집중하게 된 건, 결국 내면의 확장과 성장이 외면으로 투영돼 날 더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예쁜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마법이란 걸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눈을 본다. 언제부터인가 사람을 볼 때 절로 그 사람의 눈이나 눈동자, 눈빛이 보인다. 기운이 느껴진달까. 목소리와 말투에서도 그 사람이 절로 읽혀질 때가 있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가방을 메고 어떤 차를 타고 어디에 사는지. 무슨 직업을 가졌는지가 아니라 그 사람의 눈, 목소리, 말투를 보게 된다. 가진 것은 진짜 내가 아니란 걸 알게 된 후부터다. 


What i am에 초점을 맞추니 절로 그리 되었다는 설명이 맞겠다. 그러니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한들 내 조건이, 내 환경이, 내가 가진 것이 변하는 것 뿐, 진짜 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 안도랄까. 이전만큼 쉽게 무너지거나 쓰러지지 않게 됐다. 


살아보니, 진심으로 사람 사는데 그리 많은 물건이 필요한 건 아니구나.깨닫게 됐다. 사실 냄비가 여러개 있어도 쓰는 것만 쓰지 않나. 그릇이 여러개여도 손이 가는 것 몇 개만 계속 쓰지 않나. 생각해보면 모든 물건들이 그러하다. 그래서인지 물건에 대한 욕심이 줄었다. 이젠 물건이 많으면 내 정신도 저 산으로 가는 듯해 외려 불편함을 느낀다. 


이 또한 내게 맞으면 된다. 내게 알맞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겐 알맞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내겐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곧잘 생각하는데, 내게 알맞는 방식으로 나만의 질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나다운 길이다. 나답게 산다는 건 어찌보면 보통의 것들을, 당연시되는 것들을 조금은 비틀어 보고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저렇게도 생각해보고 나만의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도 해당된다. 


서른 후반의 현재 내 삶엔 아쉬움이 곳곳에 있다. 아쉬움이 있어야 귀한 줄 알고 소중히 여긴다. 각 용도에 맞는 물건 하나면 충분한데, 둘 이상을 갖고 있으면 하나가 아니라 기존의 것까지 2개 모두 소홀하게 된다. 너무 마음에 든 우산이 있어 마침 세일도 하길래 2개를 들였더니 그 우산 모두 처음 봤을 때만큼 예쁘지 않았다. 설레지 않았다. 이토록 간사한 마음구나.싶으면서 그렇게 알아간다. 아쉬움이 있어야 한다.하고. 


나는 이런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기술을 익혀 나간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적인가. 살아있음은 당연한 것은 아니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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