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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Jul 16. 2024

작지만 소중한 루틴  

날씨가 흐리다. 비가 올랑말랑 하기 직전의 무드. 이 아침 기운이 몽글몽글하다. 어제 저녁으로 간단하게 샌드위치 하나만 먹었더니 자기 전에 출출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삶은 달걀 2개, 미니 돼지 감자 2개, 방울토마토 올리브오일 마리네이드, 병아리콩을 한 데 섞은 샐러드, 잡곡밥으로 김밥 한 줄을 돌돌 말았다.


설탕을 안먹는데,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절로 그리 된다. 요리에 설탕이 들어갈 일이 없다. 설탕 없이도 무얼해도 충분히 맛있다. 단맛은 재료 본연의 것을 선호하고 꿀을 넣으면 된다. 자극적이지 않다고 해서 맛이 없지 않다. 자극적이지 않은 맛에 길들여지만 자극적인 맛에 외려 예민해진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맞는 음식과 맛을 찾는게 중요하다. 내게 알맞는 것이어야 한다. 신선한 식재료로 직접 요리해먹으면,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면 자극적인 단맛, 간식이 당기지 않는다. 배가 금세 혹은 자주 고프지 않다. 군것질 하지 않고 배가 고플 때 먹으면 살찌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 전, 하루에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소소하지만 소중한 나만의 루틴. 나만의 질서를 해나가는 일은 안정감과 편안함, 살뜰함, 굿 바이브를 가져다준다.


자기 전, 내일 먹을 병아리콩 크게 2줌을 물에 불려 놓는다. 주로 8시 반에서 9시 사이 로컬푸드 직매장이 문닫을 무렵 가서 장을 보는데, 비트, 방울토마토, 브로콜리, 청양고추, 두부, 계란을 사와 가지런히 정리하기 시작한다. 매일 조금씩 장을 보는 편이다. 재료의 신선함을 유지한다. 방울토마토도 깨끗하게 씻어 슬라이스 하는 사이, 은근 몰입의 경지로 들어가는데 사뜩한 생각이 쉬이 물러간다. 올리브오일 듬뿍 넣고 마리네이드 해서 스테인리스 통에 가득 담는다.


청양고추는 잘게 썰어 비니거에 절여 피클을 만들어 놓는다. 계란도 계란그릇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둔다. 사소한 것 같지만 별 거 아닌게 아닌 것이. 소소한 성취감이랄까. 기쁨이 있다. 하나씩 하나씩 야물게 살림살이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있다. 자기 만족감이겠다.


낮동안 베란다에서 빠삭하게 빠작 잘 말려진 수건과 옷가지들을 갠다. 어찌나 뽀송한지 왼쪽뺨에 푹 대면 꺄악 그 촉감에 풍덩 빠진다. 스트레칭도 끄억 으쌰. 나름 야물게 한다. 텀블러도 잘 씻어놓고 집에 도착해서도 은근하게 분주하다. 분리수거 할 게 있으면 바로바로 버리는 편이라 분리수거는 아침 저녁 없다. 쓰레기류는 바로바로 버리는 편이 깨끗하고 냄새나지 않고 또 기운적으로 좋다고 생각해서다.


아침 저녁으로 살뜰하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세안이다. 화장을 하지 않아서 자극적인 폼 클렌져를 사용할 일이 없다. 천연 비누가 있지만 안 쓸 때가 더 많다. 아침에 일어나면 혀 클리너를 사용해 입 안을 헹군다. 그러곤 전용 내열 유리 티포트에 물을 끓인다. 조금 식힌 후, 따뜻한 물로 흰 세안 수건으로 부드럽게 3-4번 닦아낸다. 전혀 귀찮은 게 아닌 것이 유일하게 하는 피부관리라고 할까. 그렇기도 하고 내 피부결을 위한 것인데, 내게 나름 잘 맞는 케어인데 즐거울 수밖에 없다.


세안 수건은 그때그때 깨끗하게 빨아 널어놓는다. 오늘 아침에도 세안을 하다, 어쩜 이리 기분 좋은지. 이 또한 나만의 질서다. 선물받은 수제 수세미도 꺼냈다. 가끔 이런 방식으로 쓰던 것들을 바꿔주는 것만으로도 기분전환이 되고 환경을 리프레시하는 효과가 있다.


요로코롬 세안하고 나서 토너를 발라 톡톡 발라준다. 아이브로우 펜슬로 눈썹 한 번 그리면 끝이다. 나이 들어가며 좋은 점이 많다. 내려놓는 것들이 많아지고 수용하는 법도 알게 되고 나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너그러워진다. 어떤 것이 나다운 것인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하나하나 발견하는 기쁨이 있다. 의도적으로 혼자이기를 선택하기도, 혼자있음이 굉장히 편안해지는데 고독과 벗이 된다는 건, 내겐 유익한 것이다.


딱 하나 있는 컵은 빈티지한 머그컵인데 밑은 흙으로 빚은 게 테가 난다. 컵에게서 흙이, 땅이, 대지가, 자연이 느껴진다. 그 컵으론 주로 커피를 마신다. 물은 입구가 큰 둥근 와인잔 하나에 또르르 딸아 마신다. 필요 없어서 비울까하다가 머그컵이 하나라 물 컵 용도로 두었다. 와인잔에 와인만 딸아 마시라는 법이 어디 있겠나. 물 한 잔에 분위기 있다. 내가 좋으면 되었다.


새벽 5시 33분에 눈이 똑 떠졌는데 지금까지 요것저것 소소하게 살림을 했는데 아직 오전 9시 30분이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순전히 내게 달렸다. 순간순간 몰입의 상태로 작지만 소소하지만 수수하지만 소중한 나의 루틴을 지켜나가면 내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순간순간. 현재.를 살아가게 된다. 시간성보단 공간성과 확장성에 관심이 있다.


나만의 질서, 나만의 루틴을 꾸준하게 지켜나가는 일은 정신건강에 매우 유익하다. 이롭다. 내 삶이 어떤 종류든, 어떤 방식에서든 내 자신에게 알맞아야 한다. 내 루틴은 누가 알아줘야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알아주면 된다.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느낄 수 있다. 마음이 진짜 제자리에 있는 법이 없구나. 자꾸 도망간다. 자꾸 어디로 간다. 알아차리면 된다. 주의를 내면으로 돌리는 연습으로, 알아차림으로 날뛰는 마음을 순간순간 데려올 수 있다. 그러니 변덕스런, 때론 사특하기까지한 마음을 데리고 사는 건 숙명이겠다. 그러니 마음과 싸워서 무엇하나.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로 한다.


이따금씩 풍우처럼 휘몰아치는 두려움, 불안, 우울도 결국 집착때문이라는 ,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이제는 가만히 지켜본다. 바라본다. 분명 일어날  했기 때문에 일어났겠다. 제대로 인식해야만이 제대로 바라볼  있다.


매일 생각한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그러면 우울한 마음도, 불안한 마음도 휘리릭 사라진다. 그 어떤 것도 문제가 없다. 모든 것은 그대로 온전하다.  


종종 찾는 재래시장이 있다. 작은 노포집에서 단팥죽을 먹고 오는 일이 내겐 낭만인데, 이번 주 내 가서 먹고 와야지^^ 생각만으로도 이토록 설레게 있기없기. 있기다. 낭만은 늘 내곁에 살아 숨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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