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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plate Jul 05. 2024

초아의 다이어리  

5 귀요미 조카는 에어컨, 세탁기, 리모콘부터 작해 엘레베이터까지 기기에 관심이 많은데 요즘은 변기 원리에  빠져있다. 언니네집은 마치 실험실같다. 작은 소품에서부터 흥미롭다. 아이들이 마음껏 호기심을 펼칠  있게.


어제 보니, 변기에 푹 빠져있는 아들을 위해 형부가 안방 화장실을 깨끗하게 완전한 건식으로 조카의 실험실로 만들어놨다. 철물점에서 사 온 변기 호스를 선물받은 조카는 신이났다. 이모이모~~ 일루 와바! 하며 끌려간 그곳에서 변기의 원리에 대해 톡톡히 배울수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깔깔껄껄 재미나 어쩔 줄 몰랐다. 순간순간의 기쁨을 마음 껏 누려야지.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야지.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이토록 가벼울 수가 없었다. 삶이란 그런 것. 모든 것은 다 내안에 있다.


작고 사소해도 감사할 줄 알고 만족할 줄 알고 기뻐할 줄 알고 즐거워 할 줄 알고 감동할 줄 알고 감탄해 할 줄 줄아는 것. 어찌보면 마음 근력처럼 능력이다. 습관이다.


집에 오곤 마음이 평온해서인지. 편안해서인지. 고요해서인지. 곧장 잠이 들어버렸다. 숙면의 길은, 마음의 평온이다.


요즘 부쩍 책이 날 부른다. 책은 내 일상이 되었지만, 순전히 내 마음이 일어야 읽는 편이다. 그게 거의 매일이라는 것이지만^^ 틈틈히 짬을 내, 오며 가며 읽는데 하루 1권은 뚝딱이다. 책의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까지. 꾹꾹 눈으로 담고 책을 덮었을 때의 그 묵직함. 책의 맛이다.


책을 선물한 적도 권한 적도 없다. 책도 인연이라는 생각에서다. 내게 맞는 책이 상대에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나와 동하는 책이라면 절로 나를 부를테니, 나도 절로 책을 부를테니, 이 또한 내맡김이다.


오전에 잠깐 동네 한바퀴 산책하다 과일가게에 놓인 복숭아 상자들이 내 눈을 끌었다. 즉흥적이었고 가격도 며칠 전보다 싸졌다. 복숭아도 딱딱한 복숭아만 먹는데, 한 박스 사갈까?순간 멈짓했다. 이내, 혼자 두고 먹긴 좀 많다는 것과 한 꺼번에 식재료를 사두는 일이 없어 저녁에 돌아오면서 로컬푸드 직매장에 낱개로 파는 게 있는지 보자하고 돌아섰다. 쨌든 복숭아가 당겼고 내 머릿속에 복숭아 이미지가 뿅하고 몇 분 스친 것이다.


그런데 좀 전, 아는 분이 복숭아 3개를 내게 건네는 것이 아닌가. 꺄악! 나는 기뻐 어쩔 줄 몰랐는데.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나는 쉬이 별 거 아니라 넘어가지 않는다. "아침에 복숭아 사려고 했는데. 세상에 내 눈 앞에 복숭아가 딱 나타났네? 역시 세상은...^^ 우주의 선물이군." 요로코롬 기똥찬 해석을 한다.


복숭아 3개를 보고 있자니 어찌나 든든한지. 넉넉한 마음인지. 감사함이 절로 든다. 내 안의 세상이 감사함으로 가득차서겠지. 내 안의 세상이 아름다워서겠지. 의식의 반영이 물질, 현상이니, 의식만큼은 말똥말똥하게 초롱초롱하게 세우려고 한다.


명상을 해보면 안다. 눈을 감고 있다고 해서 금세 내 안이 평온해지지 않는다는 걸. 눈을 감고 있으면 조금은 안정되는 것 같은 그 느낌이 때론 명상하고 있구나. 잘하고 있군.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마음은 가만히 붙어있지를 않는다. 어떻게서든 떼를 써 밖으로 나간다. 나갔다 들어왔다 제 멋대로다. 그런 마음을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상을 꼭 해야하는 이유는,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죽음을 인식하는 것도 효과가 있다. 나는 매일 죽음을 생각한다. 죽음은 지금 이 순간. 여기에. 현재를 를살게 하는 가장 강력한 명제다. 나는 언젠가 죽는다. 유한한 삶에서 나는 무엇을 기대하나? 어떻게 살 것인가?는 죽음을 명료하게 인식할 때 선명해진다. 죽음이 있어 자기 생의 아름다움과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내 삶의 태도와 가치관과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도 죽음을 명징하게 인식하기 시작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나는 언젠가 죽는데, 두려울 게 무엇이 있는가? 무엇에 얽매이는가? 나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아는가? 마음을 아는가?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후부터 내 삶은 달라지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삶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내가 사는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대전환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책을 읽으며 걸었는데, 아주 낮게 서있던 울창한 나뭇가지가 정확히 내 키, 내 머리 꼭대기에 맞닿아 고개의 수그림 없이 지나왔다. 훅 지나서야 나뭇잎이 닿는 느낌에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는데, 이마저에도 삶은 절로 펼쳐지는구나. 어느 것 하나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구나.한다.


모든 것이 컬러TV화면의 스크린처럼 선명하게 보일 수 있는 건 순전히 내 안에 달렸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오감으로 느끼고 받아들이면 우주는 늘 선물을 가져다준다. 어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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