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옮기다 우다닥 컵이 떨어졌다. 보들한 러그 위에 떨어져 깨지진 않았겠구나 싶었는데 아뿔싸. 희한하리만치 렌틸콩 하나만한 크기로 살집이 떨어져 나갔다. 내 마음에 쏙 드는 내 취향의 도자기 컵이기도 했고 딱 하나 남긴 유일한 컵이었기 때문이다.
꺄아악. 이미 벌어진 일. 그럼에도 꿋꿋하게 사용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설거지를 마쳤다. 사유는 어김없이 자동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애지중지 했던 마음이 곧 집착이었음을 깨달았다. 집착하니 이렇게 더 달아나버리는구나. 아직 온라인에 재고가 남아있어 하나를 구비할까 했지만 이내 멈추었다.
이유는, 살짝 살집이 나간 것이나, 금이 간 것이나, 멀쩡한 것이나 사실 다 하나 아니던가. 본질이 같은데 깨지기 전이나 후나 컵 너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내 마음이 변한 것이다.
내 식기 중 컵이란 이것이 유일하다. 이 컵을 인연이 다할 때까지 잘 사용하기로 한다. 내가 선택했고 이 컵이 날 선택했고 서로가 서로를 당겼기 때문에 네가 나에게로 왔고 나도 너에게로 간 것 아니겠니? 살짝 깨졌다고 그 모양이 변했다고 나와의 인연을 이토록 쉬이 보낼 순 없지 않은가. 이토록 쉬이 이별할 수 없지 않은가.
컵 하나에도 단상이 인다.
나와의 관계도, 가족과의 관계도, 인간관계도 모든 건 인연의 작용이다. 연애할 때, 상대의 단점보단 장점을 더 크게 봐 줄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장점 중에 단점이 하나 있다고해서 상대에 대한 마음이 식지 않는 것처럼, 그 단점도 다른 사람에겐 단점이 아닐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살면서 너무 복잡하고 많은 생각들로 개념화하고 이분화하고 지레짐작 판단해 나 자신과는 물론 타인과의 관계를 무너뜨리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야아 한다.
생각은 내가 아니란 걸. 알아차리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 어릴 적부터 궁금했다. 나는 나를 볼 수 없는데, 내가 볼 수 있는 건 거울에 비춰진 모습인데, 그게 진짜 나일까.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보는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거울 속에 비친 모습과 같은 걸까.
눈은 눈을 볼 수 없지 않은가.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에 질문하고 답하다 보면 조금씩 선명해진다. 어느 순간 물리가 트이는 것처럼.
공원을 지나오며 어김없이 자주 앉는 자리에 앉았다. 십 오분여 내면 어딘가의 심연으로 여행을 떠난 여행자가 됐다. 내가 종종 앉아 명상을 하곤 하는 그 자리는, 큰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다. 쩌렁쩌렁한 매미소리와 그린그린한 나뭇잎들, 바람에 흩날려 바닥에 흐트러진 나뭇잎들, 파스텔톤의 하늘이 나를 꼭 안아준다. 그 사이 벌레가 내 발목을 문 모양이다. 긁적대며 그래, 너도 너의 역할을 다하고 있구나.한다. 15분 동안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현재라는 공간에서 나와 자연, 우주 만물 모두가 하나로 존재하는 생명력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은 인연이다. 모든 것은 그 자체로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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