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살은 보약이다. 영양제를 따로 챙겨먹지 않는 나로선 자연이 영양제고 보약인 셈이다. 따숩고 포근한 가을 햇살이 날 꼬옥 안아준다. 주변에선 이젠 정말 영양제 챙겨먹어야 한다. 몸 챙겨야하는 나이다.라는 말을 듣지만, 어떤 대단한 철학이 있어서는 아니고 영양제를 먹지 않아도 괜찮아서 그렇게 살아와서다.
대신 신선한 식재료로 그때그때 직접 요리해 먹는 것. 먹는 걸 잘 먹고 푹 잘자기. 충분한 숙면을 취하기. 내게 알맞는 운동, 산책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있다.
가을 하늘 아래 틈틈이 걷고 있자면, 내가 사는 이 세상이, 이 우주가 어찌나 아름다워 보이는지. 내 삶이 어쩜 이토록 아름다워보이는지. 자연은 늘 어떤 댓가없이 많은 걸 내어준다.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짧아진 가을. 불과 몇 주새면 겨울이 이 게절을 밀어낼텐데, 섭섭해 할 새 없이, 작별할 새 없이 스러져가는 가을이 그래서 이토록 더욱 소중할 수밖에.
신호를 기다리다 마주친 신호등 코 앞 자전거 가게를 기웃했다. 즉흥적으로 "바구니 달린 자전거 얼마에요?"라고 물었다. "26만원이요!" 어쩌자고 자전거 가격을 물었을까? 완벽한 뚜벅이가 자전거를 탄다는 건 마치 찐 뚜벅이의 의리에 아니된달까.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과 또 다르다고 생각하는 건 무엇^^ 뭐든 제 마음이다.
자전거를 생각하면, 직장인 시절 종종 따릉이를 타고 한강시민공원 길을 따라 여의도역까지 가서 5호선을 타거나 여의도환승센터에서 160번이나 260번 버스를 타고 광화문역에서 내리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파리 살 때 3구에 살았다. 동네 모노프히와 비오매장으로 장보러 갈 때면, 뒤에서 빵빵 하거나, 옆으로 스윽 "헬로 초아~~!!" 소리가 들려 쳐다보면 친구 제시카가 9살난 딸 호만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지나가던 그 모습이 선명하게 피어오른다.
어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지난 내 삶의 순간순간들이 어쩜 이토록 아름답게만 보이는지. 느껴지는지. 그마만큼 그리운 거겠지. 아름다웠던 거겠지. 행복했던 거겠지.
시월을 맞이해 소소한 사치를 부렸다. 조금 전 디퓨저를 구매했다. 언젠가.를 위해, 미래를 위해,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해 내 일상을, 내 하루를, 내 인생을, 내 삶을, 내 즐거움과 기쁨을, 내 환희를, 내 행복을 더는 유보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소소한 것들에서부터 미루지 않기로.
새로 선택한 향은 어떨까? 침실과 집 안 곳곳에 은은하게 퍼지겠지? 스러져 가겠지? 스며들겠지? 나는 또 얼마나 행복해할까.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낭만이 있고 풍류가 있고 행복이 있다.
이 계절을 만끽하고 있자니, 생뚱맞게도 "후지고 싶지 않다. 후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불현듯 일었다. 내 안의 소리임이 분명한데, 늘 그렇듯 어쩌자고 후지지 않고 싶은 마음. 한 문장이 일었을까? 이 또한 우연은 아닐텐데.
마인드가 촌스러운 건 내겐 견딜 수 없는 것들 중 하나다. 나이 들어갈수록 나란 사람도, 내 마인드도, 내 태도도, 내 행동도, 내 목소리도, 내 말투도 정말이지 후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커져만 간다. 후지지 않는다는 건 내겐 용기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고 상냥함이고 친절함이고 따뜻함이고 인간적인 것이고 수용이고 받아들임이고 내려놓음이고 군더더기 없음이다.
사소하지만 새로운 향의 디퓨저를 구입한 것 역시 후지 않고 싶은 내 마음의 발현 혹은 의지의 발현이기도 하다. 은은한 향은, 또 그 잔상은 내가 좀 더 여유로워지는데, 좀 더 편안해지는데, 좀 더 평온해지는데 도움을 준다.
인생이 어디 내 맘대로 되는 것인가. 어디 계획대로만 되었던가. 어떤 비바람이 몰아쳐도 폭풍우를 만나도 파도를 만나도 씩씩하게 내 갈 길을 가고 싶은, 헤쳐 나가고 싶은, 딱 그 마음, 후지지 않는 마음이다.
나와의 관계에서도,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 세상과의 관계에서도 후지지 않고 싶다. 딱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기. 그러면 되지 않을까.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