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체험
지난 나를 만났다.
멀리가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꼬박 1년 만이었다.
지난 이 계절의 나를 만났다
그 계절의 네가 날 부른건지.
이 계절의 내가 널 부른건지.
무심한 만남이다.
커피를 사러 나갔다.
서늘해진 바람에 옷깃을 여민다.
분명 차가워진 거 맞는데, 쌀쌀맞아진 거 맞는데,
그러면서도 혹시나 내 마음이 이토록 쌀쌀맞아진 건 아닌지.
혹독하게 추워진 건 아닌지.를 본다.
마음의 혹한은 언제라도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차가운 수의 계절이 오고 있다는 걸.
스산한 음의 계절이 오고 있다는 걸.
호흡하고 정신을 가다듬는다.
내 안에 사색이라는, 사유라는 모터가 달린 것인지
쉼없이 돌아가는 내 안의 것으로 내 영혼은 춤추고 노래한다.
내 장속 장내 미생물이 꿈틀거린다.
어느 것 하나 연결돼 있지 않은 것이 없는 세계, 단독으론 존재할 수 없는 것의 세계.
신비롭고 경이로운 관계성.
방심하는 순간 내 감정을 지배하고 고결한 내 영혼에 닿으려 한다.
두 발을 땅바닥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건,
영혼을 파괴하지 않겠다는 것.
나는 내 영혼을 파괴하지 않을 책임이 있다는 것.
실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일종의 자기 주문이다.
마흔 가까이가 되어서야 깨닫기로 되어있었던 걸까?
이토록 많은 세월이 필요했던 걸까?
빼곡히 10년이란 세월은 고한의 시절이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서슬퍼런 고독한 세계였다.
앙칼지고 모질고 을씨년스런 혹독한 계절이었다.
봄이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은 세계.
황량한 벌판위에 홀로 서 있는 기분.
거센 파도가 사정없이 달려드는 대서양 한 가운데 망망대해 위의 그림자같았다.
그땐 왜 그토록 힘들어만 했을까?
슬퍼만했을까?
절망했을까?
날 안아주지 못했을까?
직시하지 못했을까?
사랑하지 못했을까?...
자기 자신에 대한 어리석음, 그 어리석음으로 인한 뼈저린 회한, 안타까움으로 또 다시 무너지기도.
내가 아닌 것 같은.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시절을 겪은 후에야 이토록 알게 된 것들, 깨닫게 된 것들이
필연이었다는 걸.
내 운명을 사랑하게 되었다.
슬픔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소멸되는 것이 아니었다.
슬픔은 내 영혼을 위로한 뒤 하늘에 닿아 빛나는 별이 되었다.
슬픔을 사랑하게 되었다.
슬픔은 고독이었고 고독은 날 질문하게 했고 성장하게 했다.
이 세상은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아름답기만 이 세상을 나는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나는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
지난 10년의 세월은 지리멸렬한 처절한 고독의 시간이었다.
고독의 시간으로 인해 외로움이란 단어는 내게 없는 것이 돼버렸다.
고독은 외로움마저 삼켰다.
고독은 사랑이었다.
내게 고독은 분명한 필연이었다.
내가 이 지구별에 올 때 마치 예정돼 있었던 것처럼.
"지구별 체험이 곧 시작될 거야.! 체험이 끝나는 날, 너는 사라지지 않아. 소멸되지 않아. 자기 자신이 되어가지."
어른이 되어가나보다.
절로 지적인 것들에. 고통스런 것들에. 아름다운 것들에. 연민과 사랑이 흐른다.
더욱 친절해지고 싶고 상냥하고 싶고 사소하고 싶은 마음.
지구별 나.라는 세계의 시인이 되고 싶은 극적인 열망.
소멸되지 않을 내 영혼을 마주하는 순간은 내가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할 때. 궁금해 할 때.
지구별 세상은 이런 것이었다.
지구별 여행자에 비친 세상은, 이토록 고통스럽고 눈부시고 빛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