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존경하는 한 교장선생님과 차 한 잔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오랫동안 학교장으로 근무해 오고 계신지라 학교 운영에 관한 도움이 되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교장선생님과의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이 바로 '학부모와 전쟁 선포'였다. 이야기의 내막은 이러했다. 본인이 그 학교로 처음 부임했던 날 학부모로 추정되는 정체 모를 분이 학교에 들어와 교실 구석구석을 순례하듯 돌아다니며 수업하는 교실을 촬영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화들짝 놀란 그 교장님은 뭐 하는 사람이냐, 왜 함부로 사진 찍느냐, 학교에 왔으면 용건부터 이야기하시라, 교장실로 찾아와서 아무개 아무개다 정도의 인사가 먼저 있어야 하지 않느냐 등으로 선제공격을 했다고 한다.
선제공격을 한 이유는 이 학교로 부임해 오기 며칠 전 교육과정 만들기 회의를 하면서 선생님들로부터 학부모에 관한 흉흉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교장선생님, 이것 함부로 우리끼리 정할 수 없어요. 학부모회에 동의를 받아야 해요"
부임해 올 학교의 선생님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듣고 기가 찼다고 한다. 교육과정의 전문가는 교사인데 왜 학부모에게 동의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고 한다.
막상 봄이 되고 학기가 시작되면서 선생님들의 교육적 활동이 왜 위축되어 있는지, 선생님 한 명 한 명이 피해의식에 눌려 있는지 한 통화의 전화를 받고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다짜고짜 자신은 누구누구며 학교 행사를 하면 누구누구를 불러야지 왜 알리지 않고 했느냐 이런 식으로 삼십 분 넘게 새로 부임해 온 교장에게 잔소리를 했다고 한다.
기가 찰 노릇이 아닌가.
그 교장님은 이러다간 학부모들에게 끌려갈 것이 불 보듯 뻔할 것 같아 전화받은 다음날 교직원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스스로,
"학부모와의 전쟁을 선포한다"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학부모회 관련 임원분들을 교장실로 모두 불러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불평, 불만, 요구사항 등등을 다 들은 뒤 자신의 학교 운영 철학을 소신 있게 말하고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선생님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고 교장에게 직접 이야기하거나 교장실로 찾아오시라고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학교장이 직접 학부모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그 학교는 지금까지 학부모 관련 민원으로 힘든 적이 한 건도 없다고 한다.
그 학교 선생님들은 참 행복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부모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행위가 학교의 정당한 교육적 활동을 하기 위한 초석이었던 셈이다. 전쟁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학교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어야 하고, 전쟁을 선포한 후 학부모들의 각종 이야기들을 학교장 본인이 직접 마주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이 시대에 몇 안 되는 용기 있는 교장님이라고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