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2 - 우울증 극복기
나는 사랑 받고 자란 사람들이 부러웠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 받고 자랐음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이 부러웠다. 그렇다고 내가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이냐, 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부모님에게는 사랑이었을 것이다. 비록 그로 인해 내가 아프고 힘들었다고 해도.
우리 집은 소위 말하는 막장 집안은 아니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콩가루같은 집안도 아니었다. 생각보다 흔하다는 가정폭력이 있는 집안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아픈 까닭은 무엇일까.
"여우씨는 기본적으로 남자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요."
용기를 내어 정신과를 방문한 날, 나는 선생님과 가족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답이 없는 답안지에 빼곡히 적혀 있는 것은 내가 남자에게 드는 거부감, 그리고 아픈 가족애였다.
"어릴 때는 아빠가 미웠어요. 엄마가 불쌍했고. 아빠가 매번 엄마한테 소리지르고 물건을 던지고 그랬어요. 그래서 어느 날은 아빠한테 성질을 부렸어요. 엄마가 너무 불쌍하다고, 그렇게 하지 좀 말라고. 그러자 아빠는 저를 때렸어요. 아빠는? 아빠는 안 불쌍하냐? 그 날은 아빠가 더더욱 미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가 얼마나 슬퍼했을까 싶어요."
"지금은 아버님이 밉지 않아요?"
"네, 지금은... 어쩐지 아빠의 마음도 이해가 돼요."
남부럽지 않은 딸이고 싶었다. 똑똑하고 재능 있는 딸이고 싶었고, 자랑할 만한 착한 딸이고 싶었다. 언제나 그랬다. 그건 내가 잘난 존재가 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엄마아빠가 나로 인해 행복하기를 바랬다.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나는 늘 나를 비관하던 말을 생각해냈다. 난 할 줄 아는게 없어. 나는 머리도 나쁘고, 잘 하는 것도 없어. 나는 키도 작고, 그렇게 예쁘지도 않고, 성격도 나빠. 난 애초에 잘못 태어났어.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걸. 그 말은 내 심장에서 파장이 되어 머리까지 울렸다. 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았다.
'자식이라고는 뭐 하나 제대로 큰 애도 없고.'
그건 아빠의 말이었다. 화에 못이겨 순간적으로 내뱉은 말이었겠지만 그 말은 오래도록 내 가슴에 새겨져 나를 괴롭혔다. 잊을 만 하면 불쑥 고개를 내밀어 나에게 속삭인다. '넌 정말 쓸모 없는 아이야.' 그럴 때면 나는 베개에 고개를 박고 울음을 삼켰다.
첫 가위에 눌렸을 때, 나는 아빠가 세상을 떠나는 꿈을 꿨다. 꿈 속에서 아빠는 나를 두고 깊고 긴 바닷가로 들어갔다. 커다란 파도가 금방이라도 아빠를 집어 삼킬 것 같았고, 나는 큰 소리로 아빠를 불렀다. 그러나 아빠는 그저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커다란 파도가 괴물의 입처럼 아빠를 덮쳤고, 그 순간 나는 눈을 떴다.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 아빠한테 무슨 일이 생기나? 사고라도 나면 어쩌지? 아니 실은, 내가 그토록 아빠를 미워하고 있는거면 어쩌지?
오랜만에 아빠와 통화를 했다. 잘 지내? 아프지 말고, 몸 건강히 챙겨야 해. 그러면 아빠가 말한다. 너나 잘 챙겨. 고마운 것도 미안한 것도, 서운한 것도 미운 것도, 그 어떤 것도 전하지 못한 채 전화를 끊는다.
아빠. 기회가 된다면 꼭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어.
난 아빠를 미워하지 않아, 아니 사실 사랑하고 있어.
비록 아빠로 인해 아주 많이 아팠다고 하더라도
나는 언제나 그랬듯, 늘, 아빠를 생각하고 있어.
언젠가 내가 당당하게, 성공한 자식이 되어 아빠 앞에 설 수 있는 날이 올까?
만약 그런 날이 오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 되어 나타나더라도
그래도 날 사랑해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