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우울증이란

챕터 2 - 우울증 극복기

by 여우씨

"내가 이상한 걸 들었는데 말이야"


대학교 동기인 연의 말에 나는 단번에 어떤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있었다. 대수롭지 않은 척, 태연한 척 하려 했지만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뭔데?"

"너 교수님 회사, 무단 결근했다고.."


그 짧은 순간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여러가지의 변명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지만 마땅히 어울리는 답변을 찾지 못했다. 사실 아니지? 라는 눈빛을 보내는 연이에게 나는 맞아, 라고 대답했다.


이십대 초반의 나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다. 나는 스스로 굴 안으로 들어갔고 그 어떤 사람이 와서 손을 내밀어도 잡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확히 어떤 것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마주하는 것 조차도 버거웠다. 모든 것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고작, 회피였다.






나는 순간적인 감정을 숨기는 데에는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그 재능은 면접을 볼 때는 아주 뛰어나게 작용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큰 양날의 검이었다.


"내가 여우씨 긍정적이고 밝아서 뽑은 건데."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야. 죄송할 건 아니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내가 꾸준히 밝은 척을 하는 것은 가히 불가능한 것이었다. 내 감정이 결국 탄로나버리면 나는 가면으로 그들을 속인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밝지 않은 사람이, 매일 8시간 9시간을 밝은 척 한다는게 감히 가능할리 없었다. 나의 부정적인 자아와 회피하는 성향은 언제든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 이 정도면 회사가 아니라, 그냥 너가 문제인 거 아니야?


남이 나에게 했던 말을, 나는 스스로에게 똑같이 질문했다. 암만 생각해도 문제는 나인 것 같았다. 이럴 거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그냥 내가 존재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굴 속에 있던 나는 이따금 한 발자국 세상 밖으로 나오곤 했다. 행복한 일이 있으면 그것이 마지막일까봐 두려웠고, 평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할 때면 그런 나를 비웃듯 우울감은 더 크게 번져 나를 적셨다. 역시, 내가 문제인 가봐. 나는 모든 인간관계를 그렇게 결론지어 버렸다.


귀엽고 사치스러운 것들을 샀다. 나중엔 아무 쓸모도 없을 그런 것들을 샀다. 택배 박스가 집앞에 가득 쌓여도, 나는 그걸 열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주문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사고 또 샀다. 눈에 예뻐보이는 옷도 샀다. 난 그 옷을 단 한번도 입고 나가지 않았다. 그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우울감을 무기 삼아 배달을 잔뜩 시켜먹은 날에도 새벽이 되면 배달 앱에 들어가곤 했다. 달달한 디저트를 마구 시키고 입에 쑤셔 넣었다. 배고프지 않았다. 오히려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 것들을 전혀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하는. 우울증이란, 그런 것이었다.






약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매일 꾸준히 먹는 것만으로도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었다. 물론 그것이 내 모든 불안감과 걱정까지는 이겨내지 못했지만 전처럼 끝없이 우울에 잠기는 것에는 예방이 되었다. 하지만 사건은 늘 내가 조금이라도 안심하고 있을 때 터졌다.


"너 무슨 일 있어?"


표면적으로는 멀쩡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부팀장님이 내게 물었다. 나는 딱히 무슨 일은 없었지만,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내 표정, 내 행동. 그 모든 것들이 나를 그렇게 비추었으니까.


"사실은요.."

"뭔데, 얘기해 봐."


망설이는 내 모습에 부팀장님은 문을 닫으며 근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셨다. 그 눈빛에 나는 결국 진실을 기반으로 한 거짓말을 하고야 말았다. 저 사실, 우울증이에요. 너무 힘들어서 병원을 다녀왔는데 일반 정상적인 사람들과 차이가 심하대요. 그래서 약을 먹고 있는데요. 근데도 너무 힘들고, 버거워요. 일하는 것조차 무서워요. 반은 맞는 말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말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괜찮아. 괜찮을거야. 부팀장님이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나는 아이처럼 안겨 울었다. 그동안 힘들었던 것에 대한 설움, 어쩌면 거짓일지 모르는 일부 감정에 대한 미안함, 그동안 어떤 사회에서조차 위로받지 못했던 따듯함, 정확히 어떤 것에 의한 눈물이었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하나 확실한 건. 난 여전히 나를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keyword
이전 07화2-3. 나는 나를 미워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