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우울과 마주하다 (2)

챕터 2 - 우울증 극복기

by 여우씨

백수의 삶은 쉽지 않았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지 하다가도 불안감에 젖어 매일 밤 채용공고를 뒤적였다. 1분 1초마다 감정이 떠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타인의 앞에선 그 누구보다도 여유만만한 척 했지만 혼자의 공간에선 눈물을 훔쳤다. 세상은 이렇게 바쁘게 돌아가는데, 나 하나 들어갈 자리가 없구나. 어느새 시간 감각조차 무뎌져, 밤에 눈을 뜨는 일이 많아졌다.


"난 우리가 데이트할 시간이 더 많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남자친구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그럴만 했다. 일을 핑계로 하지 못했던 데이트를 백수가 되면 언제든지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을테니.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나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딱히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었고 무언가 준비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남자친구가 내게 '뭐해?'라고 물을 때면 나는 선뜻 답하지 못해 어느 순간 연락을 미루게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하루를 버리는 내가 너무 쪽팔렸고 나는 그 쪽팔림을 내 입으로 말할 용기가 없었다. 당당하고 빛나던 시기의 나를 만났던 그 애에게, 더 이상의 실망감을 안겨주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래- 결국 변명 뿐이었다.


"난 솔직히 너가 집에서 뭘 하는지도 모르겠어. 쉬고 있으면 뭘 하면서 쉬는지라도 얘기해줄 수 있는 거 아냐?"

"그냥, 똑같아. 똑같이 쉬는거야."

"그럼 그 시간에 나를 만날 수도 있는 거잖아."


너의 말이 맞다. 나도 알고 있다. 알고 있음에도 그러지 못하는 건 나에겐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고, 불투명한 미래에 기댈 곳이 없고, 만날 때마다 가라앉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고, 이런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건 내게 남은 건 고작 알량한 자존심밖에 없기 때문이야. 그리고.


"미안해."


돈 때문에 계산해야 하는 데이트를 해야하는 것도, 쪽팔리잖아. 안 그래?


"우리 그만 만나는게 좋겠어."






잠시나마 달라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일을 하고, 평범하게 사람을 만나, 평범하게 사랑을 하는 것.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진 순간 나는 다시 굴 속으로 들어갔다. 그 때는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보내려고만 했던 것 같다.


늘 들어가던 채용공고는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맛있는 걸 먹는 것이 행복했던 사람인데 이젠 뭐로든 허기를 채우려고 했다. 먹고 싶은 것이 없었고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대충 하루 한끼를 때우고 컴퓨터만 바라봤다. 유튜브는 하루에도 수십만개씩 새로운 영상을 보여줬다. 나는 눈에 보이는 대로, 손에 닿는 대로 영상을 보았다. 그것은 킬링타임용 드라마이기도 했고, 짧은 개그이기도 했고, 자극적인 고민상담이기도 했고, 면접강의라던가 취준생 브이로그라던가, 이따끔씩 우울증에 관한 영상을 보기도 했지만 그게 다였다. 나에겐 새롭고 특별한 것이 없는, 매일 매일의 버티는 일상이었다.


날이 밝아오서야 커튼을 치고 침대에 누운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있는 이유는 뭘까?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야 한다면 나는 무슨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지? 이렇게 약한 정신력을 가지고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사실 세상에서 '나'란 존재는 그저 작은 점에 불과한데 내가 너무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나가는 엑스트라보다 훨씬 못한 존재. 그림자로도 비추지 않는 그런 존재인데 괜한 의미부여를 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굳이- 살아가야할 이유가 있을까.






언제나처럼 시간만 때우던 날, 그 글을 접하게 되었다. 인터넷을 아주 뜨겁게 달구었던, 어느 백수의 글에 달린 답변. 문득 그 글을 정독했다. 본인을 쓸모없게 여기는 백수의 한탄 글에 달린 답변은 단순한 위로도, 충고도 아니었다. 분명 예전에 봤던 글이었지만 지금 나의 상황에선 그때와 매우 다르게 읽혀졌다. 이렇게 예쁘고 고운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래, 그 날이었다.


- 난 너 엄청 좋아했어.

- 나를? 왜?

- 왜긴, 너 예쁘고 착하잖아.

- 내가?

- 너가 착한게 아니면 누가 착한거야?

이 험난한 세상에서, 넌 예쁘고 착한 사람이야.


생각해보면, 내가 모르는 나를 좋아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나를 응원해주고, 지지해줬다. 나의 슬픔까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슬퍼하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왜 그 사람들의 존재를 묻고, 자꾸만 깊숙히 들어가려는 것일까.


알람을 맞추고 아침에 눈을 떴다. 귀찮은 몸을 일으켜 세수를 하고 얼굴을 확인했다. 창밖의 날씨를 확인하고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집을 나섰다. 딱히 갈 곳은 없었지만 오랜만에 아이쇼핑을 했다. 그러다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 커피를 마시며 밖을 바라보았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구경했다. 저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일까, 혼자 생각하다가 다 마신 잔을 반납하고 코인 노래방에 갔다. 혼자 다니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성격이었던 나에게 엄청난 도전이었다. 첫 곡을 시작할 땐 쑥쓰러웠는데 마지막 곡을 부를 땐 후련함이 더 커져있었다. 노래방을 나와 집으로 걷는 길, 날씨는 조금 춥지만 화장했고 떠드는 아이들의 소리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배경음을 이루었다. 집에 막 들어서던 순간, 전화 한 통이 왔다.



"여우씨 맞으신가요? 면접 의사 있으신지 해서 연락드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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