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by 아이언캐슬

불턱 가는 길에 만난 노인

줌이 달린 캐논 카메라를 들고 있다

디지털인지 아날로그인지

카메라엔 필름이 들어있는지

알지 못한다

순간 내게 말을 건다

조천이 고향이라는 노인

전국을 사진을 찍으러 다녔는데

막상 어릴 적 놀던 조천을 찍은 적이 없다 한다


함께 불턱까지 바위길을 걸으며

불턱의 전설과 어릴 적 고향의 기억을 뽑아낸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어릴 적 친구를 만난 듯 입매가 즐거워 보인다

한참 동안 추억을 풀고는

셔터를 누르기 시작한다


등대에 부딪혀 파열하는 파도

날개를 펼칠 필요 없어 보이는 노랑부리백로와 잿빛갈매기

물을 차며 뛰어다니는 바다제비

물새의 눈치를 보며 바다 피부를 뚫고 뛰어오르는 물고기들

물이 빠진 현무암 바위 사이로 지나가는 작은 섬게의 잰걸음

다닥다닥 붙어서 죽은 듯 숨 쉬는 보말과 거북손

등대 그림자에 기대어 햇살을 피하는 낚시꾼

그리고

바다와 구름이 맞닿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찍어낸다


노인은 조천에서 잊고 살아온 어릴 적 추억을 찍고 있다


2023.11.04




조천항을 옆으로 불턱들이 몇 군데 있다. 불턱의 기능은 여러 차례 이야기 들은 바 있어 알고는 있지만, 그 내부 구조가 궁금했다. 물때에 따라 불턱까지 물이 차 있는 경우가 많아 시간대가 맞지 않으면 불턱을 구경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마침 불턱까지 물이 빠져서 궁금증을 해소하기에 아주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조천에 온 이래로 처음으로 현지인(?)이 먼저 내게 말을 붙여 왔다. 간단한 옷차림으로 불턱 가는 바닷길을 듬성듬성 걸어가는 나를 보고 그분도 아마 내가 현지인인지 알았을지도 모른다. 조천이 고향이라는 노인은 한 동안 어릴 적 친구들과 바로 이곳 바다에서 헤엄치고, 자맥질하며 놀던 기억들을 쏟아내었다.


나는 마치 그분의 기억들을 반드시 귀담아 들어줘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보다는 10년이 위인 노인은 아마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태어나서 전란 중에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녹녹지 않은 삶을 일구어온 것처럼 느껴졌다. 나보다 10년 먼저 힘든 전후 상황에서 살아오신 것, 그리고 후생들이 좀 덜 힘들게 살 수 있게 해 준 것에 대한 일종의 감사의 의미일 수도 있었다.


노인은 이야기 중간에 간혹 눈씨울이 붉어지는 것을 감추려 먼바다를 한 번씩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돌아서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 어릴 적 친구들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한참을 조천 이야기를 한 후 불턱을 지나서 밀려나는 물가를 바짝 따라갔다. 그리고 곳곳을 향해 셔트를 누르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까지 찍어내려는 듯 느껴졌다. 그는 지금은 보이지 않는 어릴 적 추억까지 찍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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