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한 스푼, 안쓰럼 한 스푼
모든 워킹맘들의 최대 난제, 방학이 되었다.
작년 겨울, 여름 방학은 회사의 배려로 남편이 재택을 할 수 있어서, 아이를 케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겨울 방학은 오롯이 아이 혼자 보내야 했다.
그래도, 아이의 학교가 봄방학을 다시 갖기로 해, 겨울방학은 4주 정도로 짧아져서 다행이었다.
봄방학 때는 1주일 동안 가족 여행을 가면 1주만 버티면 (?)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 혼자 한달의 방학을 나야 하는 걱정은 남아 있었다.
방학 중에는 절대 돌봄에는 가기 싫다고 완강하게 거부했기 때문에,
아이는 혼자 일어나 밥을 먹고, 씻고, 시간 맞춰 방과 후 수업과 태권도를 가야 했다.
엄마 아빠가 붙어서 보내도 어려운 일을 아이가 혼자 갑자기 해낼 리는 만무한 일이어서
도우미가 필요했다.
마침 한 동네에 사는 대학생 조카가 시간이 되어 알바를 줄 수 있었다.
매일은 조카도 어려워 수업이 있는 주 3일에만 아침에 와서 학원에 보내기까지
아이를 돌봐 주기로 했다.
조카가 미대 전공이기 때문에, 아이가 좋아하는 만들기를 같이 하거나,
매일 한 개씩 해야 하는 온라인 학습이나 작문 같은 과제도 조금씩 봐줄 수 있고,
작지만, 조카의 주머니 경제에 조금 도움이 된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문제는 점심 식사인데, 매일 시켜줄 수도 없고 자기 밥도 못해먹는 조카에게 ^^;;
아이 밥을 차려 주라 그러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도시락"을 싸기로 했다.
언제 써 본지도 모르는 보온 도시락을 먼저 주문했다. 뭐든지 장비 구매가 시작이니까..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 평소에는 나는 간단한 요구르트나 주스를 마시고, 아이는 빵과 과일을 먹었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려면 3~40분은 더 먼저 일어나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이가 편식이 있어 몇 가지의 반찬들을 돌려 가며 할 수 있다는 거? ^^;;
아침잠이 많지만, 굳은 의지를 가지고 첫날 도시락을 준비했다.
"도시락 잘 먹었어?"
처음 도시락을 싸주고 온 날 걱정되고 한편으론 왜인지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근데 지금 여기 난리야~~"
얘기를 들어보니, 밥이랑 짜장소스, 햄과 계란을 반찬으로 넣었는데,
도시락의 밥통이 작고 밥이 좀 눌려있다 보니
짜장소스를 부어서 비비기가 아이에게 엄청난 고난도의 작업이 된 것이다.
그래도 엄마가 싸 준 첫 도시락이라 어떻게든 먹어보려고, 조금씩 소스를 부으면서 비벼봤나 보다.
밥과 소스는 계속 넘쳐서 식탁이 난장판이 되고 자기도 옷을 2벌이나 갈아입었다고... ^^;;;
그래도 아이의 목소리는 신이 났다. 엄마가 준비해 준 도시락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사실, 비비기 힘들 것 같아 도시락통 옆에 대접을 따로 두었는데 아이는 그게 물그릇인 줄 알았다고....
엄마가 너무 힘들까 걱정이에요
도시락을 싸 준 이후로,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계란초밥 배달을 요청하는 횟수도 줄었다.
방학이 끝난 이후에도 아이는 하교 후 저녁 시간까지 먹을 도시락을 준비해 달라고 해서
지금까지도 거의 매일 도시락을 싸고 있다.
정말 허기가 져서기도 하겠지만, 왠지 엄마의 음식이 집에 준비되어 있다는 게
아이한테는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짠하게 시리...)
도시락을 소중히 생각해 주는 마음이 너무 고맙지만,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생각하면 사실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는 오히려 엄마가 걱정인가 보다.
학원 선생님에게, 엄마가 매일 5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만들고 6시에 회사를 출근해서 힘들까 봐
걱정이요, 라며 엄마 걱정을 종종 한다고 한다.
( 정확한 사실은 아니다 ^^;;좀 일찍 가야 돼서 5시에 일어난 적은 있지만 6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싼다.)
어느 육아서에나 "아이의 마음은 부모의 생각보다 크고 깊다"라는 문구들이 있다.
정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