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부가 가장 애가 타고 난감하고 아이에게 미안한 순간은 아이가 아플 때이다.
아침 출근/등교 전쟁으로 마음이 바쁠 때,
아이의 컨디션이 나쁘거나
아픈 증상이 보이면 아이 걱정도 걱정이거니와
솔직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함이 먼저 밀려온다.
육아독립하고 처음 맞은 4학년 1학기는 생각보다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느라 우리 부부와 아이의 시간 모두 빠르게 지나갔다.
그렇게 맞이한 초여름 어느 아침,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이불속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사실, 열이 있거나 하는 큰 증상은 없기에 꾀병인가 싶기도 했지만
밤새 잠을 설쳤는지 퀭한 아이의 얼굴이 정상적으로 수업을 들을
컨디션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갑자기 돌봄을 다니고 혼자 하교를 하고,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그야말로 격변의 시간을 감내했던 아이에게 스트레스가 쌓인 듯했다.
그런데, 하필 그날 남편은 출장 중이었고 나는 외부 컨설팅이 있던 날이었다.
얼마 전 시작한 링크드인을 통해 충청남도 농업 기술원이 의뢰한 일이었는데
농산물 가공 신규 창업 컨설팅, 다시 말해 직접 재배한 농작물을 가공한 상품을 판매하는
생산자분들의 마케팅 고민을 들어주고 상담을 해주는 일이었다.
먼 거리 (예산까지 가야 했다)나 보수와는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분야였기에 흔쾌히 응했던 일이었는데, 하필 이 날이었던 것이다.
정상적인 출근날이었으면 급하게 연차라도 냈을 텐데.. 하필…
그날따라, 언니도 시어머님도 모두 일정이 있어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아이에게 엄마가 최대한 빨리 다녀올 테니 푹 쉬고 있으라며 걸음을 재촉해 나왔지만,
이럴 때면 늘 단골손님처럼 떠오르는 그 문장이 또 머릿속을 맴돌며
눈시울이 계속 뜨거워졌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애를 떼어놓고 일을 해서….”
이제 갓 1년을 넘긴 운전 경력에 초행 지방길이라 마음을 다 잡고 컨설팅 장소에 도착했다.
약 13팀의 마케팅 고민을 들어주고 정해진 시간 (3~40분) 내에 최대한 해 줄 수 있는 조언들을 드렸다.
모두 본인들의 생산품에 대한 자긍심이 강했고, “마케팅”이라는 단어가 너무 크고 어려웠던 분들이었다.
이 짧은 시간을 위해 정성껏 신청서를 내고,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신 분들이었기에
최대한 많은 얘기를 드리고 명함도 드렸다.
그러는 틈틈이 아이에게 전화를 해 컨디션을 챙기고, 먹고 싶은 음식을 시켜줬다.
(아.. 아픈 아이에게 배달 음식을 시킬 때는 또 한참을 멍하니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었다…)
예상 시간보다 40분 정도를 초과해 3시 40분에 컨설팅을 끝내고,
차가 막히기 전에 서둘러 운전대를 잡았다.
내 차는 운전 연습용으로, 출퇴근이나 시내 운전을 위해 산 연식이 오래된 미니 쿠페이다.
장거리 고속 주행은 해 본 적도 없고 남편은 식겁을 하며 말리고 쏘카를 하라고 했다.
그게 싫으면, 2-3차선으로 달리고 100 이상으로는 웬만하면 달리지 말고 천천히 운전하라고 했다.
하지만 아픈 몸으로 하루종일 혼자 집에 있었을 아이를 생각하니
최대한 빨리 집에 가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물론, 과속을 하거나 끼어들기를 할 만큼의 운전 실력은 되지 않는다.)
화장실이 너무 급해 들른 휴게소에서 (휴게소 주차도 이때 처음 해봤다…)
화장실도 정말 100m 달리기를 하듯 서둘러 다녀오고 바로 운전대를 잡았다.
남편 말대로 무섭기도 하고 혹시 차가 퍼질까 110 이상은 달리지도 못했지만
다행히 퇴근 길이 본격적으로 막히기 전에 서울에 도착했고 생각보다는 빠른 시간에 집에 도착했다.
벨소리에 바로 튀어나왔는지 아이는 ”엄마“하며 한 걸음에 뛰쳐나와 안긴다.
땀냄새가 살짝 밴 아이의 머리 냄새와 따뜻한 체온이 전해져 오자 하루 종일의 긴장이 그대로 녹아내렸다.
일하는 엄마는 늘 죄인이라지만, 오늘 만큼은 정말 일하는 엄마가 되어서 미안했다.
“그래도 엄마가 해지기 전에 와서 너무 좋아”라고 말해주는 다정한 아들이 아니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