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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모양을 배우는 중

생채기 안의 사랑 들여다보기

by 디오소리

늘 그랬다.


생채기는 사랑의 모양을 하고 있지 않았다.

붉게 부어오른 피부, 뜨끔거리는 통증, 만질수록 지저분해지는 마음.

아무리 봐도 이건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가장한 습관 같았다.


나는 한동안 착각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말도, 애매한 침묵도, 회피하는 태도도

“그래도 날 생각하니까 저러겠지” 하고 포장해 줬다.

내가 스스로 그 사람의 변명 담당이 돼서

상처를 하나씩 꿀꺽꿀꺽 삼켜버렸다.


하지만 살아 있는 건 결국 감각이다.

좋으면 따뜻해야 하고, 괜찮으면 편안해야 한다.

내 안의 감각들은 오래전부터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고,

이건 너를 깎아내리는 방향이라고,

이렇게까지 아픈데 왜 여기에 머무르냐고.


그래도 나는 더 버텼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하면서.

마치 쓴 귤을 끝까지 다 먹으면

어딘가에서 단 조각이 하나쯤은 나올 거라 믿는 사람처럼.


하지만 귤은 이미 상해 있었고,

그 관계도 이미 상해 있었다.

생채기 안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다.

사과도, 이해도, 책임도,

끝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라는 한마디도.


대신 자라난 건 딱지였다.


말하지 못한 말들, 끝내 묻어둔 눈물들, ..

나조차 반쯤 포기해버린 나 자신...

딱지는 어느새 굳어버린 자존감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딱지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이게 정말 사랑의 흔적인지,

아니면 나를 소모하면서 버티게 만든 버릇의 결과인지.

생채기 안의 마음을 들여다볼수록

그 안에는 애틋함보다, 설명되지 않은 서운함이 더 많이 쌓여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적어본다.

생채기 안의 사랑은 없는 것 같다고.

나를 다치게 하는 자리를 사랑이라 부르지 않겠다고.

언제나 나만 더 이해하고, 더 참아야 하는 자리를

“운명”이나 “인연” 같은 단어로 미화하지 않겠다고.


사랑은 상처가 전혀 없는 상태는 아닐 것이다.

다만, 같이 아파하고 같이 꿰매는 사람과의 일이어야 한다.

한 사람만 피를 흘리는데

다른 한 사람은 계속 손을 씻고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닌 책임 회피다.


생채기 바깥으로 걸어나오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리고, 훨씬 많이 시리다.

그래도 언젠가 이 자리에 남을 건

붉은 상처가 아니라 흐릿한 흉터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흉터를 볼 때마다

이렇게 중얼거릴 수 있으면 좋겠다..


늘 그랬던 예전의 나와 달리,

그때의 나는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이제는

나를 다치게 하지 않는 사랑을 고르기로 했다고..


황소바람처럼 나가보자..



글 · 이미지 dio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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