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나를 원하지 않는 곳이 이렇게 많은지를
지금껏 입사를 하기 전 이곳 저것 지원했던 회사들 중 면접까지 진행하고
마지막까지 내가 끌리거나 원하는 곳에 입사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취직한다는 것에 있어서는 어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게 나는 취업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부터
대기업, 공기업 등에 취업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우연찮게도 20대 초반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하였고
그 당시엔 알고 싶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알게 돼버리는 사회라는 세상에 내던져진 후부터는
나 스스로가 대기업, 공기업 취업과는 다른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환경이 그래서일까 그 당시에 만난 내 사수부터 다른 상사들은 모두
자기 사업들을 꿈꾸고 있었고
그런 무리에서 나 또한 내 사업을 꿈꾸기 시작하였다.
언젠가는 나도 내 회사를 가지고 멋진 인생을 살 거야 하며 다짐하여도
퇴근 후 집에서는 게임이나 하고 있으니
발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조차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중소기업에서 시작한 나의 커리어는
그렇게 중소기업에서 마무리되었다.
이전까지 나의 사회생활에서 회사란
입퇴사를 내가 원하는 시점에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라는 큰 산을 만난 나와 회사는
그 산을 넘지 못해 처음으로
내가 선택한 게 아닌, 내가 원한게 아닌 퇴사를 맞아버렸다.
권. 고. 사. 직
11개월 근무한 나의 회사생활
퇴직금은 해고예고수당으로 대체되었고
내가 계획했던 퇴사일에 맞춘 금전계획표는
실업급여로 대체되었다.
모든 게 꼬여버린 시점에 어떤 것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모르고 방황만 하던 나는
결국 실업급여 마지막달까지 방황해 버렸다.
이제는 시작해야지 하며 매일 침대 위에서만 발악하고
밖으로 나갈 용기조차 내지 못한 내가
이제는 결정해야 될 때가 되었다.
정말 마지막 나의 도시생활
나름대로 돈을 벌어 정년 후에 카페를 차려 운영을 해봐야지 했던 생각을
이참에 카페에서 일하며 열심히 배운 다음 여유가 조금 생기면
곧바로 카페를 차려버리자!
조금 내 계획을 앞당기면 오히려 좋을 수도 있어하며
집 근처 카페부터 지원을 시작하였는데
어느새 반경 10km에서, 왕복 40km 카페까지 지원을 하고 있었다.
그래 인정할게
이쪽 관련해서 아무 경력도 없고 경험도 없는 나를
이력서열람 알림이 떠도 연락이 없다는 건
내가 필요하지가 않다는 말이겠지.
아니야! 이 카페 사장들이 인재를 몰라보는 거야!
다른데도 계속 지원해보면 되지!
이참에 잘됐다! 다른 지역에 가서 취업해서 살아봐야겠어
이제 이곳을 떠날 때가 된 거야!
하며 지원했던 카페가 결국은 30곳이 넘어버렸다.
그런 나의 실업급여 지급달은 마지막달이 왔고
나의 잔고는 모두 시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