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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살고 무엇을 타나

by Renaissance Jul 08. 2023

어렸을 때, 말하자면 20대에 본인이 어떤 집에 살면서 어떤 차를 탈 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마다 그 시기는 다를 수 있지만 나는 대학교에 들어가며 기숙사에 살게 되면서 부모님과 떨어졌고, 진정한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거쳤다. 부모님이 사는 곳이 내가 사는 곳이 아님을 체감하고, 내가 살 집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지금은 비록 기숙사에 살지만 언젠가 나도 내 집을 가져야지. 드림카도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면서 몇십억을 호가하는 슈퍼카가 아닌 단돈 몇억(?)의 현실적인 드림카를 꿈꾸게 된다. 아무리 좋은 대학에 가서 아무리 좋은 직업을 가져도 내가 십억이 넘는 차를 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을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깨닫는다. 기숙사의 불편함으로 혼자 살기 위해 집을 알아보지만 어마무시한 서울의 집값에 놀라게 되고, 집도 현실적인 타협안을 찾게 된다. 포기하자.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지 않나. 내가 서울에 집을 사는 게. 그래서 생각했던 방법이 서울에 살지 않아도 되는 직업을 갖자는 거였고, 생각만 했을 뿐 남들과 똑같이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언젠가'라는 마법의 단어를 외며.


돈만 좇는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IB 쪽이나 컨설팅 쪽으로 가면 초봉으로 억대를 받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억대 연봉을 받는다면 서울에 집을 사는 것은 해볼 만한 일이 된다.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다. 해보려고 했지만, 재미가 없었다. 대학에서 예술 전공을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딱히 가고 싶은 과가 없어 정해주는 곳을 갔다. 그래서 재미도 없는 전공을 바보같이 열심히 공부했다.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전공 따위 어쩌라고 를 시전 하며 학고에 굴하지 않고 멋대로 살다가 성공한 사람이 부지기수다. 내 주변에도 전공 공부를 가장 게을리하고 취업 스펙을 전혀 쌓지 않은 친구가 가장 먼저 취업에 성공했다. 그것도 굴지의 대기업에. 정해진 노선을 쉽사리 이탈하지 못하고 정석의 길을 가던 나는 취업만은 좀 다르게 가고 싶었다. 이 재미없는걸 평생 해야 하다니, 못 하겠다 마음먹고 예술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고, 광고대행사를 알게 되었다. 웃어도 됩니다. 진짜 그런 생각으로 갔으니 마음껏 비웃으십시오. 한 해에 전체 산업에서 100명도 신입을 뽑지 않은 광고대행사에 취업하고 나서 첫 팀장님에게 가장 먼저 들은 말이 광고는 예술이 아니다였다. 그리고 그가 옳았다. 광고는 예술이 아니었다. 나는 취업으로 타협하지 말았어야 했다. 끝끝내 정해진 노선을 이탈하지 못한 내가 내린 잘못된 선택의 결과는 썼다. 결국 서른에 되어서야 진정으로 노선에서 벗어났고, 다시는 그 노선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면 사실 집과 차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된다. 고려 대상 자체가 아니다. 그러니 청약 통장에 돈을 넣지도, 더 이상 신차 소식을 찾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살고 싶은 집과 타고 싶은 차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너무나 현실적이 되어서 안타까울 지경이라는 것이 다를 뿐. 지금 준비하는 영화가 캐스팅이 되어서 제작에 들어간다고 해도 내가 받는 연출비는 제작비의 1%도 되지 않는다. 0.05% 정도 되려나. 상업 영화로 성공한다고 해서 큰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첫 상업영화가 잘 되면 두 번째 상업영화에서 좀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하게 되겠지만, 지금 영화판 돌아가는 거 보면 첫 상업영화가 잘 된다고 두 번째 상업영화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전에 영화계가 망할 수도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미 망한 상태긴 하다. 그러니 내가 어떤 집과 어떤 차를 목표로 하고 있을지 상상해 보시길. 불혹이 되니, 아니 39세가 되니 주변인 중에 꿈에 그리던 집에 살고 드림카를 모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투자를 매우 잘해서, 누군가는 로또급 청약이 되어서, 누군가는 본인의 커리어로 성공해서.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포기한 것들을 누리고 사는 친구들을 보면 양가감정이 든다. 내가 저 삶을 살면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면서도 부러운 마음. 이 설명하기 힘든 감정은 문장으로 쓰니 더 이상하다. 행복하지 않을 건데 부럽다니. 뭐야 그게. 그 사람이 하는 일은 부럽지 않은데 그 사람이 이룬 꿈(집과 차)이 부럽다. 얼마나 뿌듯할까. 질투하는 감정은 그걸 내가 원한다는 뜻이라는데,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포기했다는 건 거짓말인 것 같다. 난 여전히 살고 싶은 집과 타고 싶은 차가 존재한다. 포기하지 않았다.


39세 영화감독은 남의 집에 살면서 08년식 현대차를 탄다. '언젠가'는 단독주택에 살면서 포르쉐 964 타르가를 타고 싶다. 나인원한남 살면서 페라리 타고 싶다는 것이 아니니 비현실적인 거라고 욕하지 마시라. 서울만 벗어나면 충분히 가능한 꿈이다.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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