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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golden age Jun 18. 2023

Rijksmuseum (2)

네덜란드: 37장의 베르메르 카드 모으기

사실 베르메르라는 읽기도 어려운 이름을 가진 작가를 알게 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서서히 알게 된 베르메르. 그도 그럴 것이 이 작가의 작품수는 대단히 적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어서 세계 몇 대 미술관을 섭렵해도 만나 볼 기회가 별로 없다. 또한 작가 일생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의 작품 중에 진품으로 확인된 그림은 30점에서 37점이라고 한다. (연구주체마다 주장하는 작품수가 다르다) 기록된 자료가 전혀 없는 데다가 대부분의 그림에 날짜와 서명을 남기지 않아서 작품을 연대순으로 정리하는 것도 어려웠다고 한다. 이런 불확실성으로 인해 수많은 가설이 나오면서 호기심을 자극하게 된 거 같다. 이 글에서는 베르메르의 작품수를 37점으로 가정하겠다. 어쨌든 베르메르는 네덜란드 미술의 대표작가이고 네덜란드에 작품이 가장 많으니 암스테르담 Rijksmuseum 국립미술관과 헤이그 Mauritshuis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방문하게 되면 꼭 만나보길 바란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여러 번 베르메르 기획전시가 개최되었다. 2007년도에는 베르메르의 <우유 따르는 하녀> 한 점을 포함한 네덜란드 풍속화 전시를 개최해서 50만 관람객을 동원했고, 2008년도에는 베르메르 작품 7점을 가져온 <베르메르전>에 90만 관람객이 다녀갔다. 게다가 반출을 안 한다고 알려진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1984년, 2000년, 2012년에 무려 3회나 일본에서 전시가 되었다. 또한  2018년부터 2019년 초까지 도쿄와 오사카에서 있었던 전시에서는 9점, 6점이 전시되었는데 전 세계 19곳의 미술관에 흩어져 있는 37점 작품 중에서 무려 9점의 작품을 빼온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기획력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역사적으로 일본은 일찍이 네덜란드와 무역을 시작하였고 지금까지도 교류가 많아서 그런 걸까, 아무튼 일본의 베르메르 사랑은 실로 엄청난 거 같다.



올해 2023년도 2월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Rijksmuseum에서 이번 생에 두 번 볼 수 없을 거라는 베르메르 기획전이 진행되었다. 이 전시회에는 그의 작품 28점이 모아졌는데 기획기간이 7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Rijksmuseum 국립미술관에서  소장한 작품이 4점,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와 <델프트 풍경>등 전 세계 미술관에서 보물처럼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을 가져온 것이다. 전시전에 티켓이 10만 장 팔리고 오픈하자마자 45만 장이 팔렸다고 하니 얼마나 관객들을 설레게 하는 전시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큰 마음먹고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을 방문했으나 진주귀걸이를 만나보지 못해 망연자실했을 관람객들… 의 모습도 상상이 간다. 왜 이렇게들 베르메르에 열광을 할까. 사실 요즘 아트페어에서 핫하다는 작품들의 분위기와는 아주 동떨어지고 고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질 수도 있고, 이런 클래식한 그림들은 전 세계 박물관에 아주아주 많이 소장되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베르메르는 유독 BTS 못지않은 인기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인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베일에 가려진 작가의 일생과 작품 설명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신비스러운 작품을 보고 싶다는 미술애호가들의 열망은 기본일 것이고, 그다음은 희소성인 거 같다. 몇 작품을 찾아서 보다 보면은 작품수에도 욕심이 생겨서 37개 정도는 마음먹으면 다 찾아서 볼 수 있을 거 같은 도전심이 생기는 게 사실이다.


베르메르 작품은 유럽에 22점, 미국에 14점, 일본에 1점으로 총 37점이 존재하고 있다.

*독일-Frankfurt Städel (1점), Gemäldegalerie Alte Meister, Dresden (2점), Gemäldegalerie, Berlin (2점), Herzog Anton Ulrich Museum (1점)

*영국-National Gallery , London (2점), Royal Collection, Buckingham Palace (1점) Kenwood House, London (1점)

*오스트리아-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1점)

*프랑스-Louvre (2점)

*National Gallery of Ireland, Dublin (1점)

*National Gallery of Scotland, Edinburgh (1점)

*네덜란드-헤이그 Mauritshuis (3점), 암스테르담 Rijksmuseum (4점)

*미국 -뉴욕 Metropolitan Museum of Art (5점), 뉴욕 Frick Collection (3점), 뉴욕 Leiden Collection (1점), 워싱턴 National Gallery of Art (4점), 보스턴 Isabella Stewart Gardner Museum (1점-도난당함)

*일본 - Tokyo National Museum of Western Art (1점)


미국의 국토는 넓지만 베르메르 작품들은 다행히 동부에 모여 있어서 동선만 잘 짜면 다 보고 올 수도 있을 거 같다-내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의욕이 앞선다. 사실 몇 개를 보고 안 보고가 뭐 그렇게 중요하겠느냐만은 이런 소소한 관심과 작은 목표도 삶에 양념처럼 재미를 주는 게 아닐까. 나도 지난겨울에 런던, 네덜란드에서 만난 베르메르 작품들을 꼽아보았다. 라익스-4점, 마우리츠하위스-3점, (그리고 뉴욕의 프릭스에서 잠시 빌려온 1점) 런던 내셔널 갤러리-2점, 총 10점을 한 시즌에 만나면서 마치 보석을 찾는 느낌으로 다녔었다. 보통 너무 많은 작품들을 접하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기 마련인데, 베르메르의 작품은 웬만큼 다 기억할 수 있어서 성취감도 느낀다. 이 작가의 작품이 전부 다 실려있는 도록은 꼭 소장하기를 추천한다. 작품들의 분위기와 소재가 비슷비슷하기에 다른 점들을 비교 분석하면서 보면 더 매력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베르메르는 사이즈가 큰 그림, 종교화, 신화적인 주제를 담은 그림은 그리지 않았다. 그래서 최소 3점은 베르메르 작품이 아닐 거라는데 이견이 없고, 한 점은 도저히 베르메르 분위기가 아니라서 날짜와 서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아닌 거 같다는 의견이 많다. 모두 연구가들의 주장일 뿐, 진실은 알 수가 없다. 의심은 가지만 베르메르의 작품이 아니라고 결론이 나지 않은 작품조차도 귀한 한 점으로 여겨지며 자랑스럽게 전시되어 있다. 사실 베르메르 작품을 보면서 엥? 이게 베르메르 작품이라고? 내 눈에도 의심스러운 그림들이 있긴 했다. 비전문가인 내가 그림들을 비교하면서 들여다봐도 의문점이 생기는데 학자들은 오죽하랴. 이래서 수많은 가설이 나오는 거 같다.


16세기 이전의 역사적 배경으로는 폴랑드르 지방은 합스부르크의 지배를 받아왔고 가톨릭이었다. 1500년대 중반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개신교가 들어오게 되었고, 1566년에는 개신교 지도자들이 교회가 타락한 배경으로 가톨릭의 전통적인 요소들인 성상과 성화들을 지목하며 그것들을 파괴하며 가톨릭을 배척한다. 1578년에 북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개신교도가 장악하게 되었고, 남부 벨기에는 가톨릭 세력권에 들어간다. 그러다 보니 네덜란드 작가들에게는 교회화, 성화, 조각품, 사제들의 초상화 등의 의뢰가 들어오지 않게 된다. 그래서 네덜란드 황금기에는 종교그림이 없는 거다. 15세기 이전의 네덜란드는 토지를 개간해서 소유해야 하는 척박한 자연환경 때문에 영주가 대대로 지배하는 구조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다른 유럽지역에 비해서 전통적인 귀족의 세력이 절대적으로 약했다. 80년 전쟁 이후 1600년대에 네덜란드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정치 경제가 발전하게 되었고 더불어서 사회적 지위는 주로 소득으로 결정되면서 도시 상인 계급의 지위가 부상하고 이들은 혼인등을 통하여 전통 귀족과 섞이게 된다. 또한 종교에 관대했기 때문에 포르투갈에서 발생한 종교 난민들인 유대인들을 포용함으로써 상인들과 과학 문학자들이 대거 유입되며 경제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이런 정치 경제적인 배경과 맞물리면서 네덜란드의 미술계는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와는 다르게 딱 부러지는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 벨기에에서는 유명한 화가가 배출되지 않았다.


이 당시 네덜란드에서의 미술 작품을 크게 나누면 역사화, 풍속화, 초상화, 정물화, 풍경화로 볼 수 있다. 특히, 중산층과 서민들의 모습을 담은 풍속화가 급속하게 많아진다. 풍속화를 대표하는 작가들 몇 명만 눈여겨봐 둬도 플랑드르 미술을 관람할 때 도움이 많이 된다. (이 작가들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 따로 언급하겠다). 정물화와 풍경화는 기존에도 많았지만 다른 점이라면 이제는 궁전이나 귀족들의 대 저택 공간을 위한 작품이 아니다 보니 그림의 크기가 작아졌고 그림의 내용도 사실여부를 떠나서 보기 좋은 예쁜 그림으로 바뀌었다. 또한 그림을 주문하는 주체가 성당에서 일반인들로 바뀜에 따라 주문제작 요청이 들어오는 초상화를 제외하고는 특정 대상을 위한 그림이 아닌 사고팔기에 좋고 보기에 좋은 풍으로 그려지게 되었다. 또 실력이 받쳐줘야 팔릴 수 있으니 대부분의 작가는 한 가지 화풍만을 꾸준히 그리며 비슷비슷한 느낌의 작품을 다수 남기게 되었다. 당시의 미술가들에게 미술은 성당이나 왕궁에 소속된 안정적인 직업이 아닌 경쟁해서 판매해야 하는 생계였던 것이다. 이 당시에 화가 숫자도 역사상 가장 많았을 거라고 한다.


베르메르에 대한 연구는 근래에 진행되었고, 집요하게 파고든 연구가들에 의해서 베르메르의 아버지, 할아버지, 장인, 장모의 스토리까지 소설처럼 등장했다. 그러나 정작 그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부족하여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1632년의 출생사실은 세례 받은 기록으로 알 수 있었고 출생 이후에 그에 대해서 남겨진 바가 전혀 없다가, 1653년에 결혼을 공증받은 자료가 남아있고, 43세에 생을 마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남긴 그림들 속에 등장하는 세련된 인테리어와 소품들을 통하여 생활이 궁핍하지는 않았을 거고 교양도 갖추고 있었을 거라 상상해 볼 수 있는 정도이다.


View of Delft (Mauritshuis ), The Little Street (Rijksmuseum)


몇 개 안 되는 작품들을 통하여 통일감 있는 화풍과 공통점도 살펴볼 수 있어서 더 흥미롭다. 일단 스튜디오로 사용하고 인테리어 배경으로 채운 아이템들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인위적으로 꾸민 스튜디오는 왼쪽에 창이 있고 빛이 들어오고 있고, 창의 유리에는 색채가 들어가 있기도 하다. 주인공은 왼쪽을 보고 서있거나 앉아있다. 그림에 직접적으로 창문이 그려져 있지 않더라도 왼쪽에서 빛이 들어오고 있어서 창문이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뒷배경에는 큰 지도가 걸려있기도 하고, 일반 그림이 걸려있기도 하다. 모델은 편지를 읽거나 쓰고 있으며, 그 시대의 다양한 악기가 비치되어 있거나 연주하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모델과 작가 모두 의상에 무심했던지 같은 옷을 반복적으로 입고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황금색 드레스와 블루색 드레스는 자주 반복된다. 이러한 소소한 발견이 그림 보는 재미를 더 해준다. 그림마다 다른 스타일의 모자를 쓰고  보석들을 착용하고 있다. 섬세하게 직조된 카펫트나 화려한 문양의 커튼도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그의 아버지가 젊었을 때 전문 원단 직공이었고 그 또한 수습생으로 일했을 수도 있기에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와인병과 와인글라스도  자주 등장하고 그의 고향 델프트 도자기도 소재로 자주 쓰인다. 그리고 바닥은 체크무늬 사선 타일을 종종 사용하며 공간감을 준다. 대부분의 그림에는 인물이 한 명 내지는 몇 명 밖에 등장하지 않고, 실외를 그린 그림도 두 개밖에 되지 않는다. <델프트 풍경>과 Rijksmuseum에 소장되어 있는 <The Little Street>가 실외 풍경이다. 외국의 서점에서 미술책 섹션을 살펴보다 보니 베르메르 작품에 등장하는 지도, 악기, 모자를 따로 연구해 둔 책들을 볼 수 있었다. 한 작가의 그림을 이렇게 까지 연구한다니 무척 흥미롭다.


왼쪽: The Guitar Player (Kenwood House, London) 오른쪽: The Love Letter (Rijksmuseum)

그중에서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출판한 책인데 베르메르 그림에 등장하는 악기와 당시의 음악에 대해서 연구한 책이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의 미술 작품들 중에는 음악을 묘사한 작품이 많다고 한다. 무려 전체 그림의 12퍼센트가 음악을 소재로 담고 있고, 특히 풍속화로 분류된 작품들만 따로 보면 무려 30퍼센트까지 올라간다고 하니 적은 숫자가 아니다. 베르메르의 작품 중에서는 무려 12개의 작품에서 악기가 소재로 사용되었다. 이전에는 음악의 존재 자체가 종교를 위함이었지만, 이 당시에는 음악을 즐기는 모습이나 악기를 들고 있거나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모습 등으로 생활 속의 음악을 엿볼 수 있다.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바뀌면서 종교음악에서는 오르간 이외의 악기는 금지되었고, 복잡한 바로크 음악이나 웅장한 음악의 발달이 더뎌진다. 그러고 보니 문화적으로 풍성해진 황금기에 네덜란드에서 배출한 유명한 음악가는 떠오르지 않는다.


The Music Lesson (Royal Collection, London) The Art of Painting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베르메르가 표현한 채도로는 차분하고 소박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악기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혀 소박하지 않다. 부유한 도시 사람들이 사교모임 등에서 음악을 즐겼을 거고, 악기를 집에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부의 상징이었을 거다. 베르메르 그림에 사용된 악기들을 조금 더 살펴보면 버지널 virginal이라는 건반악기가 여러 번 메인 소재로 등장한다. 소형 하프시코드인 버지널은 건반이 오른쪽에 있기도 하고 왼쪽에 있기도 하는데 베르메르에 등장하는 버지널들은 오른쪽에 건반이 있다. 뚜껑에는 유명 화가에게 의뢰해서 풍경화나 아름다은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아라베스크 패턴이 들어가기도 하고, 라틴어 글씨가 들어가기도 하는데 Music is the sweet solace of labour라고 쓰여있는 것도 있다. 버지널은 Antwerp에서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는 가문이 있었다고 하고, 보통 사람들이 일 년 일하는 임금만큼 고가였다고 한다. 다른 악기들도 대부분 네덜란드에서 만들기도 했지만, 이태리, 독일, 영국, 프랑스, 스페인에서 좀 더 특별한 제품들을 수입하고 그것들을 수집하는 것을 즐겨했다고 한다. 베르메르의 그림에서도 이 건반 악기 앞에는 어김없이 아름다운 여성이 앉아있다. 아마도 이 여성이 음악가임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이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고 세련된 생활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 당시 음악이 전계층으로 스며들었고 일상에서 즐겼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계층에 따라 역할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대체로 음악을 직업으로 하는 남자들은 중산층 아랫사람들이었고, 버지널 그림과 함께 등장하는 남성은 여성의 음악 선생님으로 보인다. 재밌는 것은 엘리트 연주자들은 종종 플루트, 레코더, 백파이프와 같은 관악기들을 품위 없다고 여겼는데, 호흡을 할 때 얼굴이 일그러지기 때문에 기피했다고 한다. 아마도 계층별로 미묘하게 선택적으로 즐겼던 거 같다. 이 시대 다른 작가들의 그림을 보면 선술집에서 흥에 겨운 모습을 담은 작품이 많다. 황금기의 영향으로 소시민들도 굶지 않고 풍족함을 누려서 그런가, 그림에 묘사된 사람들의 모습은 대체적으로 활기차 보이며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선술집과 와인 등을 소재로 한 그림의 비중은 몇 퍼센트나 차지할지도 궁금하다.


A Lady Sitting at the Virginals, A Lady Standing at the Virginals (National Gallery, London)

설레는 마음으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만나러 헤이그를 가는 길에는 비행기에서도 기차에서도 이 그림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면서 상상을 해보았다. 모나리자만큼이나 호기심을 일으키는 이 작품은 실제로 모델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상상으로 그렸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 작품에 대한 연구는 너무 많지만,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아무도 정답을 알 수 없다. 일단 나는 이 진주 귀걸이가 조금 이상하다. 진주 사이즈가 말이 안 된다. 베르메르의 생활 수준을 아무리 높게 봐줘도 중산층 이였을 텐데, 어디서 이렇게 큰 진주를 구해 왔단 말인가. 이 소녀의 목이 짧고 옷깃이 올라와 있기도 하고 머리를 갸우뚱하게 옆으로 돌리고 있다지만 진주가 너무 커서 옷깃에 거의 닿을 지경이다. 이렇게 큰 자연산 진주가 있었을까. 크기도 크기지만 재질도 진주 같아 보이지 않는다. 조개껍질이라면 모를까… 얼굴 사이즈에 비해서 진주가 너무 크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비율이 어색하게 다가온다. 어쨌든 나도 이 그림은 상상해서 그렸다에  한 표 던진다. 그러나 실제로 작품을 직접 대면하게 되었을 때에는 진주 귀걸이 크기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 자그마한 소녀 그림이 주는 신비로움을 표현하기에는 형용사가 부족했다. 미술관 여행을 계획한다면 베르메르를 기억하고 하나씩 하나씩 모아보는 재미를 느껴보기를 권하고 싶다.


Jan Steen, A Young Woman playing a Harpsichord to a Young Man (National Gallery,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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