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미술관
Stedelijk Museum Amsterdam 암스테르담 시립 미술관 (20221219)
암스테르담 Rijksmuseum 국립미술관에서 Van Gogh Museum을 가려면 Museumplein 뮤지엄공원을 지나가게 된다. 이 공원의 초록 잔디 위에는 Amsterdam 알파벳 조각이 놓여있던 적도 있고,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이 생기기도 한다. 이 공원을 중심으로 빙 둘러 Moco Museum Amsterdam과 Stedelijk Museum Amsterdam도 나란히 위치해 있다. 여행에 적합한 동서남북 더듬이가 발달한 나는 지도를 보면서 Rijksmuseum의 반대편에 Stedelijk 시립미술관이 있길래 신나게 직진을 했다. 너무나 멋지고 웅장한 건물 앞에 다다르니 그곳은 미술관이 아닌 그 유명한 유럽의 3대 오케스트라 Concertgebouw (콘체르트헤바우)가 상주하는 음악당이었다. 음악당의 길건너편에는 별로 들어가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이지 않은 외관의 건물이 있으니 그곳이 Stedelijk Museum Amsterdam 시립 미술관이다. 2012년에 현대식 건물로 리모델링이 되었는데 디자인에 있어서 혹평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이곳 또한 내실이 꽉꽉 찬 현대미술의 보물창고였다.
Stedelijk Museum Amsterdam은 1874년에 설립되었고 1895년부터는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았다. 지금의 외관은 1895년에 지어진 역사적인 건물은 그대로 두고 ‘욕조’라고 불리는 캐노피가 있는 건물을 증축하였다. 현대미술품을 10만 점 이상을 보유하고 있고, 현대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연도별로 묶어서 전시가 되어있다. 이 미술관은 유럽의 다른 미술관들과는 다르게 귀족이나 왕족의 유산으로 설립된 곳이 아니고, 민간 시민 그룹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처음 수십 년간은 개인들에게 기증받은 수집품들로 박물관이 채워졌는데 만물상을 방불케 하는 컬렉션으로 운영이 되었다. 가구와 의상부터 동전까지, 심지어는 시민 민병대의 깃발까지 의미를 부여하고 소중하게 간직하며 모아둔 것들을 기증하는 대로 다 인수하였으니 방대한 수집품들이 정리가 되었을까 싶다. 결국 1920년경부터는 현대미술에 초점을 맞추고 컬렉션을 회화, 디자인, 사진, 조각들로 한정하고 엄격하게 선별하여 정리하고 확장해 나갔다.
1936년부터 이 박물관의 큐레이터이자 부관장이었던 Willem Sandberg는 혼란스러운 세계정세 속에서도 생존 예술가들의 전시를 개최하며 예술가들의 저항에 참여하였고, 독일군에게 체포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암스테르담 인근 Santpoort 근처 모래언덕의 벙커로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들을 옮기고 박물관 직원들이 교대로 감시를 하며 지켜냈다고 한다. 1945년 이후 미술관의 관장이 된 Willem Sandberg의 야심 찬 기획과 선견지명으로 컬렉션은 풍부해졌고, Vincent van Gogh 작품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미술관의 규모는 크지만 관람하기 좋게 시대별로 잘 정리가 되어있다.
-UNTIL 1950_Yesterday Today
-1950-1980_Everyday, Someday and Other Stories
-1980-NOW_Tomorrow is a Different Day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예술을 통하여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들을 볼 수 있었다.
1층의 첫 번째 방은 들어서면서 절로 탄성이 나온다. 작품 한 점만 보아도 눈호강이 될 귀한 작품들이 벽마다 한가득씩 걸려있다. 1880년도 즈음에 그려진 걸작들은 한 작품당 벽 한 면을 할애해도 될 만큼 가치 있는 작품들인데, 한꺼번에 걸어두다니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Oskar Kokoschka, Georges Braque, James Ensor, Marc Chacall, Vincent Van Gogh, Jan Toorop, Paul Cézanne 등 이름만 들어도 너무 행복하지 않은가.
<Until 1950년 컬렉션>에서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선구자인 Kazimir Malevich (1879년-1935년)의 그림들을 볼 수 있는데, Stedelijk Museum에는 러시아의 미술관이 소장한 것 보다도 많은 24점을 소장하고 있다. Malevich는 지금의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예프에서 활동하였는데 요즘같이 민감한 국제정세에서는 그를 러시아인이 아닌 우크라이나 출신의 미술가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생소한 장르이다. 이는 1910년대 소련의 탄생 때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소련에서 일어난 여러 예술운동을 말한다. 후기 인상주의, 야수파, 입체주의와 같은 서유럽에서 동시에 들어온 여러 미술의 흐름들과 러시아 고유의 민속예술이 섞여서 그들만의 입체주의 미래주의 절대주의 등이 만들어졌는데, 그 선구자 역할을 한 작가가 Wassily Kandinsky (1866-1944)와 Malevich이다. 1903년 레닌이 이끈 볼셰비키는 추상미술을 지지했지만, 1920년부터 러시아 예술가들의 자유는 점점 위축되었다. 1924년 레닌이 사망하고 그를 이어 소련의 지도자가 된 스탈린은 또 다른 예술 이념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국가정책으로 공식 지정했다. 이러한 정치적 환경에서 Kandinsky는 독일의 바우하우스로 돌아가 버리고 Malevich는 레닌그라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갔으나, 그가 입체파와 미래주의 최고주의에 대하여 연구하며 남긴 글들을 압수당하고 추상화 작품 활동도 금지당하였고 모스크바 미술학교의 교수직도 잃게 된다. 이후에는 직물과 벽지와 같은 실용미술 작업을 하다가 1935년에 5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Malevich는 짧은 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폐쇄적인 러시아에서 작업하고 전시하였는데, 흩어진 그의 작품들은 어떻게 암스테르담에 제일 많이 남아 있는 것일까.
우크라이나의 작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였던 Nikolai Khardzhiev (1903-1996)와 그리스계 러시아인 Georges Costakis (1913-1990)가 수집한 러시아 아방가르드 컬렉션은 그들의 이주와 함께 서유럽으로 반출될 수 있었다. 이들은 당시 소련에서 추상 미술이 금지되었던 시기에 상당한 양의 작품을 수집했다. 1860년경부터 러시아 모스크바의 부유층들은 유럽과 러시아의 인상파와 아르누보 작품들을 수집했다. 이들에게 그림 수집은 오랫동안 중요한 문화의 한 부분이었다. 1920년 이후 소련의 통치하에 있던 작가들은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수집의 문화는 이어져갔다. Malevich가 예술활동을 금지당한 1930년경에 Khardzhiev는 Malevich 작품을 포함한 여러 작가들의 작품과 문서를 수집했다. 추상작품 활동을 금지하는 시기에 정부의 눈을 피해 가며 수집하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거 같다. Khardzhiev는 1992년부터 암스테르담 대학 연구소의 도움으로 재단을 설립하고 자신의 컬렉션을 암스테르담으로 가져와서 재단에 맡겼다. 그가 암스테르담에서 사망한 후인 1997년부터는 Stedelijk Museum에서 그의 컬렉션을 관리하고 있다. Costakis의 경우에는 1977년 소련을 떠나 그리스로 이주하면서 그의 컬렉션의 50퍼센트는 모스크바의 미술관에 남겨 두기로 합의하고, 나머지 작품들은 그리스 국가 차원에서 구입해서 Thessalonica에 있는 MOMus Modern에서 전시하고 있다. 이 수집가들에게 있어서 컬렉션은 국경을 넘어 안전한 곳으로 반출하여 보관해야 하는 자식 같은 대상이었을 거다.
몇 가지 눈에 띄는 작품 중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 Jeff Koons (1955- )의 작품 <USHERING IN BANALITY> 은 무조건 반가웠다. 작품의 제목은 ‘진부함 (따분함)의 도래’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거 같다. Stedelijk Museum이 1989년 Jeff Koons의 초기 작품일 인수했을 때 네덜란드에서는 난리가 났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왜 이 작품을 그렇게 큰돈을 주고 매입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작품이 과연 예술품인지, 아니면 순수하게 키치 (Kitsch, 고급예술과 정통예술의 반대말)로 봐야 할지, 과연 작가를 이 시대의 유명한 예술가로 인정해야 하는지, 또한 그가 100명 이상의 조수를 거느리고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 내듯이 만들어낸 작품을 과연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을지, 30여 년 전의 반응이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 2012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우연히 Jeff Koons의 전시를 본 적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조각뿐만 아니라 사진 수십 점이 전시되었다. 그때 본 충격은 잊을 수가 없다. 전시명은 <Made in Heaven> 1989년에 발표한 시리즈였는데, 알고 보니 그의 주전공은 포르노그래피였다. 일반적인 사진은 아니고 유리나 캔버스등에 인쇄하고 사이즈도 커서 굉장히 멋지긴 했다. 상상을 뛰어넘는 그의 포르노 작품들은 절대로 사진촬영은 금지였고, 인쇄물이나 책으로 나오지 않았다. 작품의 주인공은 Jeff 본인과 그의 부인이었다. 부인인 Cicciolina는 유명한 포르노 배우이자 이탈리아에서 급진당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그는 부인과의 결혼으로 유명해졌고, <Made in Heaven>으로 더 유명해졌을 거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결혼생활을 예술로 표현하던 포르노그래피 작업을 그만두고, 대중들의 사랑을 흠뻑 받을 만큼 사랑스럽고 귀여운 강아지 시리즈를 선보이며 더 인기 있는 작가가 된다. 그의 작품가격은 치솟아 오르고 생존하는 작가 중 가장 비싼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탄생한 포르노 작품이건 동화 속에 나올법한 예쁜 조각이건 내 눈을 호강시켜 주니 나에게는 모두 다 훌륭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이곳에서 Kusama Yayoi (1929-)의 배 한 척을 만나게 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녀의 작품들-물방울무늬, 호박 모티브, 거울로 된 무한대의 방-이전에 탄생한 작품이었다. 그녀의 환각 경험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문란한 생활을 했고 어머니는 딸인 Kusama에게 그들의 밀애를 엿보고 감시하게 했다. 이런 가정환경에서 자라면서 그녀는 마음이 병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예술가로서 더 넓은 곳에서 활동하기 위하여 1957년 28세에 뉴욕으로 이주하고 그곳에서 예술 활동을 폭발적으로 하게 된다. 1962년에는 버려진 소파나 의자 등의 사물을 뭔가로 덮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 뭔가는 자세히 보면 부드러운 천으로 만들어진 남성 성기들이다. 이 작품도 배 한 척이 하얀색의 천 뭉치들로 덮여 있는데 자세히 보면 남근들이었다. 그냥 보면 멋진 배인데, 괜히 자세히 봤다 싶었다. 그녀는 어릴 때 느낀 두려움과 섹스에 대한 혐오감을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서 남근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쿠사마는 같은 건물에 작업실을 쓰며 동료 예술가로 지내던 Donald Judd와 폐차장을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보트로 작업했는데 이는 그녀가 남긴 남근 시리즈 중에서 가장 큰 작품이 되었다. 보트가 놓여 있는 방 전체의 벽면과 바닥과 천장은 보트 포스터 999개로 포장되어 있다. 이때부터도 그녀는 반복되는 작업을 하고 있었던 거다. 이 당시에 그녀는 성차별 및 인종차별을 받았다고 회상한다. 1973년까지 그녀는 언론에 의해 조롱을 당하다가 상처받은 마음의 병은 깊어지고 결국 일본으로 돌아가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2023년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의 전 세계 매장에는 Kusama Yayoi와의 콜라보 제품이 깔리고 매장의 외벽까지 그녀의 물방울과 호박으로 장식이 된 현재로서는 그녀가 차별을 받았던 시기가 있었다니 믿을 수가 없다. 누구나 굴곡은 있고 바닥이 있으면 올라가기도 하고, 올라가면 내려오기도 하는구나… 그녀의 어린 시절의 아픔을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
Henri Matisse의 대형 컷아웃 작품과 그 앞에 딱 어울리는 색감의 조각품 Ellsworth Kelly의 <Blue Red Rocker>이 있다. 비록 Kelly는 자신은 Matisse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직접적으로 부인해 왔지만, 어쨌든 두 작품을 함께 배치하니 잘 어울린다. Kelly 자신에게 조각이란 내가 벽에서 떼어낸 그 자체라고 했는데 그러고 보니 블루레드는 정말 벽에서 떼어낸 듯했다. Matisse의 컷오프 작품은 병석에서 작업하던 그가 ”내가 걸을 수 있는 주변의 작은 정원“을 표현한 것으로 그림 안에서 나뭇잎, 석류, 앵무새(왼쪽), 그리고 인어(오른쪽)를 발견할 수 있다. 미술관은 Marc Chagall (1887-1985)의 작품도 40여 점 소유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눈에 띄는 자화상은 제목처럼 손가락이 7개였다. 재활용 병뚜껑을 활용한 대형 조각품으로 유명한 가나 예술가인 El Anatsui (1944-)의 기념비적인 작품 <In the World But Don’t Know the World> 도 볼 수 있다. El Anatsui는 2001년부터 술병에서 발견한 뚜껑을 이용해서 이와 같은 작품을 제작해 왔다. 조각품은 엄청난 규모로 멀리서 보아도 압도적이고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보석 같은 디테일이 매력적이다. 수천 개의 병뚜껑을 자르고 펴고 비틀고 접으면서 작품으로 만들어내어 인간 공동체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려고 한다. 또한 술병은 아프리카 식민지 역사를 되새겨주고 버려진 병들을 통하여 소비세계의 부정적인 측면과 환경문제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화가인 Karel Appel의 작품들은 민속예술과 어린이 미술등의 스타일로 흥미로웠다. 거의 대부분 처음 보는 현대미술들이었지만 눈이 즐겁고 흥미롭고 작가와 그림들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싶은 의욕이 생기는 미술관이었다.
시립 미술관 바로 옆에 위치한 Moco Museum Amsterdam (Modern Contemporary Museum Amsterdam)은 다양한 현대미술들로 화려한 색상들로 눈이 즐거운 부티크 박물관이다. Banksy, Basquiat, Haring, Hirst, JR, Koons, Kusama, KAWS 등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작품들을 모아뒀다. 공간이 예쁘게 꾸며져 있어서 SNS용 사진 찍기에 좋은듯하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Hermitage Amsterdam는 2009년 개관부터 2022년까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Hermitage 박물관 소속이었다. 암스텔 강 유역에 자리 잡고 있고 좋은 기획전들도 볼 수 있는 곳이었으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관계를 끊었다고 한다. 2023년 9월 1일부터 박물관 명칭이 H'Art Museum으로 변경된다고 하는데 기획방향도 바뀔지 기대된다. 예술이 녹아있는 암스테르담은 사랑스럽고 매력 넘치는 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