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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golden age May 24. 2023

Mauritshuis Royal Gallery

네델란드: 황금방울새

Mauritshuis Royal Picture Gallery (20221228)


헤이그 방문은 처음이다. 목적은 오로지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를 보기 위해서였지만, 헤이그를 떠나면서 내가 얼마나 무지했던가를 느끼며, 이 도시에서의 눈호강을 마음에 담고 앞으로 기회 될 때마다 와보리라 생각하게 된 인상 깊은 도시가 되었다.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지명 <헤이그>는 네덜란드어로 <Den Haag> 덴하흐‘로 표기가 되고, 헤이그의 정확한 영어 명칭도 <The Hague> 임을 알게 되었다. 행정문서나 우편용에 사용되는 또 다른 명칭 <'s-Gravenhage>도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가 헤이그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지도를 보니 헤이그는 북쪽 바다에 인접한 도시였다. 이런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스스로  당황했는데, 1907년에 이준 열사는 어떻게 이곳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를 찾아올 수 있었을까,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을까 생각하니 속상함이 느껴졌다. 참고로 이준열사 기념관도 헤이그 도심에 있으니 들려보면 좋을 거 같다.


네덜란드 공식 수도는 암스테르담이지만, 행정수도는 헤이그로 국왕의 집무실과 총리의 집무실, 대법원등의 정부청사와 외국 대사관들은 이곳에 있다. 또한 국제사법재판소와 국제형사재판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도심의 건물도 13세기에 건축된 성부터 근대적인 건물들, 초현대적인 건물들이 공존하고 있어서 근처의 도시들을 여행하다가 헤이그를 방문한다면 분위기가 많이 다름이 느껴진다. 스펠링도 낯선 도시 헤이그는 미술을 목적으로 여행한다면 꼭 방문하기를 권하고 싶은 도시이다. 17세기의 네덜란드 황금기 시대의 작품뿐만 아니라 현대 미술품까지 기대 이상으로 좋은 작품들을 많이 품고 있다. 여행 중 둘러본 미술관들에서 본 수많은 고전 성화들과 황금기 시대 미술품들에 지칠 즈음에, 색다른 현대 미술로 재충전할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은 현재는 국회의사당, 외무부, 국무총리실등의 행정기관으로 사용되는 비넨호프 옆에 자리 잡고 있다. 비넨호프는 멀리서 보면 동화 속에 나오는 멋진 성 같이 보인다. 헤이그가 도시로 형성되기 시작한 13세기부터 17세기에 형성된 곳으로 원래는 해자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현재는 연못의 기능으로만 남아있다. 비넨호프 주변을 감싸는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연못의 백조들, 그리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나다니는 오래된 트램은 헤이그의 하이라이트이다. 마우리츠하위스는 이 성 입구에 붙어 있는데 절제된 듯 아담하게 예쁜 것이 옛날 순정만화에 나오는 귀족의 저택 같다. 내가 방문한 12월에는 미술관의 작은 정원을 크리스마스트리로 가득 채워 놓아서 더 동화같이 예뻤다.



이 건물 자체는 1633년부터 1644년까지 신성로마제국의 공국중 한 곳의 왕자인 Johan Maurits의 집으로 지어졌다. 이 시기에 그는 네델란드령 브라질 총독으로 파견 나가 있었는데, 설탕과 노예제도를 기반으로 돈을 벌었고 이 돈으로 헤이그에 집을 지었다고 한다. 그가 축적한 부에 비해서 저택의 규모가 절제된 느낌인 것은 브라질에도 동시에 한 채를 짓고 있었기에, 과하게 화려하지 않게 지은게 아닐까 혼자 상상해 본다. 네덜란드 건축양식과는 어딘지 좀 다르게 보이는데 아마도 최초 건축 당시에 16세기 북부 이탈리아의 영감을 받아 디자인을 해서 그런 거 같다. 이후 1704년 화재로 외벽만 남고 전부 불탔으나 철거하지 않기로 하고, 10년 이상 걸려서 복구를 했다. 이후에는 비넨호프의 소속의 정부 건물로 이용되다가, 1820년에 네덜란드 정부가 왕실의 미술품 보관을 위해서 건물을 매입하고, 1822년에는 박물관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마우리츠하위스 컬렉션의 기본은 오라녜 공 빌렘 5세 (William V, Prince of Orange)의 미술품이다. 그는 1774년에 Prince William V Gallery를 만들어서 대중에게 공개를 했고, 이곳은 네덜란드 최초의 미술관이 되었다 (현재의 Prince William V Gallery는 마우리츠하우스 근처에 있다). 그의 뒤를 이어받아 네덜란드를 최초로 통일한 국왕인 그의 아들 빌렘 1세가 (William I of the Netherlands) 마우리츠하위스로 왕실의 컬렉션을 옮겨왔고, 지속적인 그의 관심으로 베르메르의 델프트 풍경등을 경매에서 구매하게 된다. 이후 미술관은 렘브란트의 해부학수업, 황금방울새 등도 경매에서 놓치지 않고 구입하고, Arnoldus des Tombe로부터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포함한 12개의 작품을 기증받으며 컬렉션의 깊이를 더해갔다. 이런 깊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니 이곳이 보물창고가 안될 수가 없다. 또 한 가지 재밌는 점은 반고흐도 헤이그에서 살았었는데 (1869) 그도 마우리츠하위스에 종종 방문했다고 한다. 그에게도 이곳은 보물창고로 느껴졌나 보다.



미술관은 연대별로 구성되어 있으나, 우선 베르메르의 작품부터 보기 위해서 2층의 첫 번째 방으로 직행하였다. 그 방에는 베르메르의 그림이 세 점 걸려있다. 그 유명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베르메르의 작품인지 아닌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신화적인 장면을 담은 그림 < Diana and her Nymphs 다이아나와 님프들>, 그리고 유일한 풍경화인 <델프트의 풍경>이다. 다급하게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작품부터 만나서 눈으로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며 천천히 살펴본다. 아 너였구나… 그 유명하고 유명한 작품. 실제로 보니 작고 소박하니 평범하다. 첫눈에 반했다는 표현을 할 때 그 사람 뒤에서 후광이 비추더라고 하는데, 이 작품이 그런 거 같다. 화려하지 않지만 신비하고 묘한 매력에 빠져들고 그래야만 할 것 같은 힘이 느껴진다. 붓터치가 참 정갈하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Tronie 장르로 구분한다. 낯선 단어인 Tronie 트로니란 초상화는 초상화인데 특정한 실존 인물을 모델로 놓고 그린 것이 아니라, 화가의 상상으로 대상의 특징적인 표정이나 성격 혹은 의상 등을 과장되게 혹은 이국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쉽게 말하자면 풍속화 스타일의 초상화이다. 네덜란드 황금기 회화에서 많이 볼 수 있고 특히 렘브란트 작품에 많이 있다. 그러고 보니 렘브란트의 초상화들도 실존 인물스럽지 않게 과장된 표정들과 해학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인물화들이 많이 있는데 (특히 뺨이나 코, 눈주위의 주름들) 이 장르를 트로니라고 하나보다. 이 소녀의 그림 역시 황금빛 노란색 의상과 푸른색의 터번으로 작가의 상징적인 느낌을 표현했다. <델프트의 풍경>은 좀 평범한 풍경화이고, <다이아나와 님프들>은 다른 신화적인 그림들과 큰 차이점이 없어서 꼭 베르메르의 작품이 아니라고 해도 크게 이의는 없을 듯하다.



네덜란드 황금기의 대표 화가들인 Jan Steen, Frans Hals, Gerri Dou, Gerard ter Borch, Gabriel Metsu 등이  일상생활을 묘사한 풍속화를 통해서 가장 풍요롭고 번영한 시기를 살아가던 그들의 삶 그리고 그 안에서도 애잔함이 느껴지는 평범한 사람들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모습들을 찬찬히 볼 수 있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양옆으로는 Gerard ter Borch의 그림이 있다. 그의 <Woman Writing a Letter>는 베르메르가 즐겨 담는 요소들-혼자 있는 여인, 편지, 양탄자, 귀걸이등-이 등장하여 그런지 베르메르의 그림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그의 그림도 독특한 특성이 있음은 물론이다. 같은 방에 있는 Frans van Mieris I 그림에 등장하는 남녀 커플의 모습은 좀 아슬아슬해 보였는데 그 주인공들은 그 상황을 즐기고 있음을 오이스터를 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성적인 상징물로 여겨지는 오이스터는 음탕한 분위기에 종종 등장하는 요소이다. 그러고 보니 베르메르의 그림은 다른 작가들의 그림에 비해서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 좀 더 귀티가 나는 거 같다. 절제되어서 그런 걸까, 덜 서민적이고 덜 해학적이며 덜 선정적으로 그렸다고나 할까, 등장하는 오브제들과 인물들의 표정등에서 진지함이 느껴지는 거 같았다. 반대로 다른 작가들의 그림에서는 서민들의 고단함과 솔직한 감정이 드러나는 거 같기도 하다.



이 미술관에서 만난 Goldfinch라는 새에 대해 소개하고 싶다. 이름도 예쁘다, 황금방울새. 이 그림은 얼마나 유명한지 2014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소설 Goldfinch의 주제로 등장하고, 2019년에는 이 소설을 각색하여 The Goldfinch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사실 직접 본 그림은 작고 소박했으며, 작가의 시선에 맞춘 듯 높이 걸려있었다. 그 새는 참새보다 조금 큰 사이즈이고, 앵무새처럼 화려하지도 않은 그냥 새이다. 이 작은 그림이 왜 그렇게 유명할까. 자세히 보니 새의 다리에 얇은 쇠사슬 줄이 연결되어 있다. 어머나 불쌍하게… 차라리 새장 속에라도 넣지 않고 왜 붙잡아 뒀을까. 이 새는 최소 2000년 전 고대시대부터 애완용으로 키워진 기록이 있다고 한다. 지능이 높아서 먹이상자를 직접 열거나 아주 작은 골무 크기의 양동이로 물을 떠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훈련이 가능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는 건강과 행운을 가져온다고 여겨져서 유행처럼 키웠다고 한다. 새가 도구를 사용하여 어떻게 물을 떠먹는지는 직접 훈련된 새를 보지 못해서 믿을 수 없지만, 그저 상상을 해본다. 또한 황금방울새는 가시나무의 붉은 열매를 먹고살아서 예수님이 쓰신 가시나무관과 그 가시에 찔려 흘리는 핏방울과 연결이 되면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구원을 상징하는 새가 되었다. 그동안 유심히 본 적이 없어서 몰랐지만, 르네상스 종교 성화에 무려 500번 이상 등장한다고 한다. 너 유명한 새였구나… 주로 성모마리아와 어린 예수님의 그림에 등장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림등에서 볼 수 있다. 라파엘로 산치오의 검은 방울새의 성모 (1505-1506) 그림에서도 아이들의 손안에 새가 들려있다.



그렇게 500번 이상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등장하던 이 새가 이번에는 단독 모델로 발탁되어서 실물 사이즈 정도로 초상화가 그려진 것이다. 붉은기가 도는 얼굴과 노란색으로 터치된 황금색 깃털까지 그림 자체도 완벽하지만 어딘가 쓸쓸한 면이 있다. 하얀 뒷벽의 여백 때문일까, 작가가 사망한 해에 그려진 그림이라서 운명의 느낌일까. Carel Fabritius 카렐 파브리티우스 (세례일 1622년 2월 27일 – 1654년 10월 12일) (생일은 알 수 없으나 세례일은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baptised로 생일을 대신한다) 그의 경력과 작품세계에 대해서도 알려진 게 많지 않다. 10대 후반인 1640년대 초부터 암스테르담에 있는 렘브란트의 스튜디오에서 공부를 했고, 1650년대 초반에는 Delft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1652년부터 화가 길드에 가입한다. 베르메르도 1653년에 같은 길드에 가입했고 평생 Delft에서 살았으니 서로 안면이 있지 않았을까. 파브리티우스는 젊은 나이였던 32세, 1654년 10월에 Delft에서 있었던 화약 폭발사고로 작업실에서 사망했다. 도시의 1/4이 파괴되고 100여 명이 사망한 큰 폭발 사고로 그와 같이 작업하던 학생과 동료도 사망하였고, 그의 그림 대부분도 소실되고 12점 정도만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 한 점이 황금방울새이다.


Carel Fabritius의 작품 중 두 점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볼 수 있고, 두 점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중에서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된 <델프트 풍경> (1652)은 베르메르 작품과 같은 제목의 풍경화로 완성도가 높다. 내 느낌에는 베르메르가 그린 델프트풍경 (오른쪽그림) 보다 더 베르메르의 작품 같다. 붓터치나 차분한 톤, 섬세함, 그리고 등장하는 악기 때문에 베르메르의 느낌이 난다. 그래서 그런 걸까, 그가 베르메르의 스승이지 않았을까 라는 설도 있다. 또한, 렘브란트의 제자들 중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화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렘브란트의 그림은 대체적으로 배경은 어둡고 주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서 환하게 그리는 방식이 많은데, 파브리티우스의 작품은 그렇지 않다. 특히 그가 그린 초상화들을 보면 렘브란트처럼 대비가 크지 않고, 배경과 주제가 훨씬 더 밝고 온화하고 섬세하다. 황금방울새에서도 보듯이 배경도 주제도 환하게 빛을 받고 부드럽게 표현되었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렘브란트 보다는 베르메르 풍으로 변화되고 있어서 그런지 Fabritius를 렘브란트와 베르메르를 연결시켜 주는 작가라고도 평한다.


Carel Fabritius의 델프트풍경 (왼쪽) 베르메르의 델프트풍경 (오른쪽)

둘러보는 내내 방마다 다른 색상의 실크벽지와 커튼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감탄을 했다. 이렇게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진 안목과 감각의 힘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전체적인 규모가 아담해서 그런지 더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늘어진 커튼뒤 창문으로 보이는 연못과 겨울 풍경조차도 작품이었다. 촘촘히 작품을 걸었는데 모두 다 자기 자리를 정확히 찾은 듯 어울린다. 19세기 초에 300점 정도였던 컬렉션이 이후에 850점까지 늘어났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의 거장들의 핵심 작품은 물론 다 갖추고 있고, 덜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도 꾸준히 컬렉션에 추가하고 있는 점이 훌륭하다. 연대별로 장르별로 배치가 잘 되어 있어서 황금기 안에서도 초반과 후반의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건물 전체를 현대화하는 작업을 했다. 원래의 건물은 그대로 보존하면서 길건너편 건물을 지하로 연결시켜서 전시공간을 확장시켰다. 그곳에서 뉴욕의 Frick Collection 초대전이 열리는 덕분에 베르메르 작품을 한 점 더 만나 볼 수 있었다 (Officer and Laughing Girl) 이 그림 안에도 베르메르의 특징들이 다 들어있다. 뒷벽의 지도, 왼쪽의 창, 모자, 노란색과 파란색이 들어간 드레스. 지하공간에 카페와 북스토어도 있다. 공간은 작지만 너무 귀한 작품이 많아서 쉬면서 천천히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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