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를 양육의 문제로 오해했던 시간들에 대하여
"저 아이는 부모가 잘못 키웠을 거야."
누군가가 직접 나에게 그렇게 말한 적은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이미 그 말을 수없이 들은 사람처럼 하루를 살아낸다.
어디를 가든 아이의 사소한 행동 하나까지 스캔하듯 지켜보게 된다. 혹시라도 다른 아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모든 아이의 문제는 부모의 그릇된 육아 방식에서 비롯된 원인일 거라는 오해가 만연하다.
부모가 마치 아이를 왕처럼 떠받들고, 잘못한 것을 따끔하게 알려주지 않아서, 혹은 아이가 부모를 닮아 개념이 없고 고집이 셀 거라는 추측을 하기도 한다.
발작 버튼이 쉽게 눌리는 첫째를 보며, 한때 나도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혹시 나 때문은 아닐까 하는 마음을 오랫동안 버리지 못했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아이의 어려움이 어쩌면 나와 남편에게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은 죄책감처럼 나를 짓누르곤 했다.
세 돌 무렵, 아이의 예민함이 다른 아이들과는 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지난날 아이에게 했던 사소한 실수들을 떠올리며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끝까지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아이의 신생아 시절까지 다다른다.
깨끗한 새 기저귀를 채우고, 배불리 먹이고, 품에 안고 자장가를 불러주면 아이는 곧 잠이 들었다.
하지만 잠든 아이를 침대에 내려놓으면, 마치 등에 센서라도 달린 것처럼 금세 눈을 뜨고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다시 안고, 달래고, 재우고, 내려놓고.
그 반복 속에서 나는 많이 지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울고 있는 아이를 더 이상 달래지 못하고 그대로 내려놓은 적도 있었다. 그 장면은 시간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은 채, 미안함으로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 순간, 나의 행동이 아이에게 어떤 흔적을 남긴 건 아닐까.
마치 나비효과처럼, 그때의 나의 선택이 아이를 이렇게 만든 건 아닐까. 나는 그렇게 땅굴을 파듯 기억의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며, 끝없이 나 자신에게서 이유를 찾고 있었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부모는 습관처럼 묻게 된다.
'혹시 나 때문은 아닐까.'
나도 처음엔 아이의 문제를 과거의 나의 실수에서 찾으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죄책감은 길게 봤을 때 아이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거를 고쳐 잡으면 아이도 괜찮아질까.
내가 더 잘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을까.
병원 문턱을 넘고, 검사를 받고, 진단을 받기까지 그 모든 과정에는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냥 조금 느린 것뿐이야.'
'내가 더 노력하면 괜찮아질 거야.'
'설마 우리 아이가 ADHD일 리가…'
그렇게 믿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외면한다고 해서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아이의 문제는 반복되었고, 나는 알게 되었다.
부정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과잉행동과 전환의 어려움. ADHD 아이들은 보통의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행동 패턴을 보인다.
집중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집중을 조절하지 못하고
참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멈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건 양육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발달 방식의 차이다.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ADHD 아이들은 충동을 억제하고 행동을 조절하는 전두엽, 그리고 보상과 동기를 담당하는 도파민 시스템의 작동 방식이 일반 아이들과 다르게 나타난다.
특히 전두엽의 발달 속도가 또래보다 2~3년 정도 늦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곧, 아이의 행동이 의지나 버릇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 준비되지 않은 뇌로 세상이 요구하는 것을 감당하고 있는 상태라는 뜻이다.
이 차이는 실제 양육의 강도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러 연구에서 ADHD 아동을 양육하는 부모는 일반 아동을 양육하는 부모보다 스트레스 수준과 양육 부담이 더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확인되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아이의 행동을 ‘한 번의 설명’으로 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보통의 아이들이 한 번의 안내로 지나갈 수 있는 상황을, ADHD 아이는 여러 번의 반복과 개입을 통해서야 겨우 넘기는 경우가 많다.
같은 하루를 보내더라도 개입의 횟수, 감정 소모의 빈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을 수습해야 하는 순간의 밀도가 다르다. 이건 더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처음부터 요구되는 양육의 방식과 강도가 다른 문제에 가깝다.
감정 조절 회로의 차이로 인해 다른 아이에게는 지나갈 수 있는 일이, 이 아이에게는 훨씬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평화로운 시간들 속에서도 아이의 감정이 터지는 지점은 늘 비슷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 특성 중 하나는 아이에게 '전환'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점이었다.
놀다가 멈추는 일, 하고 있던 것을 내려놓는 일, 그건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아이에게는 감정을 건드리는 사건에 가까웠다. 그걸 알게 된 후 나는 아이에게 미리 말해주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30분 전,
10분 전,
5분 전.
끝날 시간을 미리 알려주는 것.
그 작은 준비가 아이에게는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하루의 분위기를 조금씩 바꿔놓게 되었다.
여전히 아이의 돌발행동이 반복되어 힘든 날들이 존재한다. 때론 내 컨디션에 따라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일관성이 없을 때도 있다. 매번 반복되는 아이의 행동에 화가 나고 답답한 그 순간에 설명하려 했고, 가르치려 했고, 바로잡으려 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아이의 뇌는 그 어떤 말도 들을 수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감정이 이미 올라온 순간은 가르치는 시간이 아니라, 그저 함께 버텨주는 시간이었다. 한참을 지나
아이의 감정이 조금 가라앉고 나서야 비로소 말이 닿을 수 있었다. 불같이 타오른 아이는 때로는 나를 향해 거칠게 행동하고 말하기도 한다. 그 순간을 지켜보는 일은 여전히 견디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말들이 아이의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버텨내고 기다리면 아이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도 안다.
이 패턴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점점 깨닫게 되었다.
구조적으로 감정조절이 어려운 아이이기에 엄마인 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전에는 "도대체 왜 이걸 못할까"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어떻게 하면 해낼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질문 하나가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태도를 점차 바꾸기 시작했고 아이에 대한 기대를 조금 낮추게 되었다. 환경을 바꾸고, 방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 대신 작은 성공을 쌓아가는 쪽으로 방향을 옮겼다.
ADHD 아이를 키운다는 건 아이를 고치는 일이 아니라, 어쩌면 아이에게 맞는 방식으로 세상을 알아가도록 돕는 일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아이보다 먼저 나의 기준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더 이상 내가 생각했던 기준으로 아이를 판단하지 않기로, 아이가 세상을 잘 살아낼 수 있도록 그저 옆에서 도울 수 있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부모로서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그리고 이건 누가 양육을 잘해서도, 못해서도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원인을 부모의 양육 방식에서 먼저 찾으려 한다. 그게 가장 익숙하고,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는 각기 다른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누군가는 비교적 수월하게 자라기도 하고, 누군가는 같은 상황에서도 훨씬 크게 반응하고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워하기도 한다.
어떤 아이는 한 번 말하면 멈출 수 있지만,
어떤 아이는 여러 번의 반복과 도움 없이는 멈추는 것조차 쉽지 않다.
같은 환경에서도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나는 이유는 아이마다 가지고 태어난 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차이를 보지 않은 채 모든 원인을 양육으로만 설명하려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단순한 해석일지도 모른다.
물론 양육 환경이 아이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ADHD는 양육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미 가지고 태어난 신경 발달의 특성 위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잘못 키운 걸까"라는 질문 대신,
"이 아이에게 어떤 방식이 필요할까"를 묻기로 했다. 그 질문이 나를 죄책감에서 조금씩 꺼내주었다.
지금도 세상은 이런 설명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이의 행동은 여전히 부모의 양육 태도의 문제로 해석되곤 한다.
"저 아이는 왜 저렇지?"
"엄마가 제대로 안 잡아서 그래."
누군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그 말들은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조용히 주변을 맴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공기를 들이마시듯, 나는 또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고 때론 상처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생각 앞에서 잠시 멈추려고 한다.
정말 내가 아이를 이렇게 만든 걸까. 아니면, 나는 그저 이 아이를 이해하려고 누구보다 오래 애써온 사람일까.
아이를 지켜낸다는 것은 때로는 세상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나 자신을 지켜내는 일이기도 했다.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고, 쉽게 무너지는 기준을 다시 세우고, 감당하기 버거운 시선들 속에서도 아이의 편에 서 있는 일. 아이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진심으로 이해를 구하는 일, 그건 생각보다 더 많은 힘이 드는 일이었다.
혹시 나처럼 과거의 장면을 끝없이 되짚으며
스스로를 탓하고 있는 엄마가 있다면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당신은 아이를 망친 엄마가 아니라고,
그저, 조금 더 이해가 필요한 아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데리고 온 사람일 뿐이라고,
그리고 애썼던 그 시간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눈에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도, 안개 낀 거리처럼 앞이 흐려 잘 보이지 않더라도 조금씩, 분명히 아이의 안에서 겹겹이 쌓이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오늘 하루만큼은 조금 덜 미안해하기를,
조금 덜 스스로를 의심하기를,
완벽히 해내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애쓰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