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미러 속 아이

— ADHD 진단을 들은 날

by 썸썸


2년 전, 그날에


전에 진행했던 아이의 종합심리검사(Full Battery Assessments) 결과가 나왔다. 예전부터 아이의 행동을 보며 어딘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나는 진단 결과를 들으면서 생각보다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침착하게 설명을 듣고 있는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게 정말 내 반응이 맞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 달 전, 남편과 나도 MMPI와 SCT, KPRC 검사를 함께 진행했었다. 우리 둘 다 양육 태도는 나쁜 편이 아니지만, 그동안 아이 양육과 기관의 피드백으로 많이 지쳐 있고 에너지가 부족한 상태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애써 괜찮다고 넘겼던 지난날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기관에서 예상하지 못한 피드백이 오는 날에는 사실 모든 게 괜찮지 않았다. 그런 날에는 회사 일도 집안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과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는 게 맞는 걸까. 아이에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중요한 시기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일과 육아로 정신없이 흘러가던 하루의 끝에도 외면하고 싶었던 질문들이 떠올랐었다.


아이에게 있었던 일들과 기관에서 피드백을 받았던 일들을 남편에게 이야기하면 그 순간에는 주의 깊게 들어주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면 결국 깊은 고민은 다시 나 혼자만의 것이 되는 것 같아 외로웠다.


먼저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이 가장 컸기에, 크고 작은 이벤트가 생길 때마다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며, 치부하며 지냈다. 사실, 별거 아닌 날들이 참 많았었는데 말이다. 어디에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육아의 고민들, 그로 인해 정신적, 체력적으로 모두 지쳤던 게 그대로 검사 결과지로 드러난 것 같아서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난 다시 침착해지려 애쓰며 선생님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아이의 상태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편이었다. 주의력이 매우 약하고 작은 자극에도 쉽게 산만해져 집중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했다. 이대로 두면 학습 부진이나 심하게는 또래 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내가 가장 걱정하던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다. 집에서야 가족이니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들이 아이가 다닐 학교에서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결코 쉽게 여길 문제가 아니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아이는 괜찮을까.

혹여나 아이를 부담스러워하고 멀리하진 않을까.

그 경험들이 쌓여 아이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게 되면 어떡할까. 나의 모든 걱정은 아이가 상처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 가능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것만은 가장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최악의 순간이기에, 결국 난 병원문을 두드리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그래, 아직 초등학교 입학 전이다.

지금이라도 무엇이든 해볼 수 있다.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돌이켜 보면 아주 어릴 때부터 작은 신호들은 있었다. 아이는 2~4살 때 밤마다 갑자기 잠에서 깨어 울곤 했다. 아무리 달래도 울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고

온갖 짜증을 내며 한참을 울다가 지쳐 잠이 들곤 했다. 처음엔 나도 까닭을 몰라 답답하기만 했다. 우는 아이를 30분이고, 1시간이고 어르고 달래도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시간이 좀 흐르고서야 그것이 야경증이라는 걸 알았다. 깨어 있을 때 자극을 많이 받은 날에는 야경증이 나타날 확률이 높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전엔 정말 최선을 다해 놀아줘서 아이의 에너지를 다 소진시킨 날엔 아침까지 꿀잠 잘일 만 남았다고 뿌듯했었다면, 알고 나서는 잠든 아이가 갑자기 다시 깨진 않을지 긴장하게 되었다. 유아기 아이들 중에서 그런 증상의 경우가 종종 있고 아이가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진다고 했다.


아이가 깨어 울던 날이면 나도 밤새 잠을 설쳐 피곤하고 괴로웠다. 하지만 예전엔 초보 엄마라 이유를 몰라 답답하기만 했다면 원인을 알고 나서는 모든 게 어느 정도 해소가 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었다.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조금씩 다른 이야기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차례를 기다리는 것을 어려워하고, 하고 싶은 것이 눈에 들어오면 조절을 못한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그 이후로 정말 위험한 순간들도 있었다. 집 앞 놀이터에 나간 어느 날, 아이가 갑자기 무언가에 이끌려 빠르게 놀이터 밖으로 달려 나갔다. 곧바로 이름을 부르며 쫒았지만 둘째를 임신한 만삭의 몸이라 달리는 게 쉽지 않았다. 힘겹게 배를 붙잡고 쫓아가는데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이윽고 아이가 찻길 앞까지 거의 다다른 걸 보고 놀란 나는 비명 섞인 목소리로 멈추라고 울부짖었다. 그 소리에 놀란 아이의 발걸음이 찻길을 바로 앞에 두고 겨우 멈춰 섰다.


조금만 늦었다면 끔찍한 사고를 당할 수도 있었다. 나에겐 아직도 공포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친구들과 함께 뛰놀던 공원 놀이터에서도 나는 분명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는데도 시야에서 갑자기 사라져 정신 나간 사람처럼 찾으러 다녔던 적도 있다. 그 후 아이와 함께 외출할 때면 난 늘 안절부절 아이의 뒤를 쫓아다니느라 바빴다.


그때 즈음부터였다.

육아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 것이. 그 무렵부터 수많은 전문가들의 영상을 찾아보며 양육 태도를 점검했고, 내 선에서 아이를 조금이라도 변화시켜 보려고 많은 노력들을 했었다.



7살 여름, 아이는 ADHD 진단을 받았다.


아이의 문제점과 검사 결과를 보고 선생님은 바로 약물 치료를 권유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수도 있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진단과 함께 바로 이름도 생소한 약까지 처방을 받으니, 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약의 가장 흔한 부작용은 불면이나 식욕 저하일 수 있다고 했다. 약은 오전에 복용해야 하고, 미리 타 두지 말고 바로 먹여야 한다고 했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약국에서 약을 받았다.

아이는 왜 병원에 온 건지, 엄마가 약국에서 무슨 약을 받은 건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순수하게 내 손을 잡고 병원과 약국을 뒤따를 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백미러로 뒷좌석을 확인했다. 아이는 금세 잠이 들어 있었다.

지루한 병원 진료에 지친 모양이었다.

차 안은 이상하리 만큼 조용했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집에 도착해 아이들과 함께 보낸 저녁은 평소와 다름이 없이 비슷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그날 밤, 아이들이 모두 잠든 뒤, 진단서와 심리검사 결과지를 다시 꺼내어 자세히 살펴보았다. 분명 괜찮다고 믿었는데 긴장이 풀리면서 갑자기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오늘 있었던 일들과 여러 생각들이 뒤엉켜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렇게나 고요한 밤인데도 내 머릿속은 마치 전쟁통 같았다. 검색창을 켜서 처방받은 약의 부작용에 대해 알아보니, 심각한 사례도 있어 다음날부터 먹이기 시작할 약에 대한 아이의 반응이 벌써부터 염려가 되어 눈물이 났다.


아이 문제를 내가 잘 감당할 수 있을까.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정말 시작인데, 두려움이 밀려왔다.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생긴 것 같아 현실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으로 이어졌다. 엄마로서 너무 늦지 않게 아이의 문제에 대해 알아차리게 되어 참 다행이란 것, 설마? 아닐 거야, 고개를 저으며 애써 부정하고 싶었던 순간의 조각들이 이제야 비로소 퍼즐로 맞춰진 것 같았다.



이제라도 정확한 원인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아이의 삶을 위해 지금부터 무엇이든 노력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고 작은 위안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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