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독서 불변의 법칙
만약 신이 있어서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면’ 당신은 어떤 소원을 말하고 싶은가? 난 ‘책을 빨리 읽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싶다. 즉 속독이다. 세상에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은데 독서 속도가 느리고 읽어도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읽어야 하는 책이 더 많아진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책을 많이·빨리·잘 읽고 싶어서 필자가 시도한 또는 노력 중인 다양한 경험을 소개한다.
① 책은 사서 읽고 모아둔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책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다. 내 책, 내 책상, 내 서재 이런 단어가 심장을 뜨겁게 하여 책을 가까이하게 만든다. 두 번째, 책을 사서 읽는 이유는 책에 대한 값어치를 지불하고자 함이다. 가성비를 따질 때 책만큼 싼 재화가 어디 있는가. 책을 쓰고 책을 만든 이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 서재의 모든 책은 값을 지불하였다.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 1만 권이 될 때까지는 책을 사 모을 계획이다.
② 주거공간을 책 중심으로 만들었다.
거실에 책상과 책장을 들였고, 안방에 침대 대신 가로 1.6m 세로 0.8m의 큰 책상을 놓고 컴퓨터와 듀얼 모니터를 올렸다. 한 집에서도 거실 책상은 아침부터 오전에 책 읽는 공간으로, 안방 책상은 오후부터 밤시간에 글 쓰고 문서 작업하는 공간으로 분리한 것이다. 스탠드 불빛도 거실 책상엔 백색, 안방 책상엔 따뜻한 주광색으로 변화를 주워 그때 기분에 따라 자리를 옮겨가며 책을 읽기 편하게 만들었다.
③ 독서에 도움 되는 다양한 문구류를 장만한다.
독서는 환경에도 많이 좌우된다. 특히나 좋아하는 문구류를 사면 그냥 읽고, 뭐든 쓰고 싶은 충동이 든다. 특히 자기만의 필기구와 노트를 만나는 것은 즐거운 독서를 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현재 가장 즐겨 쓰고 애장하는 필기구는 ‘블랙 윙-7’ 연필과 ‘몽블랑 145’ FE 촉 만년필이다. 공책으로는 ‘라인 8밀리 A5 스프링 노트’와 ‘로이텀 1917 A5 노트’를 독서 노트 겸 일기장으로 쓰고 있다. 나와 잘 맞는 문구류를 만나는 것은, 독서의 즐거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즐거우면 오래 할 수 있다.
독서와 문구를 사랑하는 김규림 작가는 《아무튼, 문구》에서 가장 완벽한 하루는 “아침에 커피 한잔에 책을 읽고, 점심 무렵에는 서점과 문구점을 어슬렁거리며, 잠들기 전 차분히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펴고 필기구를 꺼내 드는 것”이라고 했다. 읽고 쓰는 사람은 비슷한 것 같다.
④ 서재로 둘러싸인 북스테이를 경험하다.
평일 연차를 내고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책을 보다가 지루할 때쯤 읽던 책을 들고 옆에 있는 북카페로 이동하여 달달 한 커피 한잔을 마신다. 그러다가 어두워지면 내 방으로 올라가 밤새워 책을 읽는다. 도서관+북카페+북스테이를 한 건물에 도입한 공간이 파주 출판단지에 있다. 2015년 한참 책 읽기가 좋아질 무렵 ‘지지향’을 방문했다. 그리고 2023년 연말에 서촌 ‘호모북커스’에서의 2박 3일은 새로운 목표를 갖게 해 주었다. 앞으로의 삶은 책과 연관된 일을 하자. 내 책을 내고, 출판사를 운영하며, 책을 주제로 한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앞으로 50년은 더 살 수 있을 테니 꿈은 이뤄질 것이다. 외롭고 지쳐 혼자 있고 싶을 때, TV도 없고 인터넷도 안 되는 북스테이를 경험해 보라. 책만 존재하는 책장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하룻밤 있어 보는 경험은 이상야릇 삼삼하다.
⑤ 출근길 독서다.
지하철로 출퇴근할 때면 항상 책을 읽는다. 복잡한 지하철에서는 책 읽기가 어렵기 때문에 출근 시간이 빨라졌다. 덤으로 일찍 일어나는 습관도 만들었다. 출근길 독서는 잠을 깨운다. 그리고 출근하여 아침 독서와 글쓰기로 이어진다. 일기도 이때 쓴다. 아침 일기는 저녁에 쓰는 일기보다 장점이 많다. 반성보다는 계획 위주로 쓰는 아침 일기는 생산성을 높여 준다. 아침에 가장 일찍 출근해 책 읽는 사람으로 나의 포지션이 만들어지면서 직원들과의 소통이 많아졌다.
⑥ 직원들에게 책을 선물했다.
특히 내가 면접 보고 뽑은 직원들한테는 자주 책을 선물했다. 그리고 신입직원들한테는 재테크 관련된 책을 추천했다. 가능하면 빠른 시일 내에 본인 집을 장만하라고 방법을 알려줬다. 귀담아듣고 적극적으로 물어보는 직원에게는 더 자주 책을 선물했다. 책으로 소통하고자 함이다. 아마도 40대 후반이 넘은 직장인이라면 경력 10년 차 이하 직원들과 소통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나도 그랬다. 나이 들수록 말은 적게 하고 지갑은 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책 선물의 장점은 공감대 형성이다. 그들은 직장이 바뀌고도 나를 기억해 줬다.
⑦ 카페에서 책 읽기.
집 근처 카페 2곳에 내 자리를 만들었다. 물론 먼저 앉는 사람이 임자다. 커피값에는 자릿값이 포함된 것이다. 우리는 돈을 내고 두세 시간 나만의 공간을 빌린다. 카페는 내 서재가 된다. 개방된 공간에 익숙해지는 방법은 자주 들러서 공간, 사람, 사물과 익숙해지는 것이다. 나도 작가가 되면 ‘어느 카페 어떤 자리에서 습작연습을 했어요.’란 말을 하게 될 것이다.
⑧ 독서 휴가.
직장인이라면 휴가를 어떻게 사용할까. 여러 생각을 한다. 나에게 가장 유익한 휴가는 독서 휴가다. 휴가 기간 또는 휴가지에서 책을 읽는 수준이 아니라, 독서를 위해서 연차를 내는 것이다. 징검다리 휴일에 앞뒤로 연차를 써서 종종 독서 휴가를 떠났다. 책 읽기에 좋은 또는 책으로 꾸며진 숙소를 찾아 그곳으로 여행지를 정하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책방이나 북카페를 찾아가 책을 보기도 한다.
⑨ 주말 밤 심야 독서.
마포구 경인숲길에 위치한 북티크란 책방에서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밤 심야 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밤 9시부터 다음날 5시까지 혼자서 책을 읽는다. 그리고 새벽 2시 졸음이 올만 할 때쯤 책방지기와 함께 북토크를 한다. 북티크 심야 독서의 경험을 살려 내 서재에서 주말 밤 심야 독서를 즐긴다. 가끔은 술도 함께.
⑩ 출장 독서.
업무차 지방 출장이 많았다. 직장이 서울역 근처라서 출장에 기차를 많이 탔다. KTX는 좌석 선반이 있어 책 읽고 글쓰기에 편리하다. 서울역을 출발하여 동대구역과 부산역까지 2시간에서 2시간 50분, 동해 묵호역까지 2시간 20분을 오갈 때면 회사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출장 전 회사에 출근 도장을 찍고 서울역에서 기차에 올라타 내 좌석에 앉아서 책을 펼칠 때의 기분을 종종 상상한다. 서울부터 제주도까지 많이도 돌아다녔다. 1박 이상 출장 시 항상 챙기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읽을 책, 독서 노트, 운동복인데 책 읽고 글 쓰고, 뛰기 위함이다. 업무 출장이지만 ‘일-독서-여행-재테크’를 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했다. 그래서 출장이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성과를 냈다. 하지만 그 회사는 오너 리스크 등으로 법정관리 중이란다. 빨리 하차하길 잘했다.
⑪ 책 읽고 장소 경험하기.
‘책을 주제로 한 공간’에 관한 책들을 종종 읽는다. 그리고 그 장소를 찾아가 경험한다. 전국의 북카페, 책방, 북스테이를 일부러 찾아가는 여행을 하거나, 여행지에서 또는 출장지에서 우연히 이러한 공간을 방문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내가 해보고 싶은 일에 ‘책방’과 ‘북스테이’ 운영이 있기 때문이다. 독서를 핑계로 책도 보고 나의 사업계획에 필요한 시장조사도 하는 것이다. 장소성, 공간 계획, 운영 프로그램 등을 살피고 주인장과 대화를 하며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기도 한다. 속초 영랑호에 접한 게스트하우스와 북카페가 기억에 남는다. 주인장 부부는 2012년에 분당 아파트를 팔고 그 돈으로 이곳에 땅을 사서 건물 두 동을 지었다고 한다. 행복은 행동하는 사람 차지인 것 같다.
⑫ 작가와의 북토크·강연 참여.
사실 책만 읽었지 작가와의 만남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작년 초여름 독서모임 차 종종 들르는 동네 책방에서 강원국 작가의 북토크를 처음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두 시간 반 정도 책, 독서, 글쓰기에 관한 대화가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송희구 작가, 《독서의 기록》 안예진 작가, 《책들의 부엌》 김지혜 작가, 《비가 오면 열리는 상점》 유영광 작가 등 10여 명의 저자 북토크와 강연에 참여하게 되었다. 책만 읽을 때와는 다르게 그 작가를 함께 만나면 독서의 깊이와 흥미는 배가 된다. 북 토크는 독서의 또 다른 방법인 것 같다.
⑬ 도서관 독서 프로그램에 참여.
동네 도서관뿐만 아니라, 지방 출장지에서도 도서관을 종종 이용한다. 평택 배다리 도서관과 세종시 세종도서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평택 배다리 저수지에 철새가 날아오르는 풍경을 도서관 서가에서 볼 때면 신기했다. 도심 속 저수지와 철새 그 중심에 도서관 그리고 책 읽는 나. 전국의 도서관마다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저자와의 만남, 독서 및 글쓰기 프로그램이 열리면 자주 참석한다. 공짜라서 더 좋다. 나도 빨리 책을 쓰고 작가가 되어 저 무대에 서야지 하는 희망을 품는 것도 큰 소득이다.
⑭ 독서 여행.
여행은 가방을 쌀 때부터 시작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 면에서 독서 여행은 여행지에서 읽을 책을 고르면서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책을 주제로 여행지를 고르고 책을 중심에 놓고 여행 일정을 소화한다. 독서 여행은 장소가 중요하다. 그다음 중요한 것이 숙소다. 책상과 의자 스탠드 조명이 준비된 숙소를 고른다. 2021년 가을 제주도 월정리 바다가 보이는 펜션 2층 방에서 9일간 책 보고 해안도로를 달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⑮ 독서모임 활동.
2년째 4~5개의 독서모임에 꾸준히 참가해 왔다. 현재는 매주 1회 독서모임에 나가고 필자가 운영하는 북클럽 ‘독서와 재테크’에서 독서토론, 재테크 공부, 도시 답사까지 하고 있다. 독서모임의 가장 큰 장점은 독서 편식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는 것이다. 평소 관심 없거나 잘 읽지 않는 분야의 책을 독서모임에서 읽게 되고 토론하다 보면 독서의 세계가 넓어지고 깊어진다. 특히 나에겐 소설을 읽게 된 것이 큰 소득이다.
⑯ 출판사 서포터즈 체험이다.
난생처음 출판사 서포터즈로 활동하는 영광을 얻었다. 출판사마다 출간 책들의 홍보가 중요한데, 서포터즈는 출간을 앞둔 책을 미리 읽고 서평 또는 도서 리뷰를 작성하여 개인 블로그나 인터넷 서점 서평란에 올리는 것이 주요 활동이다. 그 대가로 출판사는 공짜로 책을 지원한다. 도서출판 푸른향기와 퍼블리온 출판사 두 곳에서 6개월씩 활동한 경험이 있다. 올 6월엔 출간 전 가제본의 책 《오래된 책들의 메아리》를 미리 받아 읽으며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책을 내가 먼저 손에 쥐어 보고, 책 디자인과 내용을 편집자와 공유할 수 있는 것 말이다. 이런 경험들은 앞으로 내 출판사 운영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⑰ 독서의 기록이다.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고 메모하며 도서리뷰를 작성하고 있다. 그리고 공유한다. 네이버 블로그에 ‘부마연의 독서와 재테크’란 제목으로 도서 블로그를 운영 중이고, 10년째 독서 노트를 쓰고 있다. 가끔씩 독서일지를 다시 보면서 책 내용을 떠올리다 보면 흐뭇한 감정이 든다. 책을 읽으며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는 독서의 기록을 남긴 것이다. 이와 관련 책으로 안예진 저자의 《독서의 기록》을 추천한다.
⑱ 독서지도사 자격증 취득.
이왕이면 독서모임을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격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 자격증이 독서모임 운영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있으면 남들 보기에 좀 더 전문가로 보이지 않을까. 그래서 공부했다. 독서는 소통이라 생각한다. 저자와의 소통이며 함께 읽는 사람들과의 소통이다. 독서 경영의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⑲ 독서법 글쓰기 수강.
빨리 잘 읽고 싶어 돈을 많이 썼다. 세상에 읽을 책은 너무 많은데 읽기 속도가 느려서 속상하다. 앞서 말했듯 신이 소원 하나만 들어줄 테니 말해보라 하면 난 ‘책 빨리 잘 읽는 기술’을 달라고 하고 싶다. 독서법 등 읽기, 쓰기 수강료와 독서모임 참가비로 많은 지출이 있었다. 모든 수고로운 일에는 대가가 들어간다. 또 대가를 지급해야 열심히 하게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⑳ 책에 배경이 된 장소 방문.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읽던 중 지리산을 종주하였으며, 벌교 읍내와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을 방문했다. 1층에 태백산맥 전 10권의 육필 원고 1만 6,500장을 마주했을 때 난 얼어붙어 뭐라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를 읽고는 이순신 장군이 근무했던 남해안 임진왜란 전적지를 돌아다녔다. 내가 자장 존경하는 작가는 조정래 선생님이고,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김훈 선생님이다. 두 분의 글쓰기를 접할 때면 소설가의 숭고함이 느껴진다.
㉑ 서재를 만들었다.
《지식인의 서재》를 보면서 많이 부러워했다. 나도 서재만 있으면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2년 전 전원주택을 짓고 2층에 내 서재를 들였다. 마음에 쏙 드는 월넛 원목 책상과 책장으로 서가를 꾸몄다. 책이 점점 많아져서 실용서를 제외한 문학 관련 책들을 서재로 옮겼다. 주말 밤 서재에서 책 읽고 잡생각을 끄적이며 술 한잔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목수이자 작가인 김윤관의 《아무튼, 서재》를 보면 서재가 왜 필요하며 어떤 공간인지 알 수 있다. 나한테 서재는 일터이자 쉼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