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크는 과정에서 남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그들의 그림이다. 아이들이 낙서처럼 시작한 첫 작품부터, 학교에서 숙제로 만든 미술 작품까지, 아이들의 그림은 성장을 담은 소중한 기록이다. 그러나 부모로서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간직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자칭 ‘정리 덕후’로 정리를 중요시하는 나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정리하고 분류하는 것을 좋아했다. 책장은 주제별로, 옷장은 계절과 색깔 별로, 심지어 주방도 크기와 사용 빈도에 따라 정돈했다. 그런 내가 아이들을 낳고 나니, 아이들의 끊임없는 그림이 새로운 정리 대상이 된 셈이다. 처음에는 하나하나 소중히 간직하려 했지만, 곧 그 수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실용적이면서도 아이들의 추억을 보존할 수 있는 정리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다.
그림의 가치 찾기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림을 분류하는 기준을 만드는 거였다. 모든 그림을 다 보관할 수는 없으니, 어떤 기준을 세워 선별해야 할지 고민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의 ‘감정’과 ‘노력’이 담긴 그림을 먼저 보관하는 것! 아이가 특별히 자랑스러워한 그림이나, 오랜 시간을 들여 정성껏 완성한 작품은 따로 모아두었다. 반면, 낙서처럼 그린 그림이나 여러 장 반복된 비슷한 그림은 디지털화한 후 실제 종이는 버리는 선택을 했다. 이 기준을 세운 후,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고르며 추억을 되짚을 수 있었다. 아이들 스스로도 어떤 그림이 중요한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니, 정리 과정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림 대부분은 디지털화
정리의 핵심은 ‘공간 절약’!! 하지만 그 과정에서 추억이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기에 그래서 택한 방법이 ‘디지털화’였다. 그림을 고화질로 스캔하거나 사진을 찍어 저장했고 이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사진만 찍는 것이 아니라, 그림마다 아이의 설명과 이야기를 덧붙여 기록하는 거였다. 훗날, 이 기록을 꺼내볼 때 그 순간의 감정과 이야기를 함께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디지털로 정리하면 종이 자체는 보관하지 않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기록과 기억이기에 순간의 감정을 기억할 수 있는 디지털 파일이 훨씬 더 유용한 것 같다.
실물 보관 때는 선택과 집중
모든 그림을 디지털화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은 아닐 터. 몇몇 특별한 그림들은 아이들이 실물로 간직하길 원했다. 학교 행사에서 만든 작품들은 잘 보이도록 집안 벽면에 걸어두어 시각적으로 즐기게 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특별한 날마다 테마를 바꿔서 몇 개의 작품만 전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실물 보관의 또 다른 방법으로는 ‘도록(책) 만들기’였다. 중요한 작품들을 골라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거다. 포토북을 제작하는 것처럼, 아이들의 그림을 각각 한 권의 앨범으로 만들어 두니, 그림이 훨씬 깔끔하고 보관도 용이했다.
주기적인 정리
아이들의 그림은 오늘 정리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고, 정말 끝없이 쌓이고 쌓인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필요한데, 한 달에 한 번, 혹은 학기마다 아이들의 작품을 한꺼번에 정리한다. 이때는 앞서 세운 기준을 다시 적용해 디지털화할 그림과 실물로 남길 그림을 선별한다. 또한, 아이와 함께 어떤 그림이 의미가 있는지, 어떤 그림은 정리해도 괜찮은지 이야기를 나누며 정리 과정을 함께한다.
정리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를 찾고 소중한 것에 집중할 수 있는 과정이다. 아이들의 그림을 정리하는 일도 마찬가지. 많은 양의 작품을 한꺼번에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진짜 중요한 것들을 찾아내고, 그 순간을 다시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거다. ‘정리 덕후’로서 아이들의 그림을 정리하며 느끼는 것은, ‘정리’라는 행위 자체가 추억을 간직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는 점이다. 정리를 통해 아이들의 소중한 순간들이 오랫동안 기억되고 간직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