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꽃 Aug 19. 2024

저자와의 만남, ‘필사’


6월부터 진행 중인 독서모임 벗들에게 여러 차례 ‘필사’를 추천했었다. 베껴 써보니 손목이 아파서 이어가지 못했다 했고, 핸드폰 카메라로 찍으면 편하니까라고도 했다. 사실 문장을 노트에 직접 옮겨 적는다는 것 자체가 쉽고 편한 일은 아니다. 짧은 시간 안에 책의 내용을 태블릿이나 워드파일로 옮겨 적는 게 편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굳이, 왜?? 귀찮거나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기 십상이다.


나의 두 번째 덕질은 비록 짧은 경력이지만 “필사”다. 두 애들이 어릴 때는 꿈도 못 꿨다. 한 달에 만화책 한 권 읽기도 쉽지 않았기에 필사는 너무 먼 미래의 일이라 여겼고, 마음으로만 품고 있던 희망사항 같은 거였다. 그러다 두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시작하면서 ‘내 시간’이 주어졌고, ‘그래, 이제 해보자!’했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 시간을 누려본 경험이 부족해서 그랬을까. 시작하는 데도 한참 걸렸다. 책상 머리맡에 앉아 있기를 10분, 물도 마셔야지, 핸드폰 알람도 한 번씩 봐야지, 화장실도 가야지, 이토록 엉덩이가 가벼울 줄이야― 앉는 것부터가 해결돼야만 했다. 마음잡고 하루 이틀을 시도했던가, 3일을 넘기기 어려웠다. 또 결정적으로 아이들로부터 벗어났다는 해방감에 대한 보상 심리 때문이었을까. 그동안 가보지 못한 카페 투어도 생각했고, 남편과 둘만의 데이트를 꿈꿨고, 쇼핑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들이 자리에만 앉으면 떠올랐다. 그래서 몇 번은 해봤는데 다녀오고 나면 급격히 체력이 떨어져 그다음을 이어갈 수 없었고,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엄마로 돌변하기도 해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매일 하나의 콘텐츠를 24시간 안에 안 읽으면 사라지는 ‘롱블랙’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제공받는 콘텐츠가 길지 않으니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됐고, 또 주제가 매일 다르니 읽는 재미가 생겨, 낱말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면서부터 필사를 더해갔다. 그렇게 30일이 지나고는 책 한쪽, 그것도 읽고 싶은 아무 페이지를 골라 읽었고 그러다 만난 문장과 낱말이 있으면 딱 그것만 적는 것으로 확장했다. 무엇보다 의자에 앉기 전에는 꼭, 화장실 가고 물 마시기 등 미리 끝내야 할 일과 또 중간에 일어서게 하는― 가장 크게는 핸드폰 알람 소리를 무음으로 바꾸거나 비행기모드로 변경했다. 비행기모드란 게 기분이 묘한 것이, 책을 읽고 필사하는 동안만큼은 잠시 여행 간다는 마음을 들게 하니,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매일을 30분씩 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를 돌아보며 ‘나 오늘 뭐 했지? 빈둥빈둥 논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어도 단 한 가지를 해냈다는 것 때문에 스스로를 칭찬했고, 자신감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그러면서 지금은 책을 읽으며 필사를 시작하면 한 시간을 훌쩍 넘긴다.


책은 물론이고, 노랫말과 드라마 대사도 필사


일단 필사를 하면 여유가 생긴다. 집중력을 높여주기에 기억이 연장된다. 복잡했던 일이 심플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누구와 경쟁할 것도 없고 내 만족이 가장 크다. 또한 읽기만 할 때보다 쓰기까지 동반되면, 보다 책을 더 사랑하게 되고 문장과 단락에 대한 이해와 깊이가 달라짐을 느낀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어느 날 글을 쓰다 보면 필사했던 문장이 나의 경험과 만나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 낸다는 거다. 마치 책의 저자로부터 일대일 과외를 받은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책을 읽고 쓰는’ 사람이라고 엄마를 그렇게 기억해 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