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마주한 무례함
매년 봄 일본 도쿄에서 트라이볼로지 학회가 열린다. 우리 연구실에서는 일본어로 봄을 뜻하는 '春 하루'와 트라이볼로지를 합쳐서 '하루토라'라고 부른다. 트라이볼로지를 테마로 하는 학회는 많지 않으며 하루토라는 많은 기업과 대학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학회이다. 학회에서 탄탄한 입지를 갖고 있는 우리 교수님은 매년 하루토라에서 발표를 하시고 조교를 포함한 대학원생들 또한 발표에 참가하게 된다. 그리고 연구실 소속 학생 전원이 진행 스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그리하여 나 또한 올해 처음으로 학회에 스텝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일본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한국 회사에서 번역일을 한 게 전부이고 이 또한 한국인들과 일을 했기에 일본인들과 일을 해야 된다는 것이 살짝 걱정이 되었다. 두 달 정도 연구실 생활을 하면서 일본어 실력이 한 단계 늘었지만 막상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큰 행사에 투입된다고 생각하니 부담이 들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번 기회에 두려움을 깨고 일본에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것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일본에서는 거의 모든 행사에서 직원과 스텝이 정장을 입는다. 이번 하루토라 학회 또한 모든 스텝이 정장을 입어야 했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입학식 때를 마지막으로 4년 동안 묵혀놓은 정장을 꺼냈다. 대학 면접을 보기 위해 부모님에게 어렵게 부탁해서 산 정장이었다. 대학 면접에서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 일본 문화를 부모님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3 때 찐 살이 덜 빠졌을 무렵에 산 정장이라 다시 입어보니 품이 영 맞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정장을 갖춰 입어보니 이제는 꽤 사회인의 모습을 한 내가 거울 속에 보였다. 그저 이틀간의 아르바이트일 뿐인데 직장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도 그럴 것이 나와 동기들에게도 명함이 주어졌다. 내 이름과 연락처 연구실 학교등이 일본어와 영어로 각각 한 면씩 쓰여있는 명함이다. 명함은 기분 좋은 소속감과 어른의 세계에 진출한 듯한 기분을 주는데 충분했다. 명함도 챙기고 정장도 다려놓고 구두도 준비해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생의 첫 출근을 앞둔 사람처럼 설레었다.
학회 회장은 기숙사에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했다. 다행히 갈아타지 않고 한 번에 갈 수 있는 위치였다. 아침 8시에 집합이기에 7시에는 집에서 나가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5시 반에는 일어나서 준비해야 했다. 아침잠을 이겨내고 헤어와 메이크업과 의상을 풀 세팅하고 회장으로 향했다. 내가 담당하게 된 회장은 이번 학회에서 가장 큰 A회장이었다. 제법 규모가 있는 회장에 배정되어 긴장이 됐지만 석사2학년 선배와 파트너가 되어서 안심이 됐다. 본부에서 간단한 조회를 마치고 A회장이라고 쓰여있는 상자와 팻말을 챙겨 선배와 함께 A회장으로 향했다. 스텝의 업무는 매뉴얼에 적힌 대로 회장을 세팅하고 발표와 질의응답 시간 때 적절한 진행과 대처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발표자 바로 옆 부스에서 발표자의 컴퓨터를 빔프로젝터에 연결하고 음향과 조명 조절의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방송부였던 터라 이러한 업무는 어느 정도 익숙했다. 나와 파트너가 된 선배는 질의응답 때 질문자에게 마이크를 건네주는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고 질의응답 시간 내내 바쁘게 뛰어다녀야 했다.
학회가 시작되고 발표자가 노트북을 가지고 부스로 다가왔다. 나는 노트북을 살피며 무슨 케이블을 연결해야 될지 파악하고 HDMI 케이블을 꽂아 스크린에 제대로 연결된 것을 확인한 후 내 자리에 앉았다. 발표자분은 젊은 남자분에 핏이 좋은 회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특별 강연 순서라 저명하신 분일 텐데 젊은 나이인 게 신기했다. 좌장이 발표자를 간단하게 소개하였고 나는 발표 시작에 맞춰 스크린 쪽 조명을 껐다. 내용을 들으러 왔다는 생각은 안 하고 있던 터라 내 할 일은 끝냈다는 안도감에 부스 뒤에 숨어 의자를 약간 뒤로 젖히고 편안한 자세로 발표를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스크린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내가 처음 읽었던 논문 저자의 이름이었다. 풀 네임을 정확히 알고 있지는 않아서 긴가민가 하던 찰나 연구 내용을 보니 역시 내가 아는 그 저자임이 확실했다. 저자가 일본인인 것은 알았지만 영국 대학 발 논문이라 이번 학회에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마치 연예인을 마주친 느낌이었다. 그것도 바로 옆에서! 안경을 챙겨 오지 않아 스크린 속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집중해서 발표를 들었고 요즘 공부하고 있던 내용에 참고가 되는 연구라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1부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그분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는 마지막 섹션을 남겨놓은 때, 학회 분위기에 대한 여유도 생기고 학계에 입문한 듯한 기분에 심취해 있었다. 나도 열심히 해서 좋은 연구성과를 내서 내년 이곳에서 발표를 하고 싶다는 열의가 활활 타올랐다. 쉬는 시간이 끝나갈 때쯤 다음 발표자분의 노트북을 연결하면서 화면을 보니 익숙한 기업 이름이 쓰여있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대기업 중 하나였다. 반가운 나머지 발표자에게 아는 척을 했고 그분은 이 기업을 아냐며 신기해했다. 한국인이라 이 회사를 안다고 말하고 학교를 언급했더니 명함을 교환하자 하셨다. 기쁜 마음으로 명함을 교환했고 학회가 끝난 후 같이 온 한국인 직원을 소개해주겠다 하셨다. 사회에서 인맥이 생긴 것 같은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학생에서 한 단계 벗어나 사회인이자 연구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둥둥 떠올랐다.
모든 순서가 끝이 나자 참석자들은 서로서로 인사하기에 바빴다. 같은 업계 기업인들끼리 각자의 명함을 교환하면서 인맥을 만드는 모습인듯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나와 스텝들은 분주하게 마무리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아까 명함을 교환한 한국 기업 발표자분이 한 남성분과 함께 나에게 다가왔다. 같이 온 분은 아까 말씀하셨던 한국인 직원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얼마 많지 않아 보였다. 많아봐야 30대 초반정도? 한국말로 인사하셨고 이 분과도 명함을 교환하였다. 발표도 하지 않은 첫 학회 때 명함을 두 개나 받은 것이 신이 났고 한국 대기업과 한국인을 만났다는 게 기뻤다. 그리고 그때 한국인 직원이 나에게 말했다.
"어디 살아요? 자취해요? 회사 신주쿠에 있으니 놀러 와요"
두 귀를 의심했다. 초면인 여학생에게 어디 사는지 자취하는지는 왜 묻느냔 말인가. 여기가 술자리도 아니고 카페도 아니고 미팅을 온 게 아닌데 말이다. 회사 이름을 달고 일을 하러 온 자리에서 이런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의 무례함은 들떠 있던 기분에 찬물을 끼얹었다. 과연 이분이 일본어로 얘기했어도 같은 말을 했을까라. 한국말로 얘기하니까 주위에서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들으니 말을 가볍게 던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나라 사람이라 더 가깝게 느끼는 건 알겠다만 예의를 지켜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 자리에서는 그 말이 나에게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내가 여학생이라는 이유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일 수 있다. 하지만 교수님의 '여유' 발언에 날이 서 있던 나는 자꾸만 그쪽으로 생각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 한국인 직원은 엔지니어도 아닌 그저 일반 사원일 뿐이었지만 이것이 사회에서 나에 대한 보통의 태도와 반응일 것 같았다. 이런 일이 가끔 있다. 이 분야는 확실한 남초 사회이다. 어쩔 수 없는 불가향력의 일이다. 그리고 나 스스로 이 길에 들어섰다. 내가 선택한 이 길에서 현명하고 강하게 살아남고자 한다. 여러모로 많은 것을 느끼게 된 나의 첫 학회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