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없는 말
교수님의 '포스터' 발언은 나의 의지를 꽤나 꺾어놓았다. 그야 열심히 한 것에 대한 보상이 없었으니까. 회의가 끝났고 모두들 종강 맞이 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연구실과 회의실을 오갔다. 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회의실을 나갔다. 그때 R군이 다가와서 말을 걸어주었다. R군은 본인도 교수님이 구두 발표로 하라고 한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며 교수님의 바뀐 태도에 대한 당혹스러움을 전해주었다. R군이 내 편을 들어주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어찌 됐든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니 말이다. 연구실로 들어가자 교수님은 또 한 번 나를 붙잡고 걱정을 늘어놓으셨다. 이번 미국 학회의 E-mobility 분야는 전기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커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고. 꽤 공격적인 질문이 올지도 모르는데 영어실력이 괜찮냐는 등 교수님이 넣으라 하셔 놓고 이제 와서 이러시니 나로선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영어나 일본어나 나에게는 둘 다 외국어라 긴장도가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고 애써 웃으며 말씀드렸다. 교수님은 끝까지 고개를 갸우뚱하시며 교수실로 들어갔다.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동기 한 명은 나에게 학회 합불 발표가 긴장되겠다며 히죽거렸다. 이미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태연한 척 딱히 걱정되지 않는다고 받아쳤다. 내 남은 자존심이었다.
동기의 비아냥에도 나는 연구실 사람들에게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았다.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번에 학회 지원을 넣을 때 선배 2명과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하며 마지막 제출 버튼을 누르는 그 순간까지 모든 과정을 확인받았다. 내 억울함을 떠벌리고 다니면서 도와준 선배들까지 곤란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여기서 내가 펄쩍 뛰면 포스터로 지원한 다른 선배들이 언짢을 것 같았다. 미치도록 억울하지만 정말 오늘 하루 나 혼자 창피하고 말자는 생각으로 입을 닫았다. 나 혼자 예민할 뿐이지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관심이 없으니 말이다.
종강을 하고 나는 잠시 한국으로 들어왔다. 모든 걸 던져버리고 싶은 찰나 좋은 타이밍이었다. 원래는 학회 합불 발표가 한국을 들어가기 전에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예정일이 2주나 지나고도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이미 자신감은 다 없어졌고 그저 불합격 결과를 빨리 보고 맘 편히 방학을 즐기다가 일본으로 돌아가서 원래 하던 연구를 마무리하고 그걸로 학부 졸업논문을 쓰며 여유롭게 졸업할 생각을 했다. 이런 상상에 마음이 편해지자 한편으론 오히려 떨어지길 바랐다. 미국 그까지 것 여행으로 가면 그만이다.
일본으로 돌아가기 이틀 전, 아침에 눈을 뜨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영어로 된 메일이 와있었다. 반사적으로 들어가서 빠르게 읽어 내렸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학회 측에서 내 구두 발표를 승인하였고 내 발표를 배정해 주었다. 정말... 됐다... 내가 해냈다. 이게 되네... 아무런 해프닝이 없었다면 뛸 듯이 기쁘고 돌아가서 연구를 더 보강할 생각에 신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딱 반만 기뻤다. 체면은 차렸다는 안도감과 이루었다는 성취감에 기뻤지만 전만큼 하고 싶은 의지가 샘솟지 않았다. 연구실에 결과 보고를 좀 더 미루고 싶었지만 결과가 나오는 즉시 보고하라는 K상의 지시가 있었기에 하루정도 고민하다가 합격했다고 보고했다. 조금 찝찝한 마음이 들었지만 6개월을 고생해서 얻은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 수는 없었다.
연구실에 보고하고 나서 나의 사정을 알고 있는 친한 한국인 동생에게 학회에 붙었다고 말했다. 같이 기뻐해줄 동생이었다. 그러나 동생이 전해준 말은 정말이지 뜻밖이었다. 나와 학부 동기였던 19학번을 중심으로 연구동에 소문이 퍼지고 있단다. 내가 실수로 포스터가 아닌 구두로 넣었다고 말이다. 한국인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내 얘기가 나왔고 한 명이 내 학회얘기를 꺼내자 모두가 그 일을 알고 있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해명하지 않았다고 해명하지 않은 말 그대로 소문이 퍼진 것이다. 대체 누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연구실 사람에게 이 일을 말했을까. 애초에 이 일이 이렇게까지 소문이 퍼질 일인가? 그들은 무슨 뉘앙스로 말을 한 것일까. 내가 떨어지길 바랄까 붙길 바랄까. 갑자기 몰린 시선에 매우 부담스러워졌다.
전쟁터에 끌려가는 심정으로 일본으로 돌아왔다. 수없이 왔다 갔다 했지만 이번만큼 오기 싫었던 적은 없었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모르겠는 상태로 연구실에 출근을 했다. 긴장할 틈도 없이 출근하자마자 동기가 내 학회에 대해 물었다.
"事故(*사고)로 넣은 그 학회는 결국 나가는 거야?"
'사고'란다. 같은 연구실 동기라는 사람이 '사고'라고 했다. 이 동기는 나와 같은 19학번으로 아마 다른 연구실 사람들이 확인차 이 동기에게 물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 동기의 입에서 '사고'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내 소문의 종착지가 결국 교수님 허가도 안 받고 마음대로 넣어버린 '사고'가 된 모양이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해명해야 했다. 나는 동기에게 사실 교수님이 분명 구두발표로 넣으라고 말씀하셨고 나를 선발한 메일도 남아있다고 말이다. 열심히 해서 얻어낸 건데 '사고'라고 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이다. 그러나 동기의 반응은 딱딱했다. 나의 말 하나하나에 반박을 했고 동의해 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이 통하지 않았다. 소문을 퍼뜨린 게 이 친구인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이 친구가, 사람들이, 일본인들이 무슨 뉘앙스로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악의가 있는지 없는지 나를 싫어해서 그러는 건지 아닌지 읽어지지 않았다. 사방이 깜깜해졌다. 나는 무서웠다.
다음 날, 전체 회의를 마치고 팀장 선배와 청소를 하게 되었다. 평소 의지하던 선배이고 내가 학회 합격 사실을 제일 먼저 전한 사람이다. 선배가 나에게 교수님에게 합격 사실을 보고했냐고 물었다. 나는 보고했다고 대답했다. 선배는 뭐라 뭐라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괜찮았냐고 물었다. 나는 영어 실력 걱정 외에는 별말씀 없으셨고 괜찮았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선배는 괜찮았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며 대충 얼버무리고 자리를 떠났다. 또 같은 상황이다. 나는 이들의 의도를 읽지 못하겠다. 연구동의 분위기를 읽지 못하겠다. 응원해주고 있다고 믿던 선배마저 이런 태도를 보이자 무너져 내렸다.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석사들의 입장에서 학부생이 국제 학회에 나간다는 사실이 좋게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거기에 유학생이라는 사실이 더더욱 그들의 심기를 자극한 듯했다. 억울했다. 교수님은 처음부터 미국 학회에 학부생을 데려갈 예정이셨다. 그래서 내가 아닌 다른 동기 두 명을 적극 지원하셨다.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내가 선발되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까지 욕을 한다고? 왜? 내가 유학생이라서?
다른 두 동기들이 적극 지원을 받고 미국 학회에 나가는 것이 당연시될 때 아무 소리 안 하던 연구실 사람들이 원망스러워졌다. 그땐 아무 말 안 하다가 내가 되니 뒷말을 하고 다른 연구실 사람들에게 까지 말을 전했으니 말이다. 모두들 나에게 친절했다. 그 친절 속에 내가 모르는 이면이 있다는 걸 알아버렸다. 더 이상 그들이 예전처럼 보이지 않는다. 일본 생활에 익숙해져서 착각을 하고 말았다.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다. 나는 저들에게 섞일 수 없다.
이곳이 치열하게 싸워서 살아남아야 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묵직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내 실력으로 증명할 것이다. 보란 듯이 해낼 것이다. 새로운 각오로 새 학기를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