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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현 Jul 19. 2023

우리가 싸우지 못하는 이유

경청

내 생일을 앞두고 8살 딸 이레에게 고민이 생겼나 보다. 식사 중에 이레가 물었다.

“엄마는 뭐를 좋아해요?” 

엄만 아빠 좋아하고, 너희들 좋아한다는 상투적인 이야기들만 성의 없게 늘어놓자 답답해하며 또 묻는다.

“아니, 그런 거 말고요. 옷, 스티커, 액세서리 이런 거 중에요! 아니면 뭐 사고 싶은 거 있어요?”

“그래, 옷 좋아.”

“어떤 옷? 드레스? 티셔츠?”

“요즘 입을 티셔츠 있으면 좋겠다.”

“그럼 엄마는 어떤 회사 티셔츠가 좋아요?”(자기 옷에 수 놓인 마크들을 궁금해해서 옷 만든 회사 표시라는 걸 알려준 적이 있다.)

“음,,,”


고민하는 중에 말없이 밥 먹고 있던 남편이 무심하게 말한다.

“비. 오. 에스. 이”

“BOSE? 보스?”(스피커 회산데,,?)

남편이 반찬 하나 더 집으며 말한다.

“보”

“세”

이레는 무슨 말인지 몰라 답답해하고, 나는 어이없다가도 왠지 기분도 나쁜데, 웃겨서 배가 아팠다. 본인은 안 웃고 매번 짓궂게 저런 말만 한다.


남편은 나의 웃음버튼이다. 낯가리는 사람이라 나가서는 안 웃긴다. 그래서 더 웃기다. 주변의 언니들은 나보고 웃음 효율이 좋다고 하는데, 남편이 웃긴 게 아니라 내가 쉬운 여자일 수도 있다. 맨날 웃다가 광대에 경련이 난다. 애들은 나한테 혼날 때마다 내 얼굴을 살핀다. 엄마가 웃기를 기다리는 거다. 매번 터져버리는 웃음 사이로 애들은 쏙쏙 잘도 도망간다. 입술 꽉 물고 웃음을 참지 않으면 훈육이고 일관성이고 뭐고 다 날아간다. 나는 좀 예민하긴 하지만 맨날 웃기고, 자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성격 덕에 그나마 속앓이 덜하며 산다.




아내는 잘 웃고, 남편은 웃기니 죽이 잘 맞긴 하지만, 부부 사이의 만족만 있는 건 아니다. 내가 남편에게 원하고 바라는 점은 맨날 그대로라 눈물이 날 때도 있다. 그런 이야기가 시작되면 남편은 경청한다. 너무 잘 듣는다. 내 말이 다 맞다며 맞장구쳐준다. 내 머리카락 정리는 왜 자꾸 해주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곤 해명과 변명 사이를 오가는 남편에 또 웃음이 터진다. 심각하게 시작해도 웃음이 나온다. 아 정말 나한테 짜증 나는 순간이다.


그래서 얼마 안 가 나의 이런 말들로 상황이 끝난다. “나 지금 기분 좋아서 웃는 거 아니다. 나 진짜 진지해. 웃었다고 마음 풀린 거 아니야.”  그리고 왠지 모르게 또 졌다는 아주 찝찝한 기분으로 마무리가 된다.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 그래서 우린 못 싸운다.


답답하면서도 속 시원하게 소리 지르면서 싸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건, 그게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다행이고 좋았다.




요즘 종종 보이는 단어가 있다. ‘감정 쓰레기통’. ‘내가 감정 쓰레기통도 아닌데 왜 맨날 나만 잡고 하소연이야.’ 이런 식으로 쓰이는 단어다. 매일 일방적으로 자신의 어려움만 토해내는 누군가에게 지친 이들이 만든 말일 거다. 어떤 상황에선 정말 이해가 된다. 끝도 없는 불평, 불만에 부정적인 것들만 한데 모아 쓰레기 버리듯 하는 짜증엔 누구라도 그렇게 느낄 거다. 그럼에도 난 ‘감정 쓰레기통’이란 말 자체가 불편하다. 정도를 벗어난 배설 같은 감정 부림이 아닌 이상, 신뢰 아래 꺼낸 화자의 이야기는 쓰레기가 되고, 듣고 있는 청자는 쓰레기통이 되니  말이다.


내 남편은 듣는 사람이고, 말하는 사람이다. 직업이 주는 역할 중 하나다.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단어가 돌아다니는 세상에서, 남편은 다른 사람들의 근심을 덜어내 받아오는 일을 한다. 같이 힘들지 말자고 나에게 이야기하는 건 열 개 중 하나 두 개도 안 된다. 그런데도 어떤 때는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어 둘이 앉아 울기도 하고, 방 안이 한숨으로 뿌예지기도 한다. 기도가 절로 나오는 일들이 참 많다. 그래서 남편이 하루 종일 듣고 말하다 집에 들어온 날은 보통 입을 다문 채 저녁을 보낸다.


그래도 남편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엄마를 대신해 하루 동안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 애들 때문에 속 끓었던 이야기,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하루는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다른 사람들 이야기 들어주는 것처럼 나한테도 해줘 봐” 남편은 오늘도 몇 시간을 내리 듣다 왔다고 하면서도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는 요즘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어떤 걱정이 제일 큰 문제인지를 이야기했다. 가만 듣고는 상투적이긴 하지만 내 말들을 탁탁 정리해서 1번, 2번, 3번으로 묶어 준다.(역시 멋없는 사람) 그리고 또 나한테만 먹히는 웃긴 말 한마디 정도 날린다.(역시 재미있는 사람) 그렇게 말하고, 듣고, 웃으며 여기까지 왔다.




그냥 우리




힘들고 아픈 일들을 들어주고 말하다 보면 상황은 똑같을지라도 그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다. 오히려 그런 이야기 없는 관계는 축하할 일만 가득인 SNS 세상 속 친구 같다. 서로에게 의지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들, 어쩔 땐 너무 힘들어서 와다다다 쏟아진 한탄들을 서로서로 잘 추슬러주자. 허리 기울여 주워주자. 감정은 쓰레기가 아니니 조금 담아둬도, 정리해 줘도 괜찮다.


내가 쓴 글을 보면서 이렇게 말이 많았던가 싶다. 순발력이 달려 말보단 글로 주절거린다. 이런 나와 남편 둘이 있으면 조용하다. 그러다 그냥 던지는 말들을 그냥 서로 들어준다. 그리고 난 웃고.




이레는 내 생일 전날까지 “아빠, 잠깐 나랑 밖에 나갈 시간 있어요.?” “엄마는 무슨 색 좋아해요?” 물어보기도 하고, 아빠랑 둘이 비밀 얘기도 하더니 결국 편지 한 장 없이 엄마의 생일을 보냈다. 혼자 머릿속이 얼마나 바빴을까.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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