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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현 Jul 14. 2023

옥수수도 어려워하는 끝맺음

부부

무슨 근거가 있을까 싶지만 예상 밖으로 딱 맞는다며 친구들 사이에서 여러 번 회자된 심리테스트가 있다. 아주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대략 이런 질문들이었다.(읽으면서 답해보세요.)



1. 당신은 홀로 숲에 떨어지게 되었는데, 동물 하나를 데려갈 수 있습니다. 어떤 동물을 선택하시겠습니까?

2. 그 동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3. 그 동물과 강을 건너야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강을 건너시겠습니까?

4. 강 건너 오두막에 도착했습니다. 가장 먼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나의 답

1. 사슴

2. 예쁘고 아름답다.

3. 통나무를 엮어서 같이 타고 간다.

4. 사슴을 씻겨주고 닦아준다.



남편의 답(그 당시 아는 오빠)

1. 독수리

2. 멋있으니까.

3. 독수리는 날아가라고 하고, 본인은 수영해서 간다.

4. 알아서 쉰다.




이 심리테스트에서 동물은 배우자를 의미한단다. 어떤 유형의 배우자를 원하는지, 배우자와 함께 어떻게 삶을 헤쳐나갈지 물어보는 재미용 테스트였다. 그게 벌써 11-12년 전쯤인데, 아직도 기억이 나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부부의 모습과 남편이 원하는 모습이 저 대답에 딱 들어 있기 때문이다. 소꿉놀이하듯 같이 조물조물하고 싶어 하는 아내와 각자 멋있게 할 일 하며 살길 바라는 남편이다. 비슷한 점이 많다 생각해 결혼했는데, 동상이몽이었다.


남편에게 “오빠, 우리 좀 아기자기하게 살자.”라고 하니,

임신해서 볼록 나온 내 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기”,

그리고 나를 손가락으로 톡 치면서

“자기?”

이러고 간다.




지금은 애들 북새통에 못하지만, 신혼엔 종지만큼 작은 그릇에 남편이 먹을 영양제를 담아 물과 함께 가져다 주곤 했다. 이 사실을 안 나이 좀 있는 언니가 눈을 희번덕 뜨고는 나에게 정신 차리라며 한 소리 했다. “너 남편 바보 만들려고 그래?” 언니한테 혼난 일을 남편한테 말하니 그 언니들이랑 놀지 말라고 한다. 크큭. 아빠가 낮에 잠깐 눈을 붙이실 때면 감자를 썰다가도 도마와 칼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마저 칼질을 하던 엄마 때문일 수도 있다.(배려 그 자체였다.) 엄마 때문이든 아니든 그냥 나는 그게 좋다. 지금도 로션을 발라주고, 귀를 파주고, 머리카락 만져주는 그런 바보 만드는 일들이 좋다.


문제는 서로 다르다는 점. 남편은 나를 멋있어한다. 나는 그게 싫지는 않지만 만족스럽지도 않다. 배부른 소리라 해도 각자가 원하는 사랑의 언어가 다르니 어쩔 수 없다. 내가 해주는 대로 나한테도 해주면 좋겠는데, 남편은 나 스스로 잘하는 일에 박수를 쳐주는 것으로 애정을 표현한다. 10년이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서로 그때 그 말이, 그 행동이 사랑이었구나 하는 것이지, 모른 채 분내며 지나간 날도 수없이 많다. 진짜 많다. 서로 잘잘못 따지지 않고 수월하게 이해하며 지나가는 순간들이 그냥 오진 않았다.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초당옥수수 한 박스가 현관 앞에 도착했다. 이레가 책 읽는 동안 중문 앞에 앉아서 아주 얇은 속 껍질 3-4장만 남기고 수염이랑 겉껍질은 다 벗긴다. 처음엔 재미있다가도 자꾸만 남은 옥수수 개수 헤아리게 되는 단순노동이다. 지루함 끝에 박스 안에 있던 안내문을 읽었다. ‘초당 옥수수는 끝맺음이 어렵습니다.’ 낯선 문장이었다. 끝맺음? 작은 글씨의 상세 설명을 보니 옥수수 끝까지 열매가 차오르는 것을 끝맺음이라 하나보다. 옥수수 껍질을 벗기면서 속을 보니 정말로 끝부분은 대부분 비어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가만 서서 물먹고 바람맞으며 햇빛 받는 옥수수도 끝맺음이 어렵단다. 땅에 박힌 뿌리로부터 온 힘을 끌어올려가며 한 알 한 알 알맹이를 만드는 걸까?


결혼의 전제는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딛고 맺혀가는 열매도 사랑일진대,  그 사랑을 끌고 끝까지 가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열 명이서 맘을 맞추는 것도 아니고, 딱 둘이서만 맘을 맞추면 되는 건데 생각과 마음을 하나로 모아 사랑하는 일이 어찌 이리 복잡하고 어려울까? 하루하루 모여 속이 까맣게 타기도 하고, 또 다른 날들은 모여 행복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랬다저랬다하고, 답답하다 고마웠다 하고, 그래도 너무 했다 싶고, 그럼에도 사랑하게 되는 이 출렁임이 익숙해지기까지 한다. 그래도 덜컹덜컹했던 시간들은 우리 둘을 섞어 조금씩 더 비슷하게 만들었다.


끝맺음 잘했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고민 없이 남편이다. 엄마, 아빠, 우리 아기들이 알면 서운하겠지만 분명하다. 피는 물보다 확실히 진해서 부모님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데는 사랑의 에너지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어떠한 힘이 많이 소요되지 않는다. 우리의 피 속에 사랑이라도 흐르고 있는 건지, 피 섞인 가족에게는 자동으로 눈길과 마음이 간다.


그런 반면 남편은 그야말로 남이다. 동글동글 눈알 굴려가며, 미간 찌푸려가며 이해해 봐야 하는 존재. 그래서 사랑이 제일 많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옥수수 알맹이 같은 사랑을 하나 둘 달아가며 이제야 겨우 초입을 지났다. 그림같이 노랗고 예쁜 초당옥수수처럼 말고, 까만 점박이도 있지만 끝까지 꽉 찬 찰옥수수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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