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지현 Jun 14. 2023

불편한 얼굴

사랑은 끝까지

오빠와 내가 번갈아가며 엄마를 힘들게 할 때도 잔소리는 없었다. 우리는 공부하란 얘기조차 한 번을 못 듣고 살았다. 다만 교회에서 돌아온 엄마의 젖은 얼굴을 흘깃 볼 뿐이었다. 엄마의 그런 태도는 유약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훨씬 강력했다. 엄마는 그렇게 소리 없이 강했다. 레간자도 아닌데 말이다. (레간자는 “소리 없이 강하다”라는 카피로 유명했던 2000년 전후로 나온 대우 자동차다. 카피는 카피다. 뇌리에 박혔다.) 우리 집 차가 레간자였기 때문에 그 이름을 잊을 수 없기도 하지만 엄마와 딱 맞는 표현이라 내 핸드폰에 엄마번호는 레간자로 저장되어 있다.     


구글 이미지 검색


사춘기를 안 겪고 평생을 요동 없이 사는 사람도 있다던데, 나의 사춘기는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가혹했다.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아빠의 직업 덕분에, 그 기대는 고스란히 나에게도 지어졌다. 사춘기가 오는 무렵부터 나의 사명은 친구들의 그 기대를 탈탈 털어버리는 것이었다. 리바이스의 카피 '난 나야'처럼 아빠, 엄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나 그 자체로 살고 싶은 절실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내게 쌓아 놓은 것이 많은 엄마를 배신할 수 없어 대단한 일탈은 해보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이놈의 호르몬은 절제를 잃게 했고, 밉디미운 언행심사를 일삼았다. 그러던 내 뾰족함이 익은 벼처럼 고개를 숙이게 된 계기가 있다. 엄마는 전업주부라고 하기에도 또 워킹맘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삶을 살았는데,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오빠와 내가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오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래서 여행은 물론이고, 흔한 부부모임에도 참석하지 않으셨다. 아이들만 집에 두지 않는 것이 엄마의 철칙 중 하나였다. 주변에서 유난이라고 성화였지만, 사실 자신의 철학을 지키려면 유난이란 소리 정도는 들어야 하는 법이다.     



초등학교 때는 물론이고 중고등학교 때도 거의 그러셨는데, 고등학교 시절 어느 하루 엄마가 조금 늦으셨다. 저녁때가 지난 터라 엄마는 내게 다급하게 무엇을 먹을지 물어봤는데, 심통이 난 나는 엄마가 부르는 메뉴마다 족족 퇴짜를 놓았다. 못 이기는 척 간신히 나가서 평소 좋아하던 갈비탕 집을 갔지만, 시간을 끌었던 터라 더 이상 주문을 받지 않는다는 말에 더 골이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계속해서 무얼 해주면 좋을지 물어봤다. 그럼에도 나는 뾰로통한 입으로 분위기만 험악하게 만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멈추지 않고 급하게 볶음밥을 만들어냈다. 자존심도 없게 한술만 뜨라고 사정을 하셨다. 나도 금방 마음을 풀고 싶었지만, 짜증과 미안함, 부끄러움이 한데 섞여 도대체 얼굴이 펴지질 않았다. 나는 징글징글하게 끝까지 고집을 부렸는데, 엄마는 역시 강했다. 엄마가 이겼다. 엄마는 한결같이 부드럽게 그리고 끝까지(이게 중요하다.) 엉킨 내 마음을 풀어냈다. 이 볶음밥 사건으로 나의 치솟던 자아가 조금은 말랑해져 버렸다.    



남편한테 이 이야기를 하면 진저리를 친다. 굶기고 혼내야 된다는 것이다. (안다. 나 스스로도 너무 부끄러운 이야기다.) 그런데 끝까지 사랑하는 거, 그게 진짜다. 나도 그렇고 대부분이 사랑하다 그만둔다. 사랑은 치사하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탈진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런 사랑 앞에 꼿꼿할 사람은 없다.



사춘기 시절 엄마는 내게 불편한 얼굴이었다. 제한 없는 사랑의 소유자라면 불편함 없는 순도 100%의 사랑을 쏟아주겠다만, 사실 인간들이 주고 받는 사랑엔 불편함이 섞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유한하고 불완전한 사랑엔 ‘희생’이 섞이기 때문이다. 내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사랑과 희생은 쌍둥이 같다고 하셨는데, 참말이다. 쌍방이 행복한 사랑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참고, 기다리고, 울고, 기도하는 그런 사랑을 알기에 그 사랑을 받는 자는 마음 한편이 불편해지고 미안해진다.



그럼에도 모든 인간들, 특히 아이들에게는 불편한 누군가가 필요하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아이들은 학교 선생님이 불편하다. 선생님의 사랑이나 믿음, 때론 학칙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진짜 불편한 건 보통 엄마, 아빠,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누군가다. 잘못했을 때 쳐다보기 미안한 얼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얼굴 말이다.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사랑의 부재나 권위를 잃은 부모를 의미한다. 잘못 앞에서 불편해지는 얼굴, 그 존재가 우리의 방향을 잡아준다. 인간의 성장에 있어 가정의 역할이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까지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집안의 불편한 얼굴이 세상을 지킨다.

이전 03화 대패삼겹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