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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Jul 26. 2023

냉정과 열정사이

복잡한 감정싸움


13여 년 전 비서들의 꿈의 직장 이기도 했던 외국계 회계법인에 근무 중이었지만, 여전히 성장에 대한 갈망이 남아 있었고, 박진감 넘치는 대기업 코어에서 쫄깃한 하루하루를 경험하고 싶었던 31살, 뜨거웠던 나의 청춘에 정말로 그러한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상상했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가혹했다. 하루를 한 달처럼 일하며 분 단위로 쪼개 살고, 출퇴근의 경계가 모호해져 쪽 잠을 잔 적도 여러 번이었다. 졸음운전으로 몇 번을 죽음의 문턱까지 왔다 갔다 하고 나서야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실감했으니까.


그래도 내게 있어 상사는 이 땅에서 비서라는 소명을 받아 선택하고, 선택된 그런 유일한 우주라고 느껴졌기에 작은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도 식스센스를 동원한 것은 물론,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들은 일어나기도 전에 제거되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상사만 알아준다면. 나의 능력과 로열티를 알아봐 준다면’ 하는 생각으로 어떤 때보다 누구보다 모든 일에 열심히 임했다. 멀리서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상사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나의 열정은 그 시절 거의 모든 불가능을 가능케 했고, 6년쯤 지난 때에는 “못하는 거 없는 사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 으로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쯤 되니 질투를 받기보다는 어나더레밸로 인식되어 내가 하고자 하는 업무서포트의 수준을 모두 만족할 만한 퀄리티로 이끌어낼 수 있었다.


물론 열정이라는 것이 본인이 마음먹는다고 바로 생기거나 확장시킬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하고자 하는 일을 해내고야 말겠다’라는 마음가짐과 몇 번의 시도. 그리고 작은 성공들 끝에 차츰 자라나서 점차 커지고 어느새 나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게 되니 열정을 계속해서 지켜내며, 내가 가려는 방향으로 묵묵히 향해 가는 것이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있는 경험을 여러 번 하게 되고, 열정이 모두 타서 재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이르러 이 글들을 쓰기까지에 이른 것은, 모든 상황을 마무리하고 성공적으로 이루어 냈을 때를 상상하며, 그 성취감을 가슴에 가둬두고 나의 능력을 최대치로 올려 올인하기 때문이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해질 것을 믿는다.


절대로 ‘좋은 게 좋은 거다, 안되면 어쩔 수 없고’라는 생각은 애초에 품지 말자.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마음으로 이도 저도 아닌 행동을 하게 되면 나도 역시 이도 저도 아닌 사람으로 남기 마련이다. 


오직 목표를 이루기 위해 뜨겁게 집중하고 오롯이 달구어진 채로 뾰족하게 연마되어 정해진 방향으로 나아가자. 그렇게 가다 보면 성공해서 모인 사람들과 그 산 정상에서 나 또한 성공한 비서로 서 있을 것이다. 


한편 열정과 더불어 꼭 필요한 것은 냉정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비서가 다루는 여러 가지 정보들은 C-LEVEL(경영진)에서 오고 가는, 회사의 전반적인 방향 결정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몇 비서들은 이러한 정보를 비서 본인의 사익을 위해서 활용하기도 하며, 심지어 본인의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정보를 관련된 사람들에게 제공한다거나, 알지 않아도 되는 정보까지 알아내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인사철과 프로젝트 발표날에 입이 근질거린다면, 내가 비서로 정말 적합한 사람인가? 와 내 상사와 얼마큼 같이 갈 것인가? 를 생각해 보자


“우리 사이가 그런 것도 알려주지 못하는 사이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혹시라도 있다면

그 사람과는 뜨겁게 손절할 시간이다.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자. 회사의 모든 사람이 친구가 될 필요는 없다. 차라리 고독을 선택하여 비서로써 양심을 지키고, 롱런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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