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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Jul 26. 2023

워라밸도, 나도, 지켜야 산다

길고 오래 걷기 위해 전력질주는 피한다

가끔 일에 몰입해 있다가 마무리를 짓고 나면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와 같은 심정에 휩싸일 때 있다. 상사의 만족한 모습을 기대하며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결괏값을 받아내고 잠시 쉼을 얻을 시간을 가졌을 때 종종 저런 무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결혼 전, 일이 삶의 전부였을 때는 심지어 상사로부터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남자친구도 만들고 결혼도 해서 삶의 밸런스를 맞추며 살아야 한다는 그런 류의 잔소리를  들었고, 가족들로부터 노처녀로 살아가게 될 걱정을 귀가 아프게 들었으니 그때에 나의 머릿속은 온통 상사와 그 일로 가득 차 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템포로 얼마나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었을지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사람의 에너지란 것이 정해져 있어서 소진되면 채워 넣어야 하고, 지칠 때는 쉼도 가져야 하는데 그런 욕구들은 넣어 둔 채 그저 나의 쓰임에 부응하여 달리기만 했다면,

아마도 금세 번 아웃 되어 일찌감치 일을 그만두고 남편의 고향으로 귀향하여 소박한 삶에 적응되어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일에 열정적으로 몰입하다가도 잠시 쉴 수 있는 시간도 스스로에게 허락하길 바란다.

시간을 쪼개어 친구도 만나고, 문화생활도 하고, 회사의 동료들과도 어울리고 일로 쌓아가는 지식이나 경력만큼 영혼의 풍부함과 쉼도 느끼길 말이다.


본인이 충분히 충전되었을 때에는 회사에서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도 기준을 잃지 않는 현명한 선택들을 할 수 있고, 충분히 숙고하지 못해 생기는 실수들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만큼이나 중요한 삶의 부분은 가족인데, 가족이야말로 내 삶의 휴식이 되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주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커다란 동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건강검진을 통해 폐동정맥기형이라고 진단 받았을때도, 그 병변이 폐뿐이 아니라 뇌에도 있을 수 있으니 함께 검사해야 한다고 했을 때도, 내가 잘못되었을 때 남겨질 아이들과 남편이 가장 걱정되었고, 겁나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아니요"라고 담담히 대답하였을 뿐. 엄마의 부재로 인해 생길 공백의 걱정만이 나를 사로 잡았었다.


내가 감기라도 걸려 아플 때에 작은아이가 “엄마 아프면 안 돼, 너무 슬퍼”라고 말할 때는 “사람은 언젠가는 모두 다 하늘나라로 가. 거기서 모두 만나고 할머니도 거기 가면 만날 수 있어.”라고 담백하게 얘기해주곤 했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고 아이들의 결혼식도 못 보고 갈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해 보니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


왜 그토록 엄마가 살아있을 때 결혼을 하라고 닦달했는지 비로소 알 수 있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니 부디 그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삶을 풍부하게 가꿔가고 건강도 챙기는.

기본적인 것들을 잃지 않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이런 당부는 비단 비서들 에게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서로 살아가게 되면 상사의 입장과 상황에 몰입하게 되고, 그 기준에 맞춰가는 날들이 많게 되어 점차 상사와 동기화되고 어느새 나의 삶이란 것이 희미해져 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오히려 더욱 주체적 이려고 노력하길 바란다. 본인이 주관하는 여러 모임을 만들기도 하고,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면 삶은 더 풍성해지고 같은 길을 가는 동료들도 만들 수 있게 되고, 지쳐도 금방 충전되어 다시 일터로 나올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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