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과 함께 거실 창문에 벚꽃이 가득 들어찬 액자 하나가 걸려 있다. 아내가 차려낸 식탁에 앉아 밥 한 숟갈을 입에 넣고 단맛이 나도록 씹었는데도 시선은 건너편 산자락 벚나무에 고정되어 있다. 시간에 쫓겨 자리를 박차고 나서는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아파트 진입로를 벗어나 고개는 차창 밖 가로수에 머문다. 펼쳐지는 봄꽃과 연두색 새싹은 아기 손톱만큼 뾰족하게 솟아 가속페달에서 발을 내리게 한다. 한 시간가량 달려가는 출강 길은 앞 차량의 반복되는 빨강 불빛에서 벗어나 아침 기분을 끌어올려 준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강의실을 들어섰다. 강의실과 대상자가 바뀌었다. 느닷없는 인물의 접근에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두 눈을 똘똘 굴리며 무슨 일이냐는 듯 바라본다. 인사에 이어 내 소개가 이어진다. 이곳은 여느 지역과 다르다. 한 학년이 열두 개 반이나 된다. 신입생은 두 개 반이 더 늘었다. 기반 시설과 산업체가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해서인지 젊은 세대가 많아 학령인구가 전국에서 몇 번째 손에 꼽을 정도다.
두 시간 강의 후 휴식 시간이다. 때맞추어 컴퓨터를 열어 미디어를 재생시킨다. 선고가 시작되었다.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내용에 귀가 쫑긋한다. 지속하는 선고에 안타까움만 남는다. 한 나라 지도자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다. 개인의 이기적인 결단으로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하다. 누구를 탓하고 누구의 잘못을 따질 것인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이론 못지않게, 현실에서 교과서 내용을 접한다. 계기 교육의 시간을 별도로 마련할 필요가 없다. 경험은 산 지식이다. 그 어떤 경우보다 오래도록 기억된다.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용어에 대한 안내를 보탠다. 누구든지 판단은 신중하게 그리고 결정은 정확하게 내려야 한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비전 제시다. 감정이나 열정은 뒤로 미뤄야 한다. 이성이 바탕이 되어 단순한 제시가 아니라 실행이 뒤따라야 하는 일이다. 능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실력이어야 한다. 지도자에게는 연습이 주어지지 않는다. 주어진 시간에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어야 한다. 경력자에게 문제 해결 능력을 요구하고, 신입은 잠재능력을 기대한다. 역량은 잠재 가능성을 지닌 미래 지향적인 인재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준비 과정을 거쳐 머지않은 날 능력으로 이어지면 선택을 잘한 것일 테다. 어쩌면 어느 곳에서나 원하는 인재상이다.
강의실에서 학습 자료를 나누어 준다. 안내에 이어 빈칸을 채워가는 학생들을 둘러보고 도움을 준다. 한 획, 한 글자를 완성하는 정성들이 가슴에 와닿는다. 성장하는 청소년은 무한한 가능성이 깃들어 있다.
미래는 이들의 몫이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역할이 주어질 것이다. 단순히 현재의 얕은 결과보다는 만들어가는 과정에 방점을 찍는다. 시간에 쫓겨 서두르기보다 기다려주는 여유가 필요한 듯 느껴진다. 일흔 살 어른이 세 살짜리 손주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고 했던가. 지식이 모여 지혜가 되고 경험은 경륜으로 모인다.
두 해째 이곳의 학생들과 만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본다. 이전에는 조급한 마음에 서둘러 결과를 요구하고, 다 같이 행동하도록 재촉했다. 주변까지 둘러보고 기다려주는 여유는 시간이 해결해 주는 모양이다.
능력과 역량 두 가지를 모두 갖추었다면 최상이다. 작은 일일지라도 완성해 가는 능력은 성취감을 준다. 청소년에게 미래를 이끌어갈 역량을 키우고 문제 해결 능력이 갖추어가는 기초를 돕는다. 조력자의 역할을 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