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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영이 Nov 24. 2024

[두 바퀴의 기억 곁에]

    비포장 도로는 사정없이 달리는 트럭과 한 시간 간격으로 노선버스가 지날 때면 희뿌연 먼지를 일으킨다. 울퉁불퉁한 자갈을 피해 자전거 핸들을 움직여 요리조리 요술을 부린다. 학교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삼십 분 정도다. 친구나 선후배와 무리를 지어 오간다.

    등교 시간에는 집에서 출발하는 시간이 각자 다르다. 동네를 벗어나 큰길에 이르면 학교로 가는 동행을 만날 수 있다. 계절에 따른 자전거 길은 여러 느낌을 준다. 봄이나 가을은 풍경을 즐기면서 오간다. 기온이 높은 여름은 가로수 그늘을 찾아 땀을 식힌다. 가장 힘든 때가 겨울철이다. 강바람에 살갗을 파고드는 추위로 손가락은 굳어지고 바짓가랑이 사이로 스며드는 찬 기운이 온몸을 얼어붙게 한다.

   흙먼지를 피해 마을 안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탄다. 시간이 더 걸리지만 하얗게 뒤집어쓰는 무차별 폭격을 피할 수 있어 길을 돌아서 간다. 낮이 긴 계절에는 둘러 가는 호사를 누릴 수 있으나 나머지 계절에는 그마저도 사치다. 자전거에 조명이 갖춰지지 않아 돌 길을 헤쳐 가는 일은 모험이다.

    해가 저물어 갈 즈음 보충수업을 마치고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친구 몇 명이 모여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빵집으로 향한다. 군만두와 찐빵이 주 메뉴다. 난로 위에 김이 몽글몽글 나는 주전자에 담긴 보리차는 모자란 배를 채워준다. 따뜻하고 구수한 두어 잔의 차는 추위와 배고픔을 멈추게 만든다. 한 달에 한 두 번 찾아가는 행사가 기다려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와 어울려 집으로 향하는 길은 즐겁다. 빠르게 달리기나 자전거 핸들을 잡고 있는 두 손 놓고 운전하기는 작은 묘기 중의 하나였다. 한 동네에서 자라 시오 리 남짓 거리를 오가며 우정을 돈독히 하였다. 웃고 장난치고 고민을 털어놓는다. 신작로를 빠져나와 동네 어귀 콘크리트 다리 위는 쉼터이자 약속 장소였다. 늦게 오는 친구들이 올 때까지 까만 교복 윗옷을 벗어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낸다. 더불어 눌러쓴 모자까지 본래의 기능을 넘어 바짓가랑이를 문지른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오갔다. 새 자전거를 갖고 싶었다. 여의치 못한 형편에 언감생심 남이 쓰던 중고품 정도도 감지덕지였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형들은 얼룩얼룩 무늬가 있는 교련복 때문에 먼 거리에서도 중학생과 구별이 되었다. 동네마다 별 차이는 없었다. 중고등학교 진학은 선택된 사람만이 누리는 혜택이었다. 남자는 열 명 중 네댓 명이, 여자는 두 세 명만이 학교를 다닐 정도다. 대부분은 진학 대신 집을 떠나 도시 지역 공장이나 남의 집 가정부 생활로 인생이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개의치 않고 받아들이는 통과의례였다.

    꿈꾸던 성장 시절을 함께 한 녀석들은 뿔뿔이 흩어져 겨우 사는 소식 정도만 전해진다. 가끔 가까운 지역에 사는 이들과 철부지 시절 소몰이하고 냇가에서 몰놀이하던 기억을 식탁에 풀어놓는다. 떠나지 않는 고향의 정을 나눈다.


    세월이 지나 옛 시절을 뒤돌아 본다. 농사일이 싫어 갖은 핑계로 하교시간이 고무줄이었다. 철부지 아이의 미봉책인가. 두 바퀴와 더불어 꿈과 희망을 갖고 미래를 향해 매진한 지난날이다. ‘인생에는 지름길이 없다’고 했던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윗대가 모두 떠나버리고 어느덧 내가 최고 어른의 위치에 있음을 인지한다. 자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삶의 흔적들이 확인된다. 서로의 안녕과 건강을 확인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하나하나 채워 나간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지만 행복이 단순한 물욕을 벗어나 주변의 작은 것에서 하나씩 찾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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