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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음 그리고]

by 우영이 Jan 24. 2025

    사도 삼촌의 시골 생활에 접어든 지 삼 년 째다. 주초에는 농촌에서 그리고 주말은 도시에 터전을 삼는다. 창고 옆에 철망을 세워 어설프게 자리 잡은 닭장에 몇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봄에 읍내 오일장에서 병아리를 사다가 넣었는데 몇 개월이 지나 이제는 청계와 토종닭이 알을 낳는다.


    처음에는 양계용 사료를 사다가 길렀다. 닭이 자라면서 사료값이 만만찮다. 한 달에 20 킬로그램 한 포대로는 모자란다. 동네 어귀에 도내에서는 가장 크다는 정미소가 있다. 자전거를 타고 푸른 쌀알이나 싸라기를 사들여 모이로 이용하였다.


    어느 날 초등학교 친구에게 닭 사료 이야기를 했더니 무료 나눔 신청을 해 보란다. 도시에서는 특히 인터넷을 활용한 나눔이 활발하여 닭 모이 구하기가 쉽단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전했더니 바로 앱을 설치하여 활동을 시작한다. 알림 기능까지 켜 두었다. 앱에 들어갔는데 동네 근처에 닭 모이를 구한다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경쟁자가 많으니 무료 나눔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듯하다.


    아내는 휴대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않고 채팅하기 버튼을 만지작거린다. 드디어 며칠 만에 첫 거래가 이루어졌다. 무료 나눔으로 오래된 쌀 한 꾸러미를 받기로 했다. 자동차로 이십 분 거리다. 이웃하는 동네로 달려가 아파트 입구에 이르러 도착을 알렸다. 집 호수를 넘겨받아 현관 출입구 번호를 누르고 집 앞에 놓아둔 포대를 챙겨 자동차 짐칸에 싣는다. 처음으로 무료 나눔을 받은 덕분에 약간의 닭 모이를 확보할 수 있었다. 고맙다는 문자를 거듭 보낸다.


    이틀 후 거래가 또 이루어졌다. 나눔 채팅을 하는데 찻길 하나 건너 다른 아파트 단지다. 만나는 시간을 정하는데 답신이 오지 않는다. 집 정리를 하면서 기다리는 가운데 문자가 도착하였다. 나눔을 해 주겠다는 사람이 지나는 길에 우리 집 앞까지 가져다주겠다고 한다. 우리가 시간이 있으니 그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으나 괜찮다며 이내 연락이 없다. 아내가 우리 집 호수를 입력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무료 나눔 앱으로 문자가 왔다.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는데 현관 앞에 묵은쌀을 가져다 놓았다는 내용이다.


    아니, 이런 친절을 베풀다니, 나눔을 신청한 사람 집 입구에다 쌀자루를 가져다 두었다. 흔치 않은 일이다. 아무리 지나는 길이라도 일부러 14층까지 올려다 준 것이다. 이렇게 고마울 때가 있나. 늘 ‘좋은 일이 함께할 것’입니다. 감사 인사의 문자를 보낸다. 아내와 둘이 얼굴을 마주 보며 무료 나눔을 해 준 분에게 보답할 방법을 찾기로 하였다.


    햇살이 퍼지기 전에 모자를 쓰고 현관을 나섰다. 매일 빠지지 않고 나서는 아침 산책은 하루를 시작하면서 활력을 가져다준다. 집 주변 공원을 끼고 크게 한 바퀴 걷다가 아파트 단지와 단지 사이 공간으로 찾아간다. 이곳은 애초에 도로로 두었는데, 역할을 하지 못하고 휴식 공간으로 활용이 되고 있다. 그늘이 내내 이어지는 작은 도서관 옆에 설치된 운동 기구가 아침 시간을 함께해 준다.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몇몇 사람 외에는 자리가 늘 비어있다. 가끔은 같은 아파트 주민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운동을 하기도 한다. 줄을 당기며 팔 운동을 하는데 오늘은 평소 마주치지 않던 젊은 남자가 하늘 그네를 타고 있다. 이전에도 같이 시간에 마주친 적이 있다. 아침 운동을 하러 왔다가 기분이 상해 맞닿고 싶지 않은 인물이다.


    일곱 가지 기구를 전부 활용한 운동을 마치고 마지막 기구를 이용하고 싶었는데 데 아직도 ‘하늘 그네’를 차지하고 있다. 언제 끝날까 하고 기구 근처에서 기다리는데 도무지 소식이 없다. 가까이 다가가 아무런 말도 없이 서 있어 보는데 눈치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무시하는 제 혼자 계속 운동을 하고 있다. 이 있어 말을 건넸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요?’ 얼굴만 돌린 채 곧 끝납니다.라는 대답만 한다. 시간을 확인할 수 없고 기다리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결국, 운동하는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산책 겸 운동에 나섰다가 오히려 아침부터 집을 나서지 않음만 못한 결과를 맞았다.


    그래, 이런 날도 있을 수 있지. 공교롭게도 다리 운동을 하는 기구 두 개 중 한 개가 고장이 나서 관리 기관에서 철거하였다. 하나 남은 운동 기구였기에 한 사람만 이용할 수 있다. 먼저 사용하는 사람이 멈출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운동 기구를 관리하는 구청 산림녹지과에 수리 요청 민원을 넣어야겠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관계를 맺는데 하루 사이 큰 널뛰기를 맛보았다. 다른 사람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친절을 베풀고 자신의 것을 무료 나눔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오로지 자신을 위해 행동하는 이도 보았다. 나 자신은 어떤가. 더불어 사는 사회 속에 남을 헤아리는 생활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본다. 모든 것은 마음의 여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남을 탓할 이유는 없다. 그렇지! 저 사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아마 나름의 사연이 있을 것이라며 자리를 뜬다.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자신을 편하게 해 준다.


    남의 일을 통해서 자신을 다잡는 계기로 삼는다. 타산지석이라 했던가. 공연히 남 탓하는 일은 하지 않아야겠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구성한다. 남을 도와주는 사람도 있고, 손해를 끼치는 이도 있다. 도움 주는 사람이 더 많기에 살 만한 세상이 아니던가. 억지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는 친절을 베풀기로 한다.


    스스로 덕을 쌓는 나 자신에게 여유로움이 생겨나겠지. 무료 나눔 창을 열어 놓고 내가 가진 것도 다른 사람이 필요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약재로 쓰이는 나뭇가지 묶음을 올려둔다. 오늘도 닭 모이를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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