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밝은별 Sep 18. 2024

"새날입니다" 살아있어 행복한 하루

간암 판정 받은 다음날의 일기

안동시에 위치한 월영교 입구

2023년 5월 11일   


새날입니다.     


오늘따라 유독 날씨가 화창하다. 나무들은 왜 이리 녹음이 짙은지.     


오늘은 안동시청에 출장이 있다. 아내는 처음부터 말렸다. 정 가려거든 자동차가 아닌 KTX를 타고 가라고.    


하지만 난 자동차를 택했다.      


오전 8시 30분경, 출발 전부터 전화벨이 울렸다. 동생의 안부 전화였다. 전날 워낙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지라 가 걱정이 됐나 보다. 내 컨디션도 묻고 형수 상태도 묻고 고마웠다.     


동생의 전화를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이어 어머니의 문자도 도착했다. 그놈과 싸워 이기라는... 그래 싸워 이겨야지. 한참 도로를 달리는데 아버지의 전화도 왔다. 그 몸으로 웬 출장을 가냐고 걱정을 했다. 하지만 밝은 목소리로 괜찮다고 말씀 드렸다.     


물론 아내도 계속해서 내 안부를 물어 왔다. 한 시간 마다 전화하라면서.     


그나저나 오늘 날씨가 참 좋았다. 오랜만에 맑고 화창한 날씨였다. 안동을 내려가면서 봤던 치악산, 소백산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내와 아이들의 목소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웃음이 절로 났다. 여러모로 오늘은 아주 행복한 하루였다.     


누군가가 나를 생각해 주고 있어서, 그런 가족이 있어서, 잘 살아 있어서 정말 행복한 하루였다.     


하지만 ‘간암’이라는 두 글자,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런 행복한 일상들 속에서도 문득문득 떠올랐다. ‘죽음’이라는 두 글자와 함께.     


내 죽음 이후가... 남편과 아빠가 없는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이 머리 속에 수시로 떠올랐다. 그럴 때마다 그럴 수는 없다고 되뇌였다. 그런 상황이 오게 해서는 안 된다는 강한 부정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쉽게 떨쳐지지 않는 게 사실이다.     


나이 마흔둘에 간암 판정을 받다니...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아내와 가족들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안간다. 상상조차 하기 싫다.     


간암 판정을 받은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는 것도 고민거리 중 하나다.     


회사에는 당연히 알려야 하지만 후배들과 동료들에게는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그냥 말을 하지 않는 게 나을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하지만 굳이 숨길 일은 아닌지라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계획이다.     

월영교

지난해 간암 판정을 받은 다음날 써 놓았던 일기다.     


지금은 절제수술을 받고 1년이 지나 2년차에 접어 들었다. 아내를 비롯한 아이들, 부모님, 형제 모두 내 곁에 있다.      


그때와 지금, 비교해 보면 많은 것이 바뀌었다. 유일하게 바뀌지 않은 게 있다면 가족이다.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받았지만 건강한 내 모습에 안도와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다짐하고 준비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가족이 없었다면 홀로 간암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 같다. 물론 아직 진행중이지만 아내의 몫이 가장 컸다. 먹는 것부터 스트레스 관리까지, 거기에 육아며 생계까지 가장 큰 힘이 됐다. 아이들도 빼 놓을수 없다.     


가족이 없었다면 어찌어찌 버텨낼 수는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건강하고 활기찬 새로운 모습으로의 탈바꿈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오늘도 새로운 하루를 살아 간다.     

이전 03화 서울아산병원에서 국립암센터로...수술 방법 찾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