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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별 Oct 08. 2024

세상에서 가장 편안했던 중환자실 침대

수술실로 들어가는 모습

수술 당일 아침엔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난생처음 관장이라는 것도 해 보고 가슴과 복부 주변 제모까지 했다. 모든 게 첫 경험이다 보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오전 8시경 수술실로 이동할 시간이 돼 아내, 간호사와 함께 휠체어를 타고 수술실로 향했다. 난생처음 수술실에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 수술은 잘 견딜 수 있을지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짧은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수술실 문 앞에 서서야 내가 수술을 한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수술실 문 안으로는 나 혼자만 들어갈 수 있다. 아내와 짧은 인사를 마치고 나는 수술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자동문이 닫히는 사이 아내를 쳐다봤다. 수술이 잘 될거라는 믿음과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큰 감정의 동요는 없었지만 문 밖으로 보이는 아내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었지만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한동안 울었단다.     


수술실에 들어갈 당시에는 몰랐지만 어찌보면 그곳은 생사의 갈림길이었다. 나와 함께 그날 수술 받은 사람 중 몇은 세상과 이별을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나중에서야 했다.     


지금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날 수술실 안 대기실에는 열 명 남짓한 환자들이 있었다. 머리에는 수술실용 모자를 쓰고 환자복을 입고 슬리퍼를 신고 모두 다 똑같은 모습이었다.     


사실 난 그곳에 앉아 있으면서 만화영화 버섯돌이가 떠 올랐었다. 대기하는 환자들의 모습이 버섯돌이 캐릭터와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든 또 다른 생각은 “아~ 내가 제일 어리구나”라는 생각이었다. 나와 함께 수술 대기 중인 환자들 대부분은 장년층의 남성과 여성이었다. 나이대도 60대 이상으로 보였다. 그 중에 40대 초반의 내가 있다는 사실에 순간 씁쓸함이 몰려왔다.     


“내가 정말 내 몸에 못 할 짓을 하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결혼 전에는 어머니의 말을 결혼 후에는 아내의 수많은 경고를 귓등으로 흘려들었었다.     


수술실 안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스피커를 통해 이름을 불린다. 그러면 정해진 수술방으로 간호사가 휠체어를 이동시켜 준다. 대기실에 들어온 지 몇 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내 이름과 함께 수술방 번호가 불렸다. 순간 긴장됐다.     


내 수술방은 제일 안쪽이었다. 다른 수술방들을 하나하나 지나 내 수술방으로 이동했다. TV나 영화에서만 봤던 무거운 느낌의 그런 수술방을 생각했었는데 수술방들이 생각보다 깨끗하고 아주 밝은 분위기였다.     


나는 수술방에 도착한 뒤 휠체어에서 내려 수술대 위로 올라가 누웠다. 수술대가 크지는 않았지만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생각보다 차갑지도 않았던 것 같다. 수술방 한편에는 내 수술에 사용될 다빈치 기계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수술실에 들어간 환자의 진행현황을 볼수 있는 모니터

수술방에는 많은 간호사들이 저마다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수술 도구를 세팅하고 각종 약품을 확인하고 내 환자복을 만지며 수술하기 편하도록 해 줬고 이불 같은 것들을 덮어줬다. 수술 준비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수술대에 누워 수술을 위한 기본적인 세팅이 끝난 후 간호사 한 분이 내게 마스크를 씌웠다. 


“전신마취를 위한 가스가 나올 겁니다” 간호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난 깊은 잠에 빠졌다. 특별한 냄새도 없이 마스크 안으로 공기가 들어오는 소리만 들렸다. 그렇게 난 마취가 됐고 수술이 시작됐다.     


수술대에 누운 이후 내가 눈을 뜬 건 저녁 7시 즈음 수술실 옆에 있는 중환자실 회복실에서였다. 간호사와 눈이 마주치자 이빨부터 닦게 했다. 입 안에 있는 마취가스를 제거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내 몸 상태를 확인하기도 전에 이빨부터 닦았다. 마취가 다 풀리지 않아 몸을 거의 움직일 수 없다 보니 어떻게 이빨을 닦았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이빨을 닦고 나니 간호사가 내 수술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해 줬다. 당초 수술 예상시간은 2~3시간이었는데 막상 수술을 하다보니 5시간 정도 걸렸다고 했다. 그리고 자세한 건 의사가 와서 설명해 줄 거라고 했다.       


전신마취가 다 풀리지 않아서 그런지 계속 잠이 왔다. 눈을 떴다 감았다 몇 번을 반복하며 잠이 들고 깼다. 그러다 의사와 눈이 마주쳤다. 의사는 수술은 잘 끝났다며 몸 상태를 보고 병실로 이동할지 결정하겠다고 했다.     

나는 의사에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못했다. 뭘 물어보겠다는 생각도 못했고 그저 눈만 끔뻑였다.      


중환자실 회복실 침대에 누워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지금 누워 있는 이 침대가 세상 제일 푹신하고 편안하다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지금까지 아내나 지인들에게 제일 많이 하는 말이다. 지금도 회복실 침대의 편안하고 안락한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회복실에서는 수술 부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배 전체를 감은 커다란 복대 때문이었다. 수술 부위는 총 여섯 군데였는데 다행히 당시에는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아마도 약의 영향이었던 것 같다. 수술 부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은 병실로 이동하고도 며칠이 지나서였다.      


다행히 난 수술 당일 밤 회복실에서 병실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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