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한계를 넘어 서고 싶다
암 판정을 받은 사람들은 매일매일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인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어느날 어느 순간 문득 문득 떠오르기 때문이다. 가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반인은 경험할 수 없는 그런 감정들. 그래서 많은 암 환자들이 우울증에 슬픔과 좌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그에 비하면 난 다행이었다. 성격이 워낙 단순했고 해야할 일이 정해지면 주변도 뒤도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감정이나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수술을 받기 전까지 그리고 수술을 받고 나서 살아야 했기 때문에. 그게 가장 중요했다. 아내의 도움이 가장 컸던 건 말할 필요가 없다.
간암 판정 직전부터 지금까지 내가 가장 신경을 썼던건 건강이었다. 간이 좋지 않았던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사실 이런저런 핑계로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술은 결혼과 함께 거의 끊은 상태였지만 130kg이 넘는 체중은 거의 포기상태였다.
하지만 간암 판정을 받는 순간 내가 살 길은 체중감량 밖에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운동과 식단 관리에만 매달렸다. 오늘은 그중에 운동 이야기.
내가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한 건 지난해 3월부터다. 강남차병원 초음파에서 이상 소견을 발견하고부터는 매일같이 운동을 했다.
원래 산을 좋아하고 걷는 걸 좋아했는데 막상 운동을 하려니 시간도 애매하고 어떤 운동을 할지 고민이 됐다. 그래서 제일 먼저 시작한 운동이 줄넘기다. 마지막으로 줄넘기를 했던게 언제인지도 기억이 안났지만 제일 손쉽게 할수 있을 것 같았다.
줄넘기를 주문하고 도착하자마자 아파트 놀이터로 나갔다. 성인용 줄넘기에 무게가 좀 있는 걸로 샀더니 줄넘기 돌리는 것도 버거웠다. 한 번에 100개는커녕 10개도 돌리지 못하고 걸리고 헉헉대고. 아이들에게 말하기 조차 부끄러웠다. 그래도 한 시간은 해야지 하며 열심히 뛰고 쉬고를 반복. 줄넘기가 이렇게 힘들었나 싶었다.
그렇게 매일같이 줄넘기를 했다. 하루 기본 한 시간씩 뛰다 쉬다를 반복하니 한 시간에 1000개, 2000개씩 늘어나 나중엔 한 시간에 3000개씩 할 수 있게 됐다. 어찌나 기쁘던지. 나중엔 아이들도 같이 나와 줄넘기를 하고 그러다 심심하면 내가 줄넘기를 하는 동안 옆 놀이터에서 놀다가 같이 들어 가기를 계속했다.
사실 아이들이 나를 따라 나서기 시작한건 급격히 살이 빠지면서 내가 쓰러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집안이었는데 앉았다 일어나다 순간 쓰러졌던 일이 있었다. 정말 2~3초 정도의 순간이었는데 난 아무 기억이 없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지만 혹시나 또 그럴까 걱정이된 아내는 아이들에게 특명을 내렸다. 아빠 운동할 때는 보디가드 겸 항상 동행하라고.
줄넘기를 하지 않는 날은 걷기 아니면 산에 올랐다. 하루 운동 평균 시간은 최소 1시간으로 잡고 열심히 다녔다. 한 시간 평균 4~5km를 걷는다. 집 근처 산을 가도 마찬가지. 이렇게 하다 보니 살은 자연스럽게 빠졌다.
수술을 받던 지난해 6월 5일 즈음 체중은 104.5kg까지 빠졌다. 지난해 초부터 6월까지 20kg이상 감량했다. 당연히 의사도 좋아했고 무엇보다 내가 가장 좋았다. 스스로 몸이 가뿐한 게 느껴졌으니까.
덕분에 수술을 받고 나와서도 회복 속도가 빨랐다. 6월 5일 월요일날 수술을 받고 다음날부터 움직이는데 문제가 없었다. 수술 전과 마찬가지로 링거를 달고 열심히 병원을 걸어 다녔다. 몇 달 동안 해왔던 습관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주 토요일날 퇴원을 해서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의사도 환자 상태가 좋아서 퇴원을 해도 될 것 같다며 흔쾌히 보내줬다.
집에 와서는 수술 부위를 조심해야 해서 한 달정도 천천히 산책만 했던 것 같다. 실밥을 제거하고부터는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어서 다시 걷기를 시작. 한여름에도 정말 열심히 부지런히 걸어 다녔다.
사실 걷기가 특별한 운동은 아니다. 하지만 식단 조절과 함께 꾸준히 걷다 보니 효과가 좋았다. 그렇게 해서 7월 100.5kg, 8월에는 드디어 96.9kg을 찍었다. 11월에는 87.9kg까지 내려갔다. 정말 매일 같이 걷고 몸무게를 재고 늘 같은 패턴으로 살았다. 1kg이라도 늘면 스스로 경각심을 갖고 조절하곤 했다.
수술도 잘 됐고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며 체중을 관리하다 보니 몸 상태는 매일매일 최상이었다. 배가 들어가면서 허리가 줄어드는 건 기본이고 혈색도 좋아지고 어찌보면 간암 수술이 전화위복이 됐다.
올해 들어서도 운동패턴은 그대로 유지했다. 다만 운동시간을 늘렸다. 평소 1시간 내외였던 운동시간을 두시간 정도까지 늘렸다. 더 멀리 더 오래 걸었다. 다행히 힘들다는 생각 보다 운동하는 시간이 즐거웠고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걷으면서 음악도 듣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도 보고 파란 하늘의 구름도 보다 보면 걱정 근심은 모두 사라진다. 일 하는 아내, 학교에 가 있는 아이들을 생각할때면 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 건강이 가족 모두의 행복이라는 생각으로 비가 와도 날이 흐려도 열심히 운동에 나섰다.
지난 여름에는 하도 걸어 다녀서 목덜미가 새카맣게 타기도 했다. 처음엔 뭔가 잘 못 본 줄 알았는데 옷소매, 목부분을 제외하고 다 타서 씻을 때마다 웃곤 했다.
아쉽게도 몸무게는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중이다. 더 빠졌으면 좋겠지만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운동을 적게 하는 건 아니다.
여름이 지나는 8월에는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다. 바로 달리기다. 달리기라면 학창시절 때부터 제일 싫어하는 운동이었다. 100m 달리기 조차도 한번 하고 나면 헉헉댈 정도였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랬던 내가 달리기를 시작했다.
“한번 뛰어 볼까”
처음엔 정말 그냥 “한번 뛰어 볼까”하는 마음으로 달렸다. 그런데 웬걸 3km를 쉬지 않고 달렸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찌나 기쁘던지. 마음속으로 “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한번 뛰기가 어렵지 그 뒤로 매일 같이 달렸다.
20일 동안 3km를 달리다 21일째 4km 그리고 3일 뒤 5km를 달렸다.
걸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시원함과 짜릿함 그리고 시간대비 효율적인 운동이 달리기였다. 달릴 때는 아무 생각도 할 필요가 없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린다. 다른 사람들을 신경쓸 필요도 없다. 내 속도 내 호흡에 맞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이게 달리기의 매력인 것 같다.
매일 같이 달리다 지난 9월 21일 드디어 10km를 넘겼다. 약 1시간 20여분을 달렸는데 숨이 차지 않는다는 게 참 신기했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운동을 해 왔던게 큰 도움이 됐다는 생각을 했다. 살다보니 이런 날이 오는구나 라는 생각도 했다.
달리기만큼 정직한 운동도 없는 것 같다. 달리다 보면 내 한계를 정확히 알 수 있다. 하지만 꾸준히 달리면 또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게 달리기다. 달리기에 있어서는 어떤 장벽도 없다. 내가 노력하는 만큼 그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난 간암 생존자로 오늘 하루도 살아가고 있다.
비록 40대 초반의 나이에 겪지 않아도 되는 큰 일을 경험했지만 이 고비가 내 끝과 한계가 아님을 안다. 물론 이 일로 내 삶의 많은 것들이 흔들리고 어렵게 되기도 했지만 앞으로 더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내 한계를 넘어 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