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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노트 Sep 24. 2023

다시 꿈, 중년의 장래 희망


초등학교 시절 학년마다 선생님께 '나의 장래희망'을 적어 내곤 했었는데요,

여러분은 어떤 직업을 적으셨나요?


그때는 장래희망 = 직업이라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두 가지가 같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밥벌이로 하는 업과 희망이 다르다면 조금 힘들긴 해도, 희망도 없이 그저 '직업'에만 매달려 사는 삶보다는 낫겠지요?




작년 둘째 아이 초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했을 때 일입니다. 막 코로나가 잠잠해졌을 때라, 마스크를 끼고 많은 사람들이 강당에 모였지요. 정말 몇 년 만이 하는 행사라 아이들도 부모들도 많이 설렜어요. 5학년들이 먼저 입장하고, 6학년 졸업생들은 후배들과 학부모의 환호를 받으며 강당으로 들어왔습니다. 


마치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입국하는 선수처럼, 장난스럽게 두 팔을 올려 환호에 응하는 개구쟁이들과 벌써부터 눈시울이 붉어져 고개를 떨구어 걸어오는 아이들이 있었지요. 졸업식 날 아침부터 이미 울 준비가 되었던 저는 그런 아이들을 보자마자 바로 눈물샘이 터져 혼자 닦아내느라 힘들었어요. 


엊그제 이 자리에서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을 했는데, 벌써 졸업이라니요. 아이들은 6년이라는 세월의 추억과 아쉬움, 중학생이 되는 불안감이 느껴졌을 테고, 저는 중학교부터 시작될 학업의 고됨과 훨씬 빠를 시간이 두려웠습니다.  졸업식이 시작되자, 교장 선생님은 1반부터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무대 위로 올리고는 졸업장과 짧은 포옹으로 인사했는데요, 그때 무대 화면에는 그 학생의 익살스러운 사진과 장래희망이 적혀 있었습니다. 


남자아이들은 주로 운동선수, 프로게이머가 많았고, 여학생들은 아이돌 가수와 선생님, 공통적으로는 크리에이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익살스럽게 무대에 오르던 남자아이 뒤로 장래희망이 '대기업 사원'이라는 걸 보고, 아이들이 벌써 저렇게까지 생각하는구나 하고 놀랐는데, 바로 연이어 올라온 여학생의 꿈이 '대기업 임원'이라는 글을 보고 모두 박장대소했습니다. 아마 미래에 그 남학생은 저 여학생 밑에서 일하겠구나 하며 농담처럼 말하고 웃었는데요, '대기업'이라는 단어에서 아이들까지 그것이 무얼 말하는지 안다는 게 마음이 씁쓸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들의 장래희망을 보고 있자니, 우리 어릴 적 고전적인 직업들도 꽤 나왔습니다. '사'로 끝나는 직업들이요. 








저는 초등 3학년 때인가, 나의 장래희망을 적어서 부모님께 사인을 받고 오는 숙제가 있었는데요,  어린 저는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가 아닌, '어떤 직업이 가장 좋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본 드라마에서 '대학교수'라는 직업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고 좋아 보이길래 그렇게 적었고, 아버지의 흐뭇했던 표정도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저는 사실 딱히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이 없었던 것 같아 그 점이 제일 아쉬운데요, 비록 이루지 못했더라도 그걸 이루기 위해 한번은 힘껏 노력해 봤을 경험이 없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지요. 청년층까지는 '장래', '희망'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40대 정도부터는 더 이상 이런 말을 쓰지 않는 것 같아요. 이미 이룬 사람들도 있거니와 이제는 늦었다는 무언의 신념 같은 것이 깔려있으니까요.


생각해 보면 저는 젊은 시절, 그럴싸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찾았던 것 같아요. 딱히 하고 싶었던 일도 없던 터라 모든 판단의 기준이 그것이 되었던 겁니다. 그렇게 남들처럼 밥벌이에 안정된 고만고만한 '업'을 찾아 나름 열심히 살아오다가 '코로나'를 계기로 저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지요. 이렇게 나이 드나 보다 하며 뭔가 허무함이 몰려왔을 때, 저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함께 책도 읽고 트렌드도 공부하는 신세계를 만났습니다. 



코로나로 세상이 멈춘 듯했지만, 이 시간을 기회로 누군가는 세상을 바꾸고 있었습니다. 함께 읽고 공부하면 할수록, 배울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넘쳐났어요.


'이런 일도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 이런 분야 자격증을 한번 따 볼까?'


 눈 감고 살던 세상에 다시 눈 비비고 보니, 온갖 진귀한 것들이 펼쳐져 그저 내가 마음만 내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어있었어요. 이것저것 배워가며 작년 한 해가 어찌 흘러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쓰기를 만나게 되었고, 딱히 기술을 요하거나 시간의 구애가 없어 좋았지만, 정작 쓰면서 나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렇게 쓰기를 하면서 나에게도 '꿈'이 아닌 '장래희망'이 생겼어요. 인생시계가 이제 막 정오를 넘겼다니 이 단어를 써도 되지 않을까요? ^^


내가 원하는 시간에 편안하게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학인들과 감격스러운 순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풍요롭고 여유로운 삶! 새로운 꿈을 꾸는 오늘 지금,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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