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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됨됨이kmj Sep 04. 2023

(후) 주부 파업 4일 차입니다.

파업은 종결! 부부싸움은 일.단.락.

4일 차 아침에 종결하려 했던, 의도치 않았던 가사 파업은 5일 차 아침 종결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진공청소였다.

정확히는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이 진공청소였다.

마음의 평화가 발바닥에 있을 줄이야...

이곳이 모래사장도 아닌데, 며칠째 발바닥에 모래알 같은 것들이 밟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말에는 의도, 즉 목적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엄마, 나 배불러요. 밥 먹고 왔어."

나이 드신 엄마의 뒷모습, 분주한 움직임, 셔츠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다.

'앉아계세요, 엄마가 지금도 날 위해 굽은 등으로 밥을 하시는 모습이 마음 아파요. 그래서 밥 먹고 온 거예요. 이제 앉아서 얼굴 보고 얘기해요... 사랑해요.'

나에게 '내가 밥을 먹고 왔다'는 말은, 당신을 움직이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이다. 당신이 조금 더 나를 바라봐주고 나도 당신을 바라보고 싶다는 의미이다.




"너는! 이 집안에서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나는 그 말을 듣고, 'why?'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가 이런 말을... for what?

팩트로 받아들였다면, 나 자신이 쪼그라들고 못나졌을 것이다.

팩트는 '그의 말'이 아닌, '4일간의 파업 체험'이 직접 판가름해 줬기에, 지금은 집안일에 관해서는 이전보다 더 개념적으로 심적으로 정리가 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밀려 나오는 집안일과 잡다한 일들을 퇴근도 없이 매일 해오고 있던 것이다.

이것이 팩트다.


집을 미려하게 꾸미고, 살림을 속속들이 잘하는  아니기에... 나지 않고, 누군가의 눈에는 성에 차지 않을 수 있 것이다. 하지만 basic , 집안을 돌아가게 하는 최소한의 일, '내가 그 이상은 해왔구나...'라고 깨달았고, 말을 내뱉은 그와 나 사이의 공기가 조금은 달라져 있었다.

사람을 바꿀 수는 없어도, 상황이나 그것의 전개는 바꿀 수 있기에.




남편은 4일 차 저녁, 퇴근 후 한참을 서성거리다 주방수건조차 손에 쥐지 못 한 채로,

 "수건이라도... 좀... 화해하자. 다른 건 안 바랄게. 기본만 해라."라고 선의라도 베푸는 듯이 말했다.

나는 '화해하자'라는 말은 이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못 들은 로 하겠다고 했다. 는 그를 바라보지 않았고, 조용하지만 정확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수건은 '기본'이라 내일아침부터 원래대로 욕실선반에 있을 거야. 속옷이나 양말도 원래대로 둘께.

밥솥에 밥 있을 거고, 반찬도 냉장고에 둘께. 혹시 반찬이 부족하거나 다른 거 먹고 싶은 날은 시켜 먹어, 나도 그럴게."

나는 감정을 섞지 않고 '기본'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밥을 따로 먹자는 얘기야?!"

신랑이 화를 섞어 내뱉었다.

나는 그제서야 그의 눈을 응시하며,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얘기했다.

"한 상에, 함께 밥을 먹고 싶은 사람한테... 그런 말들을 했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지. 나를 무시하고 당신 발밑에 두고 싶은 거 아니었어? 한두 번도 아니고, 요 두세 달간 수차례 같은 비난을 몇 시간씩 들었어. 나 암기 잘하는 거 알지? 원하면 당신 입에서 나왔던 말들, 다시 읊어줄 수도 있고. 그리고 내가 기본이상은 해왔네... 그렇지?"

욕실장에 다 들어가지 않아, 여분의 수건을 개어놓은 서랍장 쪽으로 발길을 돌리자, 그가 역정을 내며 따라왔다.

조용히 수건을 꺼내 뒤돌아 건넸다.

"여분의 타월들을 두는 서랍칸이야. 이제 기억해 둬. 그러고 보니 매일 입히는 아기 내복, 외출복도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본인이 육아를 한다며 나한테 짜증을 냈어.

당신 입이니, 내가 막을 수는 없어. 하지만 계속 한상에서 웃으며 밥 먹고 싶으면, 이렇게 굴면 안 되는 것 같아."

남편은 이 끝말잇기를 더 거세게 하고 싶은 듯했지만, 며칠 만에 받아 든 두툼한 샤워타월을 들고 욕실로 향했다.




나는 이 글을 쓰며 아주 작게 '와' 그리고  '우와'라고 소리 내보았다.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 가라앉기도 하고, 폐인지 마음인지 모를 어딘가에서 후욱하고, 힘든 기운이  몸 밖으로 빠져나오기도 했다.

외부로부터 입력된 감정, 혹은 감동이 너무 커서, 머리와 마음 둘 중 하나가 과부하되지 않기 위해 내뱉는 것... 그것이 혼자 하는 감탄, 탄식이 아닐까 싶었다.

이렇듯, 홀로 내뱉는 감탄사조차도 목적을 가지고 있다.

홀로 뱉어낸 기운은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일까...




그의 말이 불씨가 되어 날아들었지만, 나를 시커멓게 태우지 못했.

오히려 이번 기회에 미려하게 좀 꾸며볼까? 하는 색다른 계획도 생겼다.

나는 언제부턴가 시커먼 잿가루 섞인 불씨를 사뿐히 받아, 필요한 곳의 동력에 보태어 쓰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덕분에 내가 하는 집안일을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여  볼 수 있었고, 새로운 계획도 생겼으니, 그에게 고맙지만... 슬프게 고맙다...


내 인생 첫 가사 파업은 이것으로 종결이다.

한 번의 경험과 깨달음, 그것으로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도 그도 서로 다르기에... 부부싸움은 일단락이다.

어제는 일요일이었다.

우리는 외출하여 함께 육아를 했고, 키즈카페에서 번갈아가며 아기를 보았다.

남편은 어느새 웃으며 다가와, 아기가 새 친구를 사귀는 영상을 찍었다며 나에게 보여주었다.

영원히 이 사람의 심해까지 도달할 수 없을뿐더러, 그 역시 나의 심해에 도달할 수 없을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아기가 다른 아이들과 노는 모습을 찍어 아무렇지 않게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을 해나갈 것이다.


브런치를 시작할 때, '10년을 집에만 있다가 세상밖으로 나왔다'라고 나를 소개했다.

나는 시간 동안, 잿가루가 가득 섞인 불덩이에 데가며 대장장이가 되었다.

영민하지 못했던 나는 이곳저곳 상처가 많이 났었다.

남들보다 깨닫는 것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렇게 상처 가득한 연금술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 불이 따뜻했던 적이 있었음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든 내가 떠날 수 있음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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