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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됨됨이kmj Jul 23. 2023

여름 육아의 맛

아아와 팥빙수가 맛있는 계절

맞은편에서 유모차 한 대가 주행하여 온다.

쉬이 밀며 오는 듯 보이지만, 엄마들은 알 것이다. 유모차의 무게와 아기의 무게만큼을 지탱할 힘이 없으면 자칫 작은 돌 하나에도 유모차가 기울 수 있다는 것을. 이 더운 여름, 어깨와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 아기엄마는 양산도 모자도 쓰지 않고, 볕에 뜨거워지고 땀에 절여져 보기에도 안쓰러운 얼굴로 조심스레 유모차를 밀고 온다. 유모차를 꽉 잡고, 어깨춤으로 턱끝의 땀을 닦는 그녀와 점점 가까워진다.

아기를 볕으로부터 지키려는 엄마의 마음처럼 유모차의 차양막이 단단히 펼쳐져 아기의 얼굴은 보일 듯 말듯하다. 작은 선풍기가 앙증맞게 달려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발바닥이 눈에 들어온다. 고양이의 발바닥 보다 더욱 사랑스럽고 장인의 카스테라 빵보다 더 부드러운 오동통한 발이 살짝 움직인다.




코로나가 한국을 뒤흔들기 몇달 전, 나는 집에서 첫여름을 맞이하고 있었다. 갓난아기를 데리고 겨울에 이사를 했던 터라 집 주변을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었고, 몇 달을 집과 접종을 위한 외출로만 보냈었다. 그랬기에 봄이 오자마자, 나는 아기띠를 메거나 유모차를 밀며 동네 구석구석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지도를 그려나가 듯, 집 주변의 골목골목과 새로운 길들을 걷는 것은 작은 해소구였다.


나 역시 여느 엄마들처럼 뜨거운 여름, 유모차를 밀며 찡그린 얼굴로 천천히 걷곤 했다.

계절이 바뀌며 쿨시트를 준비하고, 아기의 준비물은 늘 체크하면서도 제 모자 하나 챙길 정신은 없어 땀에 흠뻑 젖어 돌아왔고, 그렇게 초보엄마 티를 냈었다. 이후 썬크림을 바르고 모자를 챙길 여유가 하나씩 생기며, 내게도 폰을 꽂을 자리가 생겼고, 부속품인 컵홀더를 장착하며 조금이나마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아기는 유모차를 태우면 늘 눈이 동그래져 구경하기에 바빠 보였다. 그것으로 이미, 나에게 산책의 의미는 충분했다.

멀리까지 걷지는 못했다. 여름은 너무 더웠고, 유모차 속의 작은 아기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둘만 행복하자며 7년을 살았다.

사랑을 할 때는 나와 그 사람만 보였는데, 결혼을 하고 7년째 되던 해,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얼굴이 배경처럼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보는 그 사람의 눈빛이 변한 것 같았다. 그는 어땠을까? 잦은 다툼이 있었지만, 남편은 늘 다툼의 끝에 사랑한다고 얘기했다. 우리 부부는 그 해, 대화와 고심 끝에 새 가족을 맞을 준비를 했다. 그리고 8년째 둘 사이에 태어난 아기는, 둘만 살자고 말했던 우리를 바보로 만들 만큼 사랑스러웠다.

그래서일까? 고작 동네를 산책하는 것뿐인데도 몇 미터마다 멈춰 서서 허리를 숙여 유모차 안을 확인했다. 혹여나 흔들림이 심할까, 눈에 담던 것이 너무 빨리 지나쳐 버릴까 더욱 천천히 걸었다. 첫아기는 어느 부모에게나 초보육아러라는 타이틀과 함께 긴장감을 안겨주는 법이기에 무더운 여름, 초보엄마인 나는 저속주행과 정차를 해가며 차양막 속 아기를 수십 번 들여다 보았던 것 같다.

너무 사랑스럽다는 것만 빼면 쉬운 것도 좋을 것도 없었다는 얘기다.




그래도 이제 집밖으로 자주 나올 수 있었고, 걷다가 만난 작고 예쁜 카에서 음료 한잔을 마실 만큼의 시간도 생겼다. 창밖을 내다보며 커피를 음미하고, 평온하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문을 열면 쏟아지던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진한 커피 향은 땀범벅이 된 나에게 줄 수 있는 위로였고 힐링이었다.

인터넷에서 사이즈만 보고 구매한 88-99 사이즈의 원피스를 포대자루마냥 뒤집어쓰고, 문턱이 있는 곳은 유모차를 들어 올려가며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땀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런 내 모습이 사람들 사이에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던 걸까? 늘 누군가 땀을 닦을 수건을 불쑥 내밀었고, 혼자 할 수 있음에도 유모차를 함께 들어 올려 주셨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다급히 물을 챙겨 주시던 사장님의 모습도 재밌고 감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건너편에서 걸어오는 아기엄마를 보니, 그때 그분들이 왜 먼저 다가와 도움을 주셨는지 이제는 이해가 갔다.

부모가 되어 보던 분들, 아기를 키우고 계셨던 분들은 망설임 없이 도와주셨던 것이었다. 그분들도 겪어 보았기에 알고 계셨던 거다.

   

그렇게 아기와 산책을 하던 어느 날, 사계절 '팥'메뉴로만 운영한다는 가게를 발견했다. 좁았지만 깔끔했고, 사람들이 꽉 차있었다. 빙수를 한입 떠먹는 순간 미소가 절로 나왔다. 작렬하는 태양을 머리에 이고, 신발 밑바닥을 뚫고 올라오던 뜨거움을 참으며 걷다가 발견한 가게가 맛집이었다니... 작은 그릇에 덜어낸 팥빙수를 맛보여 주자, 아기는 대답 대신 응아 때마다 단련한 복근과 다리의 반동을 이용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떠먹이고 닦이느라 편하지만은 안았지만, 함께 먹으며 기분 좋은 데이트를 했다. 팥을 좋아하는 남편이 생각났다. 핸드폰을 열어 톡을 보내고, 빙수 하나를 포장해 나왔다.




지금은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팥빙수 하나 정도는 천천히 먹을 여유가 생겼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창가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볼 수도 있다.

그때의 기억 탓인지, 아메리카노에 케이크까지 한조각 주문하고 앉아 있노라면 세상의 사치는 다 부린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짜증 나고 덥기만 계절 속에서...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땀이 미소로 바뀌는 순간이 언제인지 궁금해진다.


운동 중에 마시는 한 모금의 물, 온종일 구부려 앉아 있던 당신이 펜도, 컴퓨터의 모니터도, 생각마저도 다 내려놓고 펴는 잠깐의 기지개... 아주 사소해서 지나쳐 버렸던 것들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순간, 여름의 맛은 짙어지고 더욱 시원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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