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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 Aug 07. 2023

내가 무례한 사람인지 아닌지 아는 방법

당신도 무례한 사람일 수 있다

 2017년 여름은 꿈 같은 시간이었다. 퇴사 후 절친과 함께 한 달간 유럽 여행을 했던 그 시간은 찬란한 기억으로 가득했다. 그해 여름의 열기는 밤에 되어서도 식을 줄 몰랐다.


 우리의 여정은 영국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프랑스를 거쳐 스위스로 넘어왔고, 마지막 여정인 이탈리아까지 왔다. 오랜 시간 계속되는 여행에도 우리는 지치지 않았다. 특히나 로마에서는 롯데월드에 있는 트레비분수가 아닌 진짜 트레비분수를 볼 생각에 둘 다 흥분 상태였다. 드디어 트레비분수 앞에 도착했다. 낮에 방문한 트레비분수는 인파로 북적였다. 기대와 달리 수많은 사람에 가려서 온전한 분수의 모습을 눈에 담지 못했다. 낮의 트레비분수는 우리에게 큰 아쉬움을 남겼다. 그리고 같은 날 밤, 아쉬움을 떨치지 못하고 여자 둘이서 겁도 없이 다시 분수를 찾았다.


 겁 없는 밤을 만끽하던 중, 우리 또래로 보이는 두 명의 한국인 남자와 말을 섞게 되었다. 한 명은 마른 체격에 차분했고, 한 명은 살집이 있으면서 활발했다. 대화는 야시장이 열리는 거리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긴 거리를 같이 걷다가 노상에 앉아 알코올을 취하며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남자 둘 중 한 명이 신부님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학생을 본 건 처음이라 궁금증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에게 천진하게 물었다.


 “와, 앞으로 여자를 못 만날 텐데 괜찮으세요?”


 함께 간 친구가 옆에서 나를 탁! 쳤다. 그런 질문은 하는 게 아니라고 덧붙이며. 나의 순수한 궁금증이 무례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무례했다. 나는 다시 머릿속에서 적절한 단어를 고르려 했다.


 “여자친구는 있으셨어요?”


 망했다. 말이라는 놈이 말문을 열어주기도 전에 입에서 튀어나왔다. 무의식적으로 친구 쪽을 쳐다봤다. 이번엔 친구가 표정으로 나를 때렸다. 마치 쓰레기를 보는 듯했다. 다행히 마음이 너그러웠던 신학생은 그럴 수 있다는 듯 웃고 넘어가 줬다.


 “뭐, 예전에 좋아하는 사람은 있었고, 앞으로 힘들 수도 있는데요, 이 길을 가기로 했으니 잘 견뎌봐야죠.”


 무례한 질문에 대한 현명하고 너그러운 대답이었다. 그때는 무례한 줄도 모르고 미처 사과하지 못했는데, 혹시라도 나의 글을 본다면 당신의 사적인 삶을 함부로 궁금해한 것에 대해 미안했다고 전하고 싶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현재, 나의 무례함은 로마에서 끝나지 않았다. 로마가 무슨 말인가, 6년이라는 세월 동안 무례했던 순간이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깨달은 무례함은 직장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코로나가 한창 창궐하던 시기에 직장에서는 재택을 권장했다. 미팅도 특별한 일이 아니면 모두 화상으로 진행했다. 내가 무례했던 바로 그날도 화상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그 미팅은 내가 주최하는 미팅이었고, 참여자는 나까지 총 8명이었다.


 미팅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마지막 한 명이 화상 미팅에 접속하지 않았다. 보통 정시에 미팅을 시작해야 하는데 그녀는 5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보냈고, 그제야 그녀는 미팅에 참여했다.


 화상 미팅 창에서 그녀의 부스스한 머리와 살짝 부은 듯한 눈이 시선에 가닿았다. 나는 그녀와 친했다고 생각했던 지라 가라앉은 분위기를 풀 겸 농담을 던졌다.


 “머리를 보니, 이제 일어나셨나 봐요? (웃음)”


 그때, 옆에 있던 동료가 내게 바로 일침을 날렸다.


 “다 있는 곳에서 그렇게 말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갑자기 머쓱했다. 농담은 모두가 유쾌하게 웃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내 농담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공중분해 되었다.


 당시엔 무안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동료의 지적이 감사했다. 동료가 내게 그런 행동은 무례한 행동이라고 지적해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무례한 줄도 모르고 똑같은 행동이나 비슷한 행동을 계속했을 것이다.


 우리는 가끔 무례할 때가 있다. 그리고 누군가 무례한 행동을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무례하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무례함을 알리는 것은 상대에게 자기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돕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원래부터 타고난 무례함을 장착하고 다니는 사람이야 쉽게 바뀌지 않겠지만, 나처럼 평소엔 멀쩡하다가 한 번씩 생뚱맞게 무례한 사람에게는 따끔한 지적이 필요하다.


 몇 번의 지적으로 나는 무례함이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무례함이란 타인의 외모나 상황에 대해 내 관점에서 함부로 상상하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행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무례함 전체에 대한 정의를 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세상엔 이런 종류의 무례함 말고도 다양한 무례함이 있을 것이다.)


 한번은 이전 회사에서 팀장님과 함께 외부 미팅을 나갔던 적이 있다. 팀장님은 나보다 4살이 많았지만, 단발머리에 아담하고 귀여운 스타일이었다. 반면에 나는 긴 머리에 키도 크고 정장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미팅에서 만난 남자가 나를 보자마자 “팀장님이시죠?”하고 물었다.


 순간, 나와 팀장님 모두 기분 나빠했다. 나는 나를 팀장으로 봐서 기분 나빴고(대충 더 나이 들어 보인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팀장님은 본인을 팀원으로 봐서 기분 나빠했다.(대충 팀장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었다. 이후 내가 팀장님을 가리키며 내가 아니라, 이분이 팀장님이라고 이야기하자, 그는 팀장님을 보며 “와, 동안이네!”라고 했다. 나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말에 꼬리를 물었다.


 “저희 팀장님 나이도 모르면서 어떻게 동안이라고 하시죠?”


 그가 대답했다.


 “팀장 할 정도면 대충 나이 나오죠~”


 왜 자꾸 혼자 생각하고, 혼자 평가하는 건지? 그는 끝까지 우리를 편견의 시각으로 보았다. 당시 팀장님은 능력 있는 젊은 팀장이었다. 나는 외모만 보고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이야기한들 내가 얻을 것이 뭘까 싶어서 그만두었다. 어차피 한번 보고 말 사이인 것을.


 우리는 일상에서 무례한 순간을 종종 마주하곤 한다. 한번 보고 말 사이면 그저 흘려듣고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계속 봐야 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이 어려워질 때가 있다. 특히 그가 직장 상사거나, 가족 중에서도 나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 타격이 크다.


 내가 경험한 무례한 순간은 대체로 내 외모나 행동에 훈수를 두거나, 지나치게 사사로운 정보에 대해 알려고 할 때가 그랬다. 예를 들어 아무렇지 않게 “살쪘어? 관리 좀 해야겠다”라고 한다든지, “여자가 그게 뭐니?”라고 한다든지, “머리 크다”라고 한다든지, “니 아빠는 돈 많이 버냐?”라고 물어본다든지 하는 것들이.


 무례함이 나를 공격해 올 때 예전엔 어떻게 반응할지 몰랐다. 대부분 멋쩍게 웃고 있었다. 웃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알게 된 것은 30대로 넘어간 이후였다.


 요즘 나는 무례함의 경중에 따라 상대가 무례하다는 것을 알린다. 어떤 의도로 말하는 건지 묻기도 하고, 무례하다고 직접 이야기하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대라면 요즘 시대와 맞지 않는 태도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말한다. “요즘 그런 말 하면 욕먹어요-”


 내가 무례한 사람인지 아닌지 아는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옆에서 누군가 말해줘야만 안다. 그러니 누군가의 무례함을 목격하게 된다면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상대방의 무례함을 알리고, 동시에 나 또한 무례하지 않은지 돌아보는 과정이 쌓이게 된다면 우리는 조금 더 정중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사진: UnsplashDan G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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