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대한 의존성이 높다는 말과 같다
짙은 커피 향으로 주변에 존재감을 내뿜는 샤로수길의 작은 카페, 옆 테이블에서 젊은 남녀 6명이 무리 지어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참을 웃고 떠드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무리 중 한 명이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이윽고 흥분한 채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차라리 뒷담화를 하든지. 사내 게시판에 보란 듯이 내가 부정하다는 글을 올리고, ‘걔만 오늘 재택하던데?’, ‘오늘은 웃으면서 출근하더라’라는 댓글까지 달면서 계속 사람을 괴롭히는 이유가 뭘까. 일일이 다 해명하고 다닐 수도 없고. 내가 공인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닌데 왜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해? 할 일이 그렇게들 없나? 왜 이렇게까지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건지 도대체 이해가 안 돼.”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전사 직원이 다 보는 사내 게시판에 본인에 대해 좋지 않은 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듯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녀에게서 내 모습이 어른거렸다. 나 또한 비난받거나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면 마음속에서 폭풍우가 휘몰아칠 때가 종종 있었다.
나는 소위 목사 딸이다. 목사 딸로 살면서 가장 많이 받는 평가는 “쟤가 목사 딸이래”라는 사실 직시적 평가다. 사람들은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때로는 사실을 듣는 것만으로 상처가 될 때가 있다. 사실 직시의 이면에는 은연중에 어떠한 평가나 판단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뒤이어서 하지 못한 말은 ‘그런데 왜 저런대?’ 혹은 ‘예상과 다르네?’가 아닐까, 하고 혼자 추론하며 괴로워했다. 무심코 던져진 팩트는 내 추론의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게다가 강단에서 내 이야기라도 나오는 날이면, 대중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다는 사실에 한없이 움츠러들었다. 쏟아지는 시선에 나 자신이 대상화되면서 소외감을 느꼈다. 나는 그곳에 있지만, 그곳에 없었다. 나는 그들과 매우 가까웠지만, 그들과 아주 멀리 있었다. 안다는 것은 하나의 권력이었다. 나는 그들에 대해 모르는데, 그들은 나에 대해 안다는 사실이 권력이 되어 기탄없이 내게 일방적인 대화를 시도하고, 동의도 없이 나를 만졌다.
심한 경우에 친하지도 않은 어른이 내게 와 “언제 이렇게 젖이 나왔지?”라며 함부로 가슴을 주무르기도 했다. 고통과 수모, 분노, 굴욕감이 뒤엉켜 밀려 들어왔다. 상황은 늘 불공평했다. 그러나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만히 있는 것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혹여나 ‘목사님 딸 까칠하던데?’라는 말이 나올까봐, 아빠의 목회에 걸림돌이 될까봐.
이후에도 사람들이 나에 대해 멋대로 틀을 만들어 놓고 기대감을 갖는 것이 나는 거북했다. 출구 없는 쇠창살 안에 갇혀있는 것 같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인생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구경꾼들을 싹 다 모아서 반대로 철장 안에 가두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주말마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노출된 환경에 있다 보니 나는 유독 평가에 민감한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나에 대해 평가하려 들거나, 내 삶을 통제하려 들면 견디지 못했다. 그러나 벗어나려 할수록 더 강력하고 끈끈한 거미줄 속으로 빨려 들어갈 뿐이었다.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민감하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의존성이 높다는 말과 같았다. 타인에 대한 의존성이 높으니, 좋은 평가든 나쁜 평가든 타인의 평가 자체에 큰 의미를 두었다. 그래서 비난받았을 때는 좌절감이 크고, 칭찬받았을 때는 더 많이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크게 작용했다. 내 마음의 날씨는 타인의 평가로 오락가락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방송에서 이효리가 동료 연예인에게 일침을 놓는 걸 보았다. 동료 연예인은 “효리야, 너 오늘 방송 괜찮았어”라고 말했고, 이효리는 “너나 잘해. 어디서 평가질이야”라고 맞받아쳤다. 본인에 대한 일말의 평가도 받아들이지 않고 내쳐버리겠다는 그녀의 태도에서 알 수 없는 통쾌함을 느꼈다.
생각해 보니 내 지인 중에서도 본인에 대한 평가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유명한 지인이 한 명 있다. 지인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비난하거나 오해해도 그냥 둔다고 했다. 본인의 실체를 알아버리면 오히려 도망갈 것이라고. 나는 그보다 더 나쁜 놈이니 오해해도 그만이고, 차라리 오해하는 편이 낫다고. 지인이 비난받아도 흔들리지 않는 비결은 애초에 본인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확실한 자기 인식에 있었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늘 평가를 받으며 산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연인이나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리고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크고 작은 평가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타인의 평가가 정말로 중요할까? 그렇지 않다. 타인의 평가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잠깐의 생각일 뿐이다. 내게 불어오는 바람에 감정이 잠깐 물결칠 수는 있어도, 파도로 키울 필요는 없다.
타인에게 말할 권리가 있다면, 내겐 반응할 권리가 있다. 우리는 우리를 향한 평가에 대해 어떤 반응을 할지 스스로 정할 수 있다. 이효리처럼 ‘너나 잘해’라고 받아 칠 수도 있고, 내 지인처럼 ‘그렇게 생각하든지 말든지’라며 무시해 버릴 수도 있고,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라고 흘려들을 수도 있다.
타인에 대한 의존성을 깨고 주체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하면, 누가 뭐라든 내겐 큰 타격이 없게 된다. 마음의 날씨도 스스로 정할 수 있다. 그러니 나의 권리를 무력하게 타인에게 넘겨 주지 말자. 내 인생은 내 것. 내 마음도 내 것. 이것은 양도할 수 없이 오롯이 존재하는 나의 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