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지만 믿는 것이 있을까?
공기, 에너지 흐름, 시간, 원자나 분자는 존재하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종교에서 신도 대부분 사람은 눈으로 본 적이 없다.
우선 신이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있다고 전제한다면 신은 보기 어렵다.
마음도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존재한다.
사랑, 미움, 믿음, 실망, 고마움, 원망, 두려움 등 감정도 보이지 않는다.
생각도 존재하지만 볼 수 없다.
이렇게 조사해 보니 의외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보기 어려운 것이 많다.
심리상담 효과도 비슷한 것 같다.
효과는 있는데 약을 먹어서 어디가 어떻게 나아졌다고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특정 상담에서는 명확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행동 변화를 목표로 하는 경우다.
하지만 상담에서 효과는 대부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상담 효과에 대한 여러 논문이 있으니 참고하면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내 주관적 입장을 전제로 상담 효과를 말해보고 싶다.
상담이 효과가 있는가는 직업 심리상담사로서 중요하다.
상담사가 상담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상담을 진행하기는 어렵다.
효과가 없다고 확신하면서 상담한다면 사기꾼 같다.
상담사는 상담 효과를 먼저 경험해야 하는데 개인분석을 통해 가능하다.
이론 숙달은 기본이고 상담 실제에서 효과를 느껴봐야 한다.
상담 효과는 다양하게 드러나지만 눈으로 바로 확인하기 어려운 이유는 상담은 전반적 개선을 일으키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담을 받는, 받은 사람은 도움이 되었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상담자, 상담에 따라 다르다.
종결 상담에서 상담 성과를 내담자와 함께 살펴본다.
상담 후 어떻게 되기를 원하는가 하는 질문은 상담 목표와 관련된 질문이다.
상담 초기에 설정하는데 상담자는 내담자가 원하는 바를 잘 기억해야 한다.
내담자가 원하는 바는 되도록 구체화한다.
예를 들면 내담자가 “불안과 우울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라고 한다면 상담자는 이를 구체화한다.
구체화한다는 것은 측정이나 확인 가능한 것을 말한다.
우선 내담자가 말하는 불안과 우울은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고 어떤 기분을 말하는지 탐색한다.
“사라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질문한다.
불안과 우울이 낮아지는 것을 말하는지 삭제되는 것을 의미하는지 묻는다.
낮아지는 것보다 삭제된다는 것은 불안과 우울이 전혀 없는 상태를 뜻하는데 참고로 불안과 우울이 아예 없는 인간은 없다.
그럼에도 불안과 우울이 전혀 없는 상태, 즉 인간계에서는 불가능한 상태임에도 내담자가 원하게 된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하게 원할수록 상처, 고통이 깊다.
조금이라도 허용할 수 없는, 하기 싫은 상태다.
상담을 통해 내담자가 원하는 상태를 탐색하듯 이야기하는 과정은 그 자체가 치료적이다.
내담자에게 불안과 우울은 참 익숙한 정서라서 오히려 구체적으로, 자세히 생각해 본 경험이 적다.
등잔 밑이 어두운 것처럼 불안과 우울에 빠져 있기 때문에 볼 수 없다.
내담자는 상담자와 자신에게 익숙하지만 해결하지 못했던 주제를 이야기하면서 새롭게 자신의 바람을 본다.
그 후 자신이 원하는 상태가 상담 후 이뤄졌다고 가정한다.
상담은 막 시작했지만 중간을 건너뛰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조건 이뤄졌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모든 상담을 끝내고 생활하다가 문득 일상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나서 깨닫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뤄졌음을.
어떤 경험을 할 때 소망이 이뤄졌다는 것을 알 것 같은지 상담사가 질문한다.
내담자 상상을 상담자는 기억하거나 기록하고 상담을 진행한다.
종결 상담에서 상담자는 초기 상담에서 내담자가 언급한, 상상한 “어떤 경험”을 다시 꺼내어 얼마나 이뤄진 것 같은지 논의한다.
내담자가 원했던 만큼을 일상에서 누린다면 좋겠지만 목적은 달성에 있지만은 않다.
내담자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불안과 우울이 일상과 연결되어 있고 불안과 우울이 알게 모르게 퍼져 있는 독가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막연한 두려움이 더 고통스럽다.
두 눈을 부릅뜨고 두려움을 응시하는 것은 상담 효과를 드러나게 한다.
상담 효과를 확인하려면 내담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구체화가 되어야 가능하다.
상담자는 마법봉, 요술봉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다.
과학자처럼 남김없이, 치우침 없이 조사하고 모든 가능성을 고려한다.
무조건 좋다, 잘했다, 괜찮다고 하지 않고 무조건 나쁘다, 못 했다고 하지 않는다.
내담자가 너무 좋아하면 상담자는 반대 관점을 제시하고 내담자가 너무 좌절하면 상담자는 다른 측면으로 좌절을 바라본다.
심리상담을 받으면 현실이 새로운 퍼즐처럼 맞춰지지 않는다.
세상은, 일상은 여전히 그대로다.
하지만 다르게 느껴진다.
불안과 우울이 엷어진다.
막연한 두려움의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심리상담을 받는 사람들은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달라진 것은 없는데 달라진 것 같다.”
“상담에서 들은 이야기는 몰랐던 이야기인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여전히 두렵지만 괜찮을 것 같다.”
심리상담은 중간고사, 기말고사처럼 정답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다.
바람직한 답도 없다.
무엇이든 답이 될 수도 있고 답이 되지 못하기도 한다.
답이 없다.
외도, 실패, 좌절, 부도, 퇴사, 입사, 결혼, 싸움, 이혼, 단절, 소외, 갈등, 압력, 차별 등 여러 주제로 상담센터를 방문한다.
고통스럽기 때문에 정답을 찾아 개운하게 바로 해결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좋고 나쁜 모든 것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오랫동안 연결되어 있다.
마치 종양처럼 떼어낼 수 없다.
어제까지 사랑했던 사이였는데 오늘 갑작스럽게 외도가 생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외도만 없으면 행복할 것처럼 말한다.
그게 사실인가?
외도는 고통의 증상이다.
어쩌면 심리상담 효과는 건강보조제처럼 애매할 수도 있다.
또는 밥 힘과 비슷하다.
약은 아니지만 꺼져가는 에너지나 불타오르는 에너지를 적절하게 맞출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심리상담은 상담자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내담자와 함께 합주하는 것 같다.
심리상담을 받으려고 하지만 효과가 걱정되는 사람이 있다면 우선 상담센터에 가서 그 걱정을 말해보는 것을 권한다.
상담자는 내담자 편에서 내담자를 위해 함께 연주할 준비가 되어 있다.
연주 후 평가는 그 어떤 것이라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