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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선 출근기

청진기로 듣는 소소한 이야기 #19

by 따뜻한 손 Jul 0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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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씩이나 미루어지던 서해선이 드디어 개통했다.

지난달부터 전철로 출퇴근을 하리라 마음먹은 나는 며칠 전부터 구체적인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먼저 출퇴근하면서 신을 트래킹화를 꺼내 놓고, 병원에서 신을 신발은 미리 병원에 가져다 놓았다. 뭐 거창하게 트래킹화까지 꺼내나 싶지만, 걷는 기쁨을 배가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트래킹화만 한 게 없다. 출퇴근 시에는 티셔츠를 입고, 병원에서는 와이셔츠를 입어야 했기에 그것도 따로 챙겼다.  


사뿐사뿐 기분 좋은 쿠션감을 느끼며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다 보니 상쾌한 아침 풀숲 냄새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아침나절이라 그런지 풀숲 사이로 제법 선선한 바람도 불어왔다.


'우리 집 앞에 풀이 많았구나' (친환경 주거환경이라 요새 극성인 'love-bug'도 많다는 게 함정 ㅠㅠ)


전철역으로 향하는 출근 발걸음을 재촉하느라 지나칠 뻔했으나, 잠시 멈추어 길가의 연보라색 나팔꽃하고도 눈 마주치며 '안녕'하고 인사도 했다.


순간 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잘 다녀와'하는 것 같은 손짓을 얼핏 본 것도 같다.




 북적북적한 시내방향이 아니라 시외로 나가는 방향이라서 전철 안은 썰렁한... 아니 몹시도 쾌적했다ㅋㅋ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좋아하는 찬양이 흐르고, 손에는 얼마 전 구입한 '세계관적 설교'(전성민 교수 저, 성서유니온)가 들려져 있었다. 아직 서문 정도 읽은 정도이지만, 읽으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걸으면 이상하게도 생각이 잘 돌아간다. 사뿐사뿐 걸으니 머리도 함께 폭신폭신해지는 것 같다.


전철로 5 정거장이면 출근이 가능하다니ㄷㄷㄷ 하지만 아직 배차간격이 길어서 한대를 아슬아슬하게 놓치고 말았더니 대기 시간이 주~욱 늘어나고 말았다.


개통 후 첫 월요일이라 너도나도 처음 가보는 길일 것이다.  함께 탄 사람들 모두 자라목을 하고서는 뚤래뚤래 돌아보느라 마치 미어캣을 운반하는 동물원 기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노선도를 사진 찍는 사람, 배차 시간표를 찍어가는 사람, 쿨한 척 무관심하게 가는 사람, 그러면서도 눈알만 이리저리 굴리는 사람... 제일 재미있는 게 사람 구경이다ㅋㅋㅋ


압권은 김포공항의 지하 5층에 서해선 정거장이 위치한다는 것이다. 뭐 이거 지하감옥도 아니고 말이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가만있지 못하고 남들처럼 걸어 올라갔더니만 (한국 사람 특) 등과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허벅지는 터질 것 같다. 그동안 운전하고 다니느라 부실해진 하체가 하루 만에 복구되는 느낌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옆으로 살짝 돌아가면 엘리베이터가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퇴근길에는 야무지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였다)


결국 지하의 던전에서부터 지상의 병원까지 20분이나 걸렸다. (오잉~@.@ 이 무슨...)


그래도 좋다. 운전대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막히는 길을 오가는 것보다 더 아까운 시간은 없는 것 같다.


작은 여행을 하고 온 기분이다. 내일도 신나게 걸어가야징~^^


(내일 비가 억수로 온단다 ㅠㅠ 시작부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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