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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Sep 25. 2024

선생님은 '형사놀이' 하는 것 안 좋아하는데.

담임은 다양한 역할을 한다. 그중 형사 역할은 참 하기 싫다.

  초등학교에서 한 반의 아이들을 관리하는 담임의 역할은 참 크다. 아이들이 등교하여 하교까지, 무사히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누가 싸우면 불러다가 잘잘못을 따지고 조율하고 화해하는 판사, 상담사의 역할을 한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의 전말과 배경을 다 파악해야 하기에 형사 역할도 한다. 쉬는 시간은 빨리 가고, 또 금방 공부시간이 되기에 선생님 역할도 해야 한다.


  필자는 그 많은 역할 중 '형사' 역할이 제일 하기 싫다. 그래서 담임이 되면 우리 반 아이들에게 수시로 말한다.

  "선생님은 형사놀이 하는 거 제일 안 좋아하거든. 우리 서로 눈치껏 잘 지내자."

  교직 생활 18년을 지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형사놀이 장면을 몇 가지 적어보려 한다. 수사반장에 나오는 형사처럼 아이들을 닦달하고 조사하는 그 짓을 참 하기 싫다.


  담임은 한 반을 맡아서 책임을 진다. 그런데 그 책임의 한계가 어디까지일까? 아이들이 가게에서 물건을 훔쳐도 담임 책임. 아이들끼리 피 터지게 싸워도 담임 책임. 방과 후 학원에서 싸워도 담임 책임. 교실에서 물건 분실 사고가 일어나도 담임 책임. 군대에서의 소대장보다 더 힘든 것 같다. 군에서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면 병사들을 처벌할 수 있다. 부대 간부들이 상의하여 죄질에 합당한 처벌을 내릴 수도 있고, 군기교육대에 보낼 수도 있다. 우리 반 애가 잘못하면 담임이 할 수 있는 것은 '속앓이' 뿐이다. 그래서 속이 썩은 선생님의 똥은 똥개도 안 먹는다고.


  6학년 수학여행을 애버랜드로 갔다. 보통 남쪽 지방 학교는 에버랜드 아니면 롯데월드를 꼭 수학여행 코스에 넣는다. 당시 나는 거친 바다를 닮은 아이들이 많은, 바닷가 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다. 촌 아이들 중 애버랜드에 처음 가 본 아이들도 있었으리라. 약속장소를 정하고 조별로 활동하도록 풀어놓았다. 부디 아이들이 아무 사고 없이 잘 놀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저기 00초 6학년 2반 담임선생님이세요?"

  "예. 맞습니다. 누구신지요?"

  "저는 에버랜드 직원인데요. 00초 학생들이 인형, 장난감 등을 훔치다 걸렸습니다. 이쪽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 곧 그리로 갈게요."

  옆반 선생님과 함께 해당 장소에 가보니, 우리 학교 남학생이 6명 있다. 자신이 훔친 인형, 장난감, 미니 안마기 등을 양손 가득 들고서.


  아이들은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는 듯, 선생님을 봐도 그렇게 마음의 동요나 잘못했다는 태도가 전혀 없다. 포장을 뜯지 않은 물건은 돌려주고, 포장을 뜯은 물건은 변상하였다. 그리고 아이들의 학부모에게 자녀가 한 일에 대하여 연락하였다.

  "000 어머니? 다음이 아니라, 000이 에버랜드 기념품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걸렸어요. 일부는 반납하고, 일부는 변상조치를 했네요."

  담임이 학부모와 통화하는 내용을 듣고서야 애들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잘못이 크다는 것을 인지한다. 그때 깨달았다. 교사 말은 흘려 들어도, 자기 부모님 말은 듣는구나!


  그날 밤, 에버랜드 근처 숙소에 늦게 체크인을 하여서 애들 취침을 시키고, 절도범들을 다시 남선생님 숙소에 모았다. 숙소 사장님께 부탁하여 A4지 몇 장과 볼펜을 마련하여 아이들에게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적게 하였다. 사실확인서. 나는 그러한 양식의 종이를 '사실확인서'라고 부른다. 진술서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나, 진술서는 어감이 좀 별로라, 사실확인서라 명명했다. 늦은 밤, 나도 아이들도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얼른 자야 다음날에 지장이 없을 텐데. 자신이 훔친 물품 목록, 훔친 장소, 시간 등을 상세히 기록하도록 하고, 적은 내용이 일치하는지 대조도 해보았다. 어디에서 무엇을 훔치는지 그 모습을 재연도 해보았다. 이건 뭐, 절도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와 다름없지 않은가! 에버랜드 절도사건 이후, 수학여행 때마다 A4용지와 볼펜을 준비해 간다.


출처: 블로그, 트래블탱

  교실에서 지내다 보면 남자 학생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러면 둘을 불러서 사실확인서를 쓰게 하고, 서로에게 잘못한 부분을 인지시킨다. 잘못한 부분 중 사과를 할 마음이 있는 아이는 사과를 하고, 서로 이해하고 넘어가기도 한다. 요즘은 교사가 억지로 사과를 시키는 것도 학생 인권에 위배된다고 하여 학생들 사이에서 중재하는 것도 참 조심스럽다. 그중 기억에 남는 폭력사건을 하나 적어보려 한다.


  학급회의를 하는 시간이었다. 반장이 앞에 나와서 회의를 진행하는데, 뒤에 두 아이가 너무 장난을 심하게 치고 떠들고 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나는 그 두 학생을 복도로 불러 내어서 야단을 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교실 안에서 비명소리가 들리고, 난리가 났다. 교실에 들어가 보니 반장은 목을 부여잡고 울고 있고, 그 앞에 앉아있던 한 남학생은 아직도 분한지 씩씩거리며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반장은 회의를 진행하다가 떠드는 아이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려고 앞에 책상을 두 손바닥으로 쾅! 내리쳤다고 한다. 그 책상에 앉아 있던 남학생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여 반장의 목을 조르고 얼굴을 주먹으로 때린 것이다. 잠시 담임이 자리를 비웠다고. 어디 멀리 간 것도 아니고, 바로 옆 복도에 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반장은 목이 졸리고 얼굴에 상처가 난 것도 문제지만, 아이들 앞에서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에, 마음이 다친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충분히 학교폭력으로 신고할 수 있는 사안이다. 나는 반장과 목을 조른 학생을 불러 사실확인서를 쓰게 하고, 두 어머니께 연락하였다. 집에 가서 아이 입으로 사건을 듣는 것보다 담임의 연락으로 알게 되는 것이 학부모 입장에서는 그나마 낫다. 다음날 수업을 마치고 두 학생과 두 학부모, 그리고 담임 이렇게 다섯 명이 교실에 모였다. 참 껄끄러운 자리이다.


  반장의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교실에서 그런 모욕적인 일을 당했다는 것에 분개하였다. 그리고 목을 조르고 얼굴을 때린 아이의 엄마는 자기 아이의 폭력적인 행동에 대해 놀라는 눈치였다. 담임이 가운데 앉고 양쪽으로 가해자 측, 피해자 측이 앉아서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듣는 시간을 가졌다. 다행히 두 엄마 모두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라 일은 잘 마무리되었다. 서로 사과할 부분은 사과하고,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반장과 엄마를 먼저 보내고, 가해자 측 학생과 엄마를 남겨서 좀 더 이야기를 했다.


  그 가해학생의 학업 능력은 우수하다. 집이 꽤 잘 사는 편인지 학원도 많이 다니고, 공부를 잘한다. 하지만 집에서 폭력적인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다. 평소에 자신의 뜻대로 안 되면 상대방의 목을 가격한다. 영화에서 봤는지, 목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친구의 목을 조르거나 때린다. 그런 사건이 그전에도 두 번 정도 있었다. 사건이 있을 때마다 사실확인서를 적게 하였다. 지금껏 모았던 사실확인서를 어머니께 보여드리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 사건 이후로는 가해 학생이 다른 학생을 때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역시 담임의 말은 흘려 들어도 엄마의 말은 새겨듣는다.


출처: 포토뉴스, news.naver.com

  내가 교직생활을 하면서 겪은 형사 역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가지를 적어 보았다. 절도사건과 폭력사건.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나는 형사 역할을 자주 했었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담임은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이다. 담임이 그 학생을 처벌할 수 있는 권한도 없고, 담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잔소리와 학부모에게 고자질뿐이다. 학생은 담임이 말하는 것은 흘려들어도 부모가 말하는 것은 듣는 경우가 있다. 그럼 다행이다. 부모가 말하는 것도 흘려들으면 정말 답이 없다. 그럴 경우에는 하루하루 무사히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예전보다 요즘에는 더욱더 형사 역할을 하는 것이 어려운 것 같다. 학생들의 잘못을 조사하는 과정이나 조율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강압적으로 하거나, 억지로 사과를 시키면 바로 담임에게 화살이 돌아온다. 현재 담임에게는 권한은 하나도 없고 책임만 한 가득이다. 지금은 체육 전담이라 형사 역할을 할 일이 없어 다행이다. 나중에 담임을 맡게 되면 '선생님놀이'만 하고, '형사놀이', '판사놀이'는 안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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