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는 다양한 아이들이 있다. 활발한 아이, 조용한 아이, 적극적인 아이, 소극적인 아이, 정직한 아이, 거짓말하는 아이, 잘 나누어주는 아이, 자기 것만 챙기려는 아이 등. 그 수많은 캐릭터 중 유독 내 눈에 거슬리는 학생이 있기 마련이다.모두가인정하는, 학교에 소문이 쫙 퍼진 힘든 학생도 있고, 나와 기운이 맞지 않아 대하는 것이 힘든 학생도 있다. 이렇게 선생님의 임무 수행을 방해하는 학생을 '명퇴 도우미'라 칭하겠다.
교사생활을 하면서 '정년퇴직', '명예퇴직' 관련 일들을 겪는다. 교장선생임의 정년 퇴임식, 50대 선생님의 명예퇴직, 평교사로 끝까지 근무하여 정년퇴직을 하시는 분. 이런 사람들을 보며 '나는 과연 언제까지 교사를 할까? 정년퇴직을 할 수 있을까? 중간에 명예퇴직을 한다면 몇 살 때 해야 할까?'를 한 번쯤은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이 들도록 부추기는 학생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명퇴 도우미'들이다. 내가 명예퇴직을 결심하게 도와주는 학생들.
초임시절, 아이들을 다루는 요령도 없는데, 반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말썽을 부린다. 당시 학군이 안 좋은 학교에 근무하였다. 가정에서 잘 케어가 안 되는 아이들이 많고, 편부편모 가정이 많다. 학교 주변에는 노후된 주택들이 많고, 대나무가 꽂혀 있는 점집도 간간이 눈에 띄는 동네이다. 그러한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 중 막 나가는 아이들이 몇 명 있다. 친구와 싸울 때 커터칼이나 연필을 들고 싸우는 아이, 수업시간에 기분이 틀어지면 뛰쳐나가 버리는 아이 등. 중학생과 어울리며 놀면서 담배 피우는 아이들, 학교를 며칠씩 안 나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모든 사회초년생이 그러하겠지만, 아침 해가 뜨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학교에 가서 통제 안 되는 아이들과 하루를 보내는 것이 매일 곤욕이었다. 그때 힘든 내 마음을 조부장님께 털어놓으니, 조부장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다.
"반에 힘든 아이들이 바로 내 스승이다 생각하세요. 그 아이들을 겪으면서 많이 배울 겁니다."
그 후 생각을 좀 고쳐 먹기로 했다. 별난 아이들과 지내며, 그러한 특성을 가진 학생을 대하는 노하우를 축척하자. 그들이 내 교직생활의 스승이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니 내 마음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아침에 출근이 두려운 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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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옮긴 학교는 바닷가에 있는 학교였다.거친 바다를 닮은 아이들은 나에게 큰 시련을 주었다. 첫 해 맡은 6학년 남학생 중 정상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아이가 2명뿐이었다. 우리 반에 싸움 짱과 그의 똘마니들, 가출하는 아이, 학교를 밥 먹듯이 빠지는 아이 등 하루하루 난리였다. 매일이 사건 사고로 물들면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동학년 선생님들이 좋아서였다. 아이들 이야기를 안주 삼아 술 한 잔 하고 다음날 또 안주 거리가 생겼다. 그 해 수학여행 절도사건, 다른 초등학교와의 패싸움 등 굵직한 사고사례는 나의 생활지도 관련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그렇게 상식적이지 않은 아이들을 만난 두 학교를 거쳐 세 번째 학교는 학군이 괜찮은 지역에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정에서케어를 받고자라서 안정된 정서를 갖고 있었다. 그 학교에 가서 3월 초 가정기초조사서를 첫날 나누어주고, 다음날 모든 아이들이 다 가져온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전 학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수업이 내가 의도한 방향대로 진행되며, 사건 사고가 거의 없다. 수학여행을 가서 약속장소에 모여라고 하니, 약속 시간 십 분 전에 모든 아이들이 다 모여 있었다. 물론 절도사건을 일으키는 학생도 없다.
첫 번째, 두 번째 학교에서 워낙 별난 아이들을 많이 만나보니, 세 번째 학교에서의 아이들은 정말 천사 같다. 물론 소소한 다툼과 사고는 생기지만 스케일이 다르다. 내 마음은 너무나도 편안하다. 세 번째 학교에서 6학년 담임을 하며 나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들에게 참 고맙다. 학교를 빠짐없이 모두 잘 나와줘서 고맙고, 크게 치고받고 싸우지 않아서 고맙다. 담배 피우는 애들도 없고, 중학생이랑 어울려 사고 치는 아이들도 없어서 참 고맙다."
아마 내가 험한 아이들을 경험하지 못하고 학군이 좋은 곳의 아이들을 처음 만났다면 그 아이들이 고마운 줄 몰랐을 것이다.
한 반의 담임을 맡아보면 반에 분명 나를 힘들게 하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있기 마련이다. 그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일 년이 참으로 힘들고도 고통스럽다. 그래도 시간은 간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내고 나면 다음에 힘든 학생을 만나도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든다. 뭇 선생님은 이것을 '예방주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반에서 통제 불가능한 아이, 큰 사고를 치는 아이를 맡으면서 예방주사를 세게 맞으면, 다음에 그보다 덜 한 학생을 만나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예전에는 이보다 더한 학생도 만나봤는데 뭘...' 이런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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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체육전담을 맡으면서 4학년, 6학년 체육수업을 한다. 4학년 4개 반, 6학년 5개 반의 수업을 하다 보면 각 반의 '명퇴 도우미'가 보인다. 전담은 다행히 그 수업시간만 그 학생을 보면 되지만, 담임은 출근하여 그 학생이 하교할 때까지 봐야 한다. 담임은 '명퇴 도우미' 학생을 대하며 생각할 것이다. '담임하기가 정말 더더욱 힘들어지네. 올해가 빨리 지나가길 바란다. 내년에는 저런 학생을 안 만났으면.' 하지만 내년이 되어 또 다른 아이들을 만나도, 그중에 '명퇴 도우미'는 항상 존재할 것이다.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래서 담임의 마음을 바꾸는 쪽을 선택함을 추천한다. 그 학생은 '명퇴 도우미'가 아니라, 나의 '스승'이라고. 대하기 힘든 학생을 만나, 일 년 동안 참으로 힘들었지만 나의 면역력이 강해졌다고! 나의 정신력이 강해졌다고! 그런데 이런 말을 하기도 조심스러운 것은 힘든 학생과 학부모를 만나 공황장애, 우울증으로 인해 병휴직을 하는 교사들도 많다. 예전보다 교권이 떨어지고, 학생 인권만을 챙기는 현재의 교실에서 선생님은 참으로 정신 건강을 지키기가 어렵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개인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 우스갯소리로 '명퇴 도우미'라고 명명한 그 학생들을, 담임이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지도하며 학교생활을 하길 바란다. 다양한 케이스의 '명퇴 도우미'들을 만나며 담임의 마음은 더욱더 강해질 것이다. 예방주사를 맞아서 더 큰 병에 걸리지 않을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참 다행이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그 학생을 나의 '스승'이라 칭할 수 있지 않을까.
글을 적다 보니 마지막 부분에서 주제가 흐려짐을 느낀다. 분명 나는 '명퇴 도우미'를 대하면서 점점 굳건한 마음을 갖게 되어, 그 학생을 나의 '스승'이라 칭할 수 있다는 글을 적고 싶었는데. 적다 보니 요즘 힘든 학생과 학부모로 인하여 정신적 고통으로 병휴직을 하는 선생님들이 생각났다. 내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하는 그들을 나의 스승이라 말할 수 있을까? 제발 교사가 학생, 학부모로부터 안 아플 만큼만 스트레스를 받으며 학교생활하기를 소망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