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후니홉 May 29. 2024

보일러실에서의 '바베큐파티'

분진이 가득한 보일러실에서 우리 가족은 숯을 꺼내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예전 목욕탕에서는 나무로 불을 때어서 온수를 사용하였다. 나의 아버지는 목욕탕 보일러 기사였다. 목욕탕 건물 옆에는 공터가 있다. 그곳에 주기적으로 나무를 실은 차가 와서 땔감 나무를 내려놓는다. 그날은 아버지께서 술을 드시는 날이다. 나무를 싣고 온 업자가 근처 대폿집에서 아버지께 공짜 막걸리를 사주셨다. 술을 좋아하신 아버지는 그 재미로 나무 떼는 일을 하시지 않으셨나 싶다.


출처: 블로그, 자연이 살아숨쉬는 웃골농원


  나무를 불 때기 위해서 큰 나무는 기계톱으로 손질하여 작게 자른다. 아버지의 형색은 항상 허름한 작업복에 톱밥이 묻어 있다. 여름날에는 비지땀을 흘리며 옷이 땀에 범벅이 된다. 그 모습을 어린 시절, 나는 너무나도 부끄러워했었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와 함께 걸어오던 나는 저 멀리 목욕탕 옆 공터에서 나무 작업을 하시는 아버지를 발견한다. 길은 하나라 둘러가거나 피할 수는 없다. 친구와 이야기하는 척을 하며 애써 아버지 쪽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나가길 바라며 걷는다. 그 장면은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진행된다. 아버지도 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한 번은 걸어가다가 아버지와 눈이 마주친 적이 있다. 순간 나는 시선을 떨군다. 아빠의 눈을 짧게 보고 외면한다. 그 순간 아빠의 표정은 반가움이 잠시 스치다가 타인처럼 무표정으로 변하신다. 부끄러워하는 내 마음을 아시기에 그에 맞춰 주신 것 같다.


  참 어린 마음이다. 나무 작업을 하고 있는 누추한 작업복을 입은 아버지에게, 그때 왜 나는 반갑게 인사하지 못했나? 옆에 있는 친구가 뭐라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계속 그랬던 것 같다. 자식이 저 멀리서부터 반갑게 손을 흔들며 아버지를 반겨주었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으셨을까? 아마 그 힘든 노동을 한순간 잊을 수 있는 기쁨이셨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빠를 부끄럽게 여긴 아들이라 죄송합니다.


출처: 카페, 디카갤러리, 디갤


  나무를 떼는 보일러실에서의 추억이 하나 있다. 좋은 참나무가 장작으로 들어온 날, 가계에 약간의 여유가 있는 날이 겹치면 우리 가족은 보일러실에서 '바베큐파티'를 했다. 좋게 말해서 바베큐파티이지, 먼지와 분진이 가득한 보일러실에서 구워 먹는 고기이다.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께서 보일러의 앞부분에 불을 보는 입구를 여신다. 그곳에 삽을 쑤욱 집어넣어 벌겋게 변한 숯을 한 삽 빼낸다. 입구 쪽에 모아두고, 또 한 삽 빼낸다. 그 숯 위에 석쇠를 올리고, 고기를 올린다. 원래부터 뿌옇던 보일러실이 고기 굽는 연기로 더욱 뿌옇게 변하며 고기 굽는 냄새로 가득 찬다. 어머니께서는 연신 고기를 구워서 쟁반에 담고, 형과 나는 제비 새끼 마냥 고기를 먹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장난 아닌 공간이었을 것이다. 아마 공기청정기를 그곳에 놓고 가동하면 시뻘건 불빛이 들어와 몇 시간을 틀어놓아도 절대로 파란불이 들어오지 않을 공기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 네 식구는 숯향이 묻어 있는 삼겹살을 먹으며 행복해했다. 이런 숯불 바베큐는 어디에서도 못 먹는다며 뿌듯해하시던 아빠였다.


  당신의 일터에서, 비록 공기가 나쁘고 깝깝한 지하 보일러실이지만, 당신이 가족을 위해 뭔가를 해줄 수 있음이 기쁘셨으리라. 그렇게 우린 가끔씩 보일러실 바베큐파티를 하였다. 몇 년 후 나무를 떼는 보일러에서 기름을 떼는 보일러로 교체되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가족은 더 이상 '보일러실 숯불 바베큐'를 먹지 못하게 되었다.


  사실 아버지에게는 잘 된 일이다. 고된 노동에서 해방되어 보일러 스위치만 작동하면 되기에. 목욕탕은 보통 아침 5시에 문을 연다. 그것을 맞추기 위해 아버지께서는 새벽 4시에 기상하시어 일하러 가셨다. 목욕탕 쉬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 새벽 그렇게 일어나셨다. 아버지의 그 성실함을 존경합니다.


  매일 아침 깜깜한 새벽, 일터로 가실 때의 그 느낌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짊어진 삶의 무게를 그렇게 버티어 내셨던 것이다. 특히나 겨울에는 얼마나 일하러 가기 싫으셨을까? 한평생 새벽 기상 하랴, 컴컴한 보일러실에서 불 때랴 고생하신 아버지. 그곳에선 늦잠 주무시고 일어나셔서 브런치 드세요.

이전 02화 '떼돈' 벌어서 모으신 패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