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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May 23. 2024

'떼돈' 벌어서 모으신 패물

어머니께서 모으신 패물은 어머니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주산학원을 다녔다. 지금은 추억 속에나 있을 법한 주산학원에서 학원선생님이 나에게 했던 말이 아직도 나의 마음속에 비수로 남아 있다. 그때의 분위기, 선생님의 말투, 선생님의 표정, 모든 장면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걸 보면, 나에게 그 말이 정말 상처가 되었던 것 같다.


출처: 블로그, '나'를 찾아가는 여행


  주산학원에 가서 정해진 분량을 풀고 선생님께 검사를 맡으러 갔다. 그날 선생님이 채점을 다하고 나에게 엄마에 대해서 물어봤다.

  "너희 엄마, 저기 00탕에 때밀이로 일하시니?"

  "(작은 목소리로) 예......"

  "그럼. 너희 엄마는 떼돈 버시네. 때 밀어서 버는 돈이니까 떼돈. 하하하"


  다 큰 어른이 초등학생에게 할 농담인가! 아마 본인은 별 뜻 없이 우스갯소리를 한답시고 나에게 그 말을 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말이 평생을 두고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히는 말이었다. '세신사'라는 직업을 자랑스럽게 여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의 어머니가 그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지, 정말 그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랐었다.


  어머니께서는 항상 말씀하셨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사람이 정직하게 성실하게 돈을 벌면 된단다.'라고. 하지만 직업 중에는 남에게 떳떳하게 보여줄 수 있는 직업과 숨기고 싶은 직업은 있다. 만약 엄마의 직업이 의사, 변호사, 교사 등의 직업이었다면 좀 더 떳떳하게 나의 어머니 직업을 공개했을 것이다. '때밀이'라는 직업은 다른 사람이 몰랐으면 하는 직업이었다. 그 당시 나에게는.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남의 때를 밀어주며 돈을 벌었다. 목욕탕에서 남의 몸을 씻겨주는 노동을 한 대가로 받는 돈을 어머니께서는 힘들게 버셨다. 목욕탕은 주말이 없다. 주말은 더 바빴다. 평일 하루를 쉬었다. 아마 내 기억에 화요일이었던 것 같다. 그날 어머니께서는 잠을 몰아서 잤던 것 같다. 학교 갔다 오면 시름시름 앓는 소리를 내시며 주무시던 장면을 자주 봤던 기억이 난다.


출처: 블로그, 바람요정 공작소


  고된 노동과 육아, 평일에 잠시 허락된 휴식이 자신의 삶으로 가득 채운 어머니가 하나의 돌파구로 선택한 것은 '패물'이었다. 쉬는 평일에 마음 맞는 아줌마들과 함께 귀금속을 사러 다니셨다. 금반지, 금목걸이, 다이아반지 등을 사모으는 것이 어머니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으리라. 자신의 깝깝한 삶 속에 어찌 보면 유일한 낙이 자식 커가는 모습 보는 것과 '패물 모으기'였을 것이다.


  간간히 있는 계모임, 집안 행사를 참석할 때 자신의 피땀으로 일구어 낸 패물을 착용하고 가셨다. 태극무공 훈장을 단 군인처럼 당당한 모습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려입고 화려한 액세서리를 하셨다. 비록 자신은 '때밀이'라는 미천한 직업을 가지셨지만, 그 일터를 벗어난 자신의 모습은 너무나도 화려하길 원하셨던 것 같다. 아마 그렇게라도 해야 그 힘든 일상을 버틸 수 있으셨을 것이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유품 정리를 할 때 귀금속 중 어머니를 추억할 한 두 개만 남기고 다 팔았다. 그 금액이 꽤 되었다. 또한 없는 살림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보험도 들어 두신 것을 알았다. 어머니께서 살아생전에 보험을 들었다는 말은 일절 없으셨다. 보험 든 시기를 보니 아버지 사망 이후였다.


  그렇게 늙어서 죽기 직전까지도 본인이 아닌, 자식을 위한 삶을 사신 어머니께 너무나도 죄송하다. '살아생전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뵙고, 한 번이라도 더 손 잡아 드릴 걸'하는 후회가 7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어머니께서 좋아하셨던 패물을 잔뜩 장식한 모습으로 내 꿈에 나오시면 좋겠다. 그럼 손도 계속 잡아드리고, 안아 드리고, 눈물을 닦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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