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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니홉 May 16. 2024

'가요무대'와 '머리끝의 물기'

부모님을 떠올릴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각종 기념일이 참 많다. 내 나이 43살이 되어 한 가정의 가장으로,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살고 있다. 그리고 현재 나의 어버이는 하늘나라에 계신다.

  아버지는 지병을 앓고 계시다 뇌졸중이 와서 병원을 자주 다니시다 결국 2015년에 돌아가셨다. 그 뒤 2017년, 어머니께서는 고향집 2층 계단에서 내려오시다가 실족하시어 마당에 쓰러진 채 사망하시어 다음날 발견되셨다. 그날 119 대원이 아침에 엄마폰으로 전화를 하여 그 소식을 전했다. 2017년 9월 7일. 그날의 아침 장면은 아직까지도 너무나 생생하다.

  그렇게 두 분을 보내고 나니, 나는 고아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두 분 모두 마지막 눈 감는 모습을 보지 못하였다. 부모라는 존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마음가짐이 천지 차이이다.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 주고, 뭐든지 베풀어주시는 존재가 더 이상 없다. 내가 뭔가를 이루어 자랑하고 싶은 존재가 더 이상 없다.

  어버이날을 기념하여 나의 부모님 두 분을 떠올려 본다. 가방끈이 짧고 가난하여 한평생 고생만 하시다 생을 마감하신 두 분을, 이제는 내가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추억해 본다. 그리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여 여행을 다니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남이 해주는 밥을 먹는 경우는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뿐이었으리라.


출처: 블로그, 모세스(MOSES)의 음악여행


  아버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가요무대'이다. 텔레비전을 그렇게 즐겨 보시는 분은 아니었다. 아마 가족들에게 텔레비전 시청권을 양보하였던 것 같다. 그러한 아버지께서 즐겨 보시던 프로그램은 '가요무대'이다. 가요무대는 꼭 빠짐없이 본방 사수하였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옛날 노래를 듣는 그 프로그램이 참 재미가 없다면서, '우리 아빠가 왜 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당신이 자라면서 들었던 옛 노래를 들으면서, 그때를 추억하며 반가운 마음에 그런 노래들을 들으셨을 것이다. 아마 아버지께서 방앗간에서 일하던 10대 시절 들으셨던 노래들이 아닐까 싶다.

  지금 텔레비전을 돌리다가 김희철이 진행하는 '이십세기 힛트송'이 나오면 나는 채널을 멈춘다. 내가 10대 때 들었던 그 노래들을 들으며 잠시 행복해한다. 그리고 내 아들은 그런 내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쳐다본다. 예전에 아버지께서 '가요무대'를 볼 때 나 또한 그런 눈빛으로 아버지를 봤을 것이다. 그 눈빛을 지금 내 아들이 나를 향해 쏘고 있다.


출처: 포토뉴스, news.naver.com


  어머니를 떠올리면 '머리끝의 물기'가 떠오른다. 그 당시 어머니의 직업은 '세신사'. 좋게 말하면 그렇고, 보통은 '때밀이', '나가시'라고 부르는 일을 하셨다. 목욕탕에서 대기를 하고 있다가 손님이 생기면 를 밀어주고 돈을 받는다. 참으로 힘들고도 고단한 직업이다. 그 와중에 살림도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어떻게 때밀이 일과 집안 살림을 병행하셨는지,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아침, 저녁 식사를 차려주실 때 항상 어머니의 머리끝에는 물기가 있었다. 일을 하시고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와 밥을 준비하셨던 모양이다.

  살림과 음식에는 일가견이 있으셔서 요리를 하고 밥을 차리는 것은 수월하게 하신 것 같다. 성인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어머니 혼자 집안 살림을 다 하셨다. 언제 장을 봐왔으며, 언제 음식을 하고, 언제 일을 하러 가셨는지 도저히 상상이 안 간다. 그 와중에 머리는 항상 젖어 있었다.

  머리끝에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아직도 내 기억에 선명하다. 그 머리칼 사이로 나를 향해 미소 지으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너무나도 그립다. 머리를 채 말리지도 못하시고, 일하시며 식구들 밥을 챙기시던 어머니의 강인함과 고귀한 사랑으로 아들이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그때의 코흘리개가 이제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과연 나의 아이들은 나를 떠올리면 어떤 모습이, 어떤 장면이 제일 먼저 생각날까?' 하는 마음에 거울 속 나를 드려다 본다. 평소 내가 집에서 자주 보이는 행동, 자주 하는 말, 아이들에게 비친 아빠의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

  나의 짐작으로는 운전하는 모습, 소맥을 마시고 '캬'를 외치는 모습, 설거지하는 모습을 떠올릴 것 같다. 내가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보인 모습이 이 세 가지인 것 같다. 내가 죽고 난 후 과연 아이들은 아빠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어떤 모습이 떠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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